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곳에 세우는 바퀴 달린 작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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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도시, 커뮤니티, 코워킹

내가 원하는 곳에 세우는 바퀴 달린 작은 집

반 보 르멘젤의 타이니하우스

Text | Eunah Kim
Photography | Daniela Gellner, Benjamin Heck

46m²를 넘지 않는 단독 주거 시설을 일컫는 타이니하우스는 19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모색하던 이들로부터 시작되어 우리가 사는 도심 속 공간을 ‘다운사이징’ 하자는 사회적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0년부터 독일 타이니하우스 열풍을 이끄는 대표적인 건축가이자2015년 타이니하우스 유니버시티 콜렉티브를 설립한 반 보 르멘젤 Van Bo Le-Mentzel은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충분히 “그렇다”라고 말한다. “물론 컨테이너가 최고의 주거 솔루션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잘 압니다. 중국의 케이지 홈이나 한국의 고시원과 같은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말이죠.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최소한의 기준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코 집의 크기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고요. 다음3가지에 대해 모두‘예스’라고 답할 수 있다면 타이니하우스도 지구상 최고의 파라다이스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르멘젤이 스스로 질문하는 세 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하나, 내가 스스로 원해서 선택한 주거 형태인가?

둘,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요리하고, 먹고, 자고, 샤워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는가?

셋, 걸어서 60초 이내에 내가 어울려 지낼 멋진 이웃,

즉 ‘커뮤니티’가 있는가?








반 보 르멘젤은 건축가이자 래퍼이자D.I.Y 운동가다. 대학에서 상업 시설 중심의 건축을 공부한 후 건축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며 베를린MTV 헤드쿼터 등의 인테리어 설계를 하기도 했던 그는2010년 수강했던 목공 워크숍에서 난생처음 망치질과 톱질을 접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24유로로 24시간 이내에 근사한 안락의자를 뚝딱 완성한 그는 의자 도면을 개인 블로그에 공개했고 주변 지인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것을 계기로 소파 베드, 선반과 테이블 등으로 구성된21m²의 ‘최소한의 집’ 만들기에 이르렀다.

베를린의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선보이기까지 이른 이 집의 이름은‘하르츠IV 아파트먼트’. 본래 하르츠 IV는2000년대 초 슈뢰더 총리가 실시한4단계 노동 시장 개혁 방안 중 기초생활보장과 관련된 장기실업급여를 뜻하는 말인데, 이는 결과적으로 르멘젤이 2012년 만든 프로젝트 웹사이트의 주소이자 그의 책 제목()이 되었다. ‘누구나 아름다운 디자인의 질 좋은 가구를 누릴 수 있어야 하고 큰돈 없이도 자기가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건축 철학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네이밍이다.







©daniela kleint




그가 지은 첫 타이니하우스는2012년 구겐하임 뮤지엄의 구겐하임 랩 베를린과 협업해 제작한‘1m² 하우스’다. 2m 높이의 뾰족한 지붕을 가진 직사각형 집 형태의 바퀴 달린 구조물로 세로로 세운 상태에서는 책상에 앉아서 일하거나 창문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옆으로 길게 눕히면 하늘을 향해 난 창문을 바라보면서 등을 대고 누울 수 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목재를 사용하면서 외관은 방수 처리했고 잠금장치를 갖춘 대문도 달았다. 전체40kg 무게로 바퀴를 이용해 원하는 곳 어디든 이동할 수 있다. 하루 일정의 워크숍은 250유로의 재료비를 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이 비용이 부담인 이들을 위해 그 참가자가 완성한 타이니하우스를 에어비앤비에 게재해 하룻밤에1유로로 공간을 빌려주고 재료비만큼을 모으는 방안도 고안했다. 이러한 홍보 방식은 실제로 집이 없는 베를린 노숙자부터 실험적인 경험에 신난 대학생이나 여행객에 큰 호응을 얻었다(주방과 욕실 사용은 주변의 호스텔의 협조를 구했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시설을 보강한‘가짜 부동산(Unreal Estate House)’이라는 타이니하우스를 뮌헨의 피나코텍 뮤지엄 앞 주차장 뜰에서 선보였다. 5m² 면적에 책상과 주방 시설, 샤워와 화장실을 갖춘 공간은 외부의 사다리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는2층에 최대 두 명이 누울 수 있는 침대까지 갖췄다. 누군가의 생활 공간이자 오피스, 갤러리, 팝업스토어 등으로 사용될 수 있는 이곳은 3000유로(약380만 원)을 목표로 한 크라우드 펀딩을 초과 달성해 제작되었다. 설계도는 오픈 소스로 온라인에 배포 되었고 펀딩을 하거나 시공에 참여한 이라면 누구든지 이 프로토타입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집은 현재 베를린으로 이동해 추운 겨울 노숙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전히 트레일러하우스는‘합법적으로 정차하고 살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 르멘젤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같은 차량을 최대2주 동안 길가에 세워둘 수 있으나 차량 위 타이니하우스에 거주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에 르멘젤은 도시의 부분별 사용 용도를 엄격히 규정해놓은 법규의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도시의 어떤 부분에서 각각 자고, 일하고, 먹고, 생산하고, 물건을 저장하고, 노는 게 가능한지에 대한 구분을 지어 놓는 법규가 있습니다. 일터에서 숙식까지 해결하면 안 되고 극장이나 뮤지엄의 남는 다락방에 살림을 차릴 수 없게 하는 원인이죠.”




“여전히 우리 도시에는 활용할 수 있는 너무나 많은 빈 곳이 있습니다. 또한 길이나 광장과 같은 공공 공간은 더욱더 ‘사람’을 위한 공간이 되어야지, 죽은 자동차들이 차지하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활발히 논의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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