부동산업체가 주최한 크리스마스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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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네트워킹, 리테일, 커뮤니티

부동산업체가 주최한 크리스마스 파티

부동산업체 행사 ‘트리즈 포 토이즈’

미국 부동산업체들의 연말은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계약이 성사되면 끝인 1회성 비즈니스 관계에 그치지 않고, 집을 통해 인연을 맺은 고객들을 초대해 파티를 연다. 집이라는 공간을 자산으로만 보지 않고 삶의 근간과 소셜의 기점으로 여기는 미국 부동산 시장의 철학을 읽을 수 있다.






집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절대적 조력자인 부동산 중개인은 자산 증식에 도움을 주는 비즈니스 파트너에 불구할까. 한 가정이 찾는 이상적인 보금자리를 발빠르게 찾아 그들의 정착을 돕고, 이렇게 맺은 고객과의 인연을 집이라는 공통분모와 연계해 거대한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부동산 에이전트가 미국에는 일반적이다. 고객과 계약을 마친 후에도 이벤트를 열어 수년간 지속적으로 고객과 교류한다.


필자는 최근 오랜 전세살이를 끝내고 작은 집 하나 장만하자고 마음먹었다. 지인으로부터 미국 중부의 이름난 부동산 회사 콜드웰 뱅커 리얼티 미네통카Coldwell Banker Realty Minnetonka 소속의 베테랑 부동산 중개인 미셸 도엘러Michelle Doerrler를 소개받았다.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눈 적도 없고, 계약을 맺고 매물을 함께 보러 다닌 것도 아닌데 곧장 연말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받았다. 이벤트 당일인 토요일 오전, 파티 장소인 동네 맥주 양조장에 도착하자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연말 분위기를 돋운다. 입구로 향하는 인파 속에서 적잖이 당황하고 있던 차에 행사 안내자가 묻는다. “어느 부동산 중개인 초대로 왔나요?” 초대한 중개인이 단독으로 준비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주변을 다시 한번 유심히 둘러보게 된다.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눈에 띈다. 인생의 소중한첫 집을 구매한 이들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집을 되팔고자 하는 이들까지, 집을 매개로 부동산 중개인과 인연을 맺은 이들이 한 해의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행사다.














미국 부동산 회사 가운데는 이처럼 집을 사고파는 이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특별한 전략을 펼치는 곳이 있다. 집 매매가 이뤄지면 다음에 다시 집을 계약할 때까지 부동산 중계인을 만날 일이 거의 없는 국내와 달리, 미국에서는 한번 인연을 맺은 부동산 중개인이 고객의 안부를 묻고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일이 흔하다. 인상적인 것은 집이라는 부동산 시세 분석이나 동향 대신 정착한 이후의 삶과 동네에 관한 정보 등 일상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집을 통해 인연을 맺은 부동산 중개인들은 연중 크고 작은 행사를 주최하고 고객을 초대해 거대한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봄이면 플라스틱으로 만든 달걀 모양에 스낵을 넣어두고 아이들이 찾게 하는 게임을 진행하고, 가을에는 가정마다 호박을 무료로 나눠주는 파티를 연다. 아이들을 위한 호박 장식, 페이스 페인팅 부스를 마련하고 애플사이다와 도넛 등 다과도 제공한다. 각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를 중심으로 고객의 일상에 관한 안부가 자연스레 오간다.


부동산 중개인 단독으로 행사를 열기도 하지만, 지역 내 여러 부동산 회사들이 연계해 지역민을 위한 대규모 파티를 열기도 한다. 다수의 부동산업체들이 12월 초에 여는 트리즈 포 토이즈(Trees for Toys)’가 대표적이다. 수백 명의 고객이 참석하는 이 행사는 장난감을 기부하면 크리스마스트리와 리스를 나눠준다. 단순한 사교 모임을 넘어 사회 저소득층을 돕는, 지역과 상생하는 봉사 성격을 띤다. 산타클로스와 사진을 찍고, 차와 다과를 나누며 덕담을 나누는 이 자리는 서로 경쟁자일 수도 있는 지역 내 부동산 회사들이 공동 주최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3년 전 부동산 중개인 미셸 도엘러를 통해 4인 가족을 위한 생애 첫 집을 구매한 그레이엄 윈더 씨는 말한다. “여러 행사를 통해 중개인을 만나는 것은 개인적 관계를 지속한다는 점에서 무척 의미 있어요. 매년 정기적인 행사를 통해 같은 지역에서 집을 구매한 이들이 서로 알아가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죠.”



재화보다는 대화, 집보다는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매일의 이야기에 귀를 여는

친교 문화가 담겨 있다.



행사장에서 오랜만에 고객들을 만난 부동산 중개인들은 각 가정의 아이들이 그새 훌쩍 자랐다며 놀라워한다. 크리스마스 리스나 트리를 나눠주며 그 집 벽난로가 운치 있으니 근처에 놓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아요라는 식의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아이들은 부동산 중개인을 자신들의 아늑한 보금자리를 얻도록 도와준 사람으로 여기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이 같은 풍경 속에는 재화보다는 대화, 집보다는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매일의 이야기에 귀를 여는 친교 문화가 담겨 있다.


비즈니스 코칭업체 브릴리언트 트라이브The Brilliant Tribe에 따르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부동산 시장에서 네트워킹 이벤트는 집을 매개로 한 경험을 공유하고, 파트너십을 맺기 위한 중요한 플랫폼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다. 특히 집을 구입한 이들과 계약이 끝난 이후에도 정기적인 모임을 열어 교류하는 행사는 향후 잠재적인 집 구매자를 만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한다고. 부동산 중개인과의 미팅은 부담스럽지만 핼로윈이나 부활절, 성탄절 파티 같은 행사는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까닭이다. 또한 구축된 커뮤니티에 발을 들인 이들은 서로 집 규모나 동네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집 수리나 인테리어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수많은 전월세를 경험하고 생애 최초의 집을 구매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부동산 중개인을 만날까 생각해본다. 세상에서 온전히 나를 위한 보금자리를 얻는 데 집을 통한 연대의 커뮤니티가 있다면 살아가는 데 조금은 마음이 든든하지 않을까 하면서.


 

Text | Nari Park

Photos | Fl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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