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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위한 노 키즈 존

일러스트레이터 김란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결혼하고 3년 만에 두 아들의 엄마가 됐다. 혼자 쓰던 방은 아이들 놀이터가 됐고 그림에 대한 꿈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녀는 고민 끝에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자기만의 방을 마련했다. 가로로 긴 창문 너머로 아이들이 뛰노는 마당이 내다보이는 이곳에서 김란은 엄마가 아닌 작가로, 하루에 4시간씩 일기 같은 그림을 그린다.









아들만 둘인 슈퍼맘이라고요.

큰 애가 38개월, 작은 애가 18개월이에요. 결혼하자마자 허니문 베이비가 태어났는데 금방 또 둘째가 생겨버렸어요. 말하고 나니 약간 부끄럽네요.(웃음)



결혼 전에는 무슨 일을 했나요?

대학 졸업하고 패션지에서 아트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인턴 때 잡지에 들어가는 일러스트레이션을 몇 번 그렸는데 반응이 좋아서 그때부터 사실상 두 가지 업무를 병행했죠. 근데 회사 생활이 저하고는 잘 안 맞더라고요. 무엇보다 야근이 많아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회사 그만두고 영국으로 잠시 유학 갔다가 돌아와서는 전에 일했던 잡지사와의 인연으로 프리랜서로 활동했죠. 그러다 결혼과 함께 애가 생기면서 본격적인 육아의 길로 들어섰고요.



지금도 프리랜서로 일하나요?

그러려고 노력해요. 첫째 가졌을 땐 출산 이틀 전까지 일을 놓지 않았는데 둘째 낳고 나서는 시간 확보가 쉽지 않아서요. 제가 워낙 워커홀릭이라, 그래도 일은 끝까지 놓지 않으려고 해요.









“무엇보다 창밖으로 마당이 보이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밖에서 애들 노는 모습이 다 보이니까 애들이 가까이 있을 때도 안심하고 작업할 수 있겠다 싶었죠.”




집에서 도보 2분 거리인 친정집 지하에 작업실을 마련했어요. 과정이 궁금해요.

집이 아이들 놀이터가 되면서 저만의 공간이 절실해졌어요. 처음에는 아파트 주변 상가 위주로 알아봤는데 월세가 너무 비쌌어요. 오피스텔을 빌리자니 보증금이 부담이었고요. 그러던 중 친정집 지하에 있는 공간이 생각났어요. 잘만 손보면 작업실로 쓰기 좋겠더라고요. 무엇보다 창밖으로 마당이 보이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밖에서 애들 노는 모습이 다 보이니까 애들이 가까이 있을 때도 안심하고 작업할 수 있겠다 싶었죠.



작업실 이름이 ‘그르니에 Grenier’예요. 무슨 뜻인가요?

프랑스어로 ‘곳간’, ‘다락방’을 뜻해요. 혼자만의 공간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기도 하고, 어감도 이곳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요.



여기서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작업하나요?

오전 9시 30분에 애들 어린이집 보내고 오후 4시 30분에 데리러 가니까,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약 6시간이 제 시간인 셈이에요. 집안일도 해야 하니 막상 작업에 들이는 건 4시간 정도죠. 얼마 안 되는 시간이지만 이 공간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어요. 아침에 애들 보내놓고 작업실 소파에서 사과 한 알 먹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요즘 SNS를 돌아다니다 보면 육아하면서 집도 예쁘게 꾸미는 엄마들이 많아요.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요?

아이 성향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라고 봐요. 제가 작업실 만들면서 이 공간에 가장 들이고 싶었던 게 하얀 리넨으로 감싼 소파였거든요. 아이 있는 집에선 꿈도 못 꾸는 물건이니까요. 지금도 이 공간에 애들은 절대 못 들어오게 해요. 우스갯소리로 ‘노 키즈 존’이라고 못박아뒀죠. 작은애가 한번 들어왔다가 제 그림을 몽땅 밟아버렸거든요. 어휴.(웃음)








“전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아이도, 모든 가족 구성원이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략) 각자의 공간이 생기면서 비로소 집안에 평화가 찾아왔어요. 따로 또 함께. 그게 저희 집 모토예요.”




아이 엄마여서 그런지 그림 색채가 굉장히 밝아요.

그건 제 성격 때문이기도 해요. 아이 낳고 한풀 꺾여서 그렇지 어릴 때는 정말 긍정 에너지가 넘쳤어요. 제가 예전에는 노란색처럼 쨍하고 화려한 색만 좋아했는데 애들 낳고 나서 많이 누그러졌죠. 요즘은 시각적으로 편안하고 따뜻한 해피 아트에 점점 관심이 가요.



해피 아트라는 게 미술의 한 장르인가요?

그런 셈인데, 앙리 마티스 같은 작가를 떠올리면 쉬워요. 화사한 색감으로 삶의 환희를 표현하는 작가들요. 아무래도 제가 엄마라서 그런지 점점 더 그런 데 관심이 가는 듯해요. 아이들이야말로 제 그림의 첫 번째 관객이니까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 삶에 위안을 주는 그림, 그러면서 유머를 잃지 않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제 작업을 지지하는 두 개의 축이 ‘위로’와 ‘자유’예요. 사이 톰블리, 바스키아 같은 작가들의 즉흥적인 뉘앙스도 굉장히 좋아해요.



작업실을 열고 첫 작업으로 ‘더 마더 The Mother’ 연작을 시작했어요.

엄마가 되고 나서 그 희생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깨달았어요. 육아로 힘든 제 자신을 위로하고 싶기도 했고요. 어찌 보면 제 안의 모성을 약간 신화화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해요.(웃음) 육아로 만신창이가 된 엄마라도 그림으로 표현하면 실제보다 훨씬 숭고해 보이거든요.



그림 속 인물의 얼굴이 전부 하트 모양인 게 재미있어요.

작업실 열고 처음으로 제 모습을 그려봤는데 저도 모르게 해골로 묘사했더라고요. 몸속의 뼈가 훤히 비치는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그림을 보니 제가 봐도 너무 우울했어요. 그러다 우연히 얼굴을 하트 모양으로 바꿔봤는데 분위기가 확 달라졌죠. 이거야말로 지금 제 심정을 대변하는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육아가 고단하긴 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니까요.



듣다 보니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아이도, 모든 가족 구성원이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이 작업실을 마련하면서 집에 있는 방 하나를 남편 작업실로 꾸몄어요. 나머지 두 방은 아이들 공간으로 만들어줬고요.아이들도 자기 공간이 생기니까 전보다 훨씬 정돈을 잘하더라고요. 각자의 공간이 생기면서 비로소 집안에 평화가 찾아왔어요. 따로 또 함께. 그게 저희 집 모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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