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받아 공간 한쪽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모빌은 매력적인 오브제다. 공기의 일렁임에 흔들리고 멈추기를 반복하며 남기는 잔상은 모빌을 '공간의 숨은 조력자’라 부르는 이유를 수긍하게 한다. 최근 영국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토스트의 ‘뉴 메이커스’로 선정된 모빌 디자이너 코리 윌리엄슨을 만났다. 이스트런던 집 안 곳곳에 걸린 모빌과 그녀의 일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기하학적 패턴, 크고 정제된
형태가 특징인 코리 윌리엄슨Corrie
Williamson의 모빌을 천장에 건 뒤 집에서의
시간이 새롭게 다가왔다.” 디자인 컨설턴트 아나 야콥센Anna Jacobsen의
말처럼 미세한 빛과 공기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모빌 특유의 매력은 공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영국을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토스트Toast가 최근 의류와 생활용품에 이어 모빌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도
이 작은 조형물이 지닌 놀라운 ‘공간 장악력’ 때문일 것이다.
“코리 윌리엄슨의 모빌을 천장에 건 뒤
집에서의 시간이 새롭게 다가왔다.”
주얼리 아티스트이자 모빌 디자이너인 코리 윌리엄슨은 토스트의 올해 뉴 메이커스로 선정되며 한 편의 시 같은 모빌을 전 세계에 판매하고 있다. 얇은 인조 대리석과 아크릴을 크고 작은 원과 반달 모형으로 만들어 길게 드리운 모빌은 바우하우스에서 영감을 얻은 미니멀한 디자인으로 인기가 높다. 이스트런던의 소담한 주택에서 4명의 아이들과 생활하는 작가는 몇 년째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정원 한편에 작은 작업실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좋아하는 사물로 빼곡히 채운 집 천장에 걸린 모빌이 인상적이다. 허공에서 핑그르르 움직이는 수십 개의 작은 조형을 보고 있으면 빛과 그림자, 작품이 만나 조화로운 삶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모빌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어떤 일을 해왔는지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브라이턴 예술 학교(Brighton School of Art)에서 텍스타일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하지만 주얼리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전공 학업 외에 저녁과 주말 시간을 이용해 독학했죠. 런던의 유명 빈티지 마켓인 캠던 마켓Camden Market에서 직접 만든 니트웨어, 오래된 시계 부속품으로 제작한 주얼리를 판매하면서 현장 경험을 쌓았어요. 그 후 몇 년간 혼자서 장신구 만드는 기술을 터득하고 여러 재료를 경험하며 작업 범위를 넓혀나갔죠. 목공예 작가와 스튜디오를 함께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제 주얼리에 나무를 결합하기 시작했어요. 목재를 라미네이팅하고 다양한 색상을 입혀 새로운 패턴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딸이 태어나자 아이 침대 머리맡에 걸어둘 모빌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모빌 디자이너로서의 긴 여행을 즐기고 있죠. 뭐랄까, 모빌은 집이라는 공간에 걸 수 있는 아주 큰 피스의 장신구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부터 손으로 만드는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됐나요?
어린 시절부터 항상 뭔가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어머니는 그런 저를 북돋아줬고, 푸드 믹서를 이용해 종이를 만들거나, 매끈한 광택이 나는 바틱batik 천을 직접 만들 수 있게 일러주었죠. 다리미, 재봉틀을 사용해 항상 뭔가를 만들고 손을 쉬어본 적이 없었어요.
당신의 모빌 작품은 매우 정제된 선과 형태가 군집을 이루고 있어요.
작은 피스들이 모여 하나의 모빌을 완성해요. 물론 각각의 조각을 만들 때는 그것들이 모여 이루는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까지 생각하며 선과 면을 재단합니다.
모빌은 빛과 만나 다양한 형태의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매우 특별한 오브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특별한 작품을 만들 때 어떤 부분을 고려하나요?
모빌이 어떤 방향과 모습으로 움직일까를 생각하며 무엇보다 균형을 맞추는 데 집중해요. 작은 조각을 손으로 연결하는 작업이다 보니 최대한 튼튼하게 재료를 결합하는 방법을 늘 고민하죠. 모빌을 제작할 때는 선, 색상 등 고려할 것이 많아요. 3D로 만드는 모빌은 스케치도 어렵고 그것을 구현해내는 과정에서 조금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으니까요.
현재 영국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토스트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간
진행한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거나 의미 있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몇 년 전 양심수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구제 활동을 하는 비정부 기구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작업을 통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기억에 남는 봉사 활동이었어요. 지금 협업 중인 토스트의 뉴 메이커스 작업도 의미 있어요. 과거에 대기업들과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했지만, 토스트는 작가들을 지원하는 별도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많아 더욱 존중받고 성장하는 기분이에요.
얇은 황동으로 원을 만든 ‘후프
모빌Hoop Mobile’, 검게 그을린 오크 목재 조각으로 만든 ‘블랙컨드
오크Blackened Oak’,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이 연상되는 ‘폼
모빌Form Mobile’ 세 모빌이 대표적이에요.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원을 활용한 후프 모빌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모든 가정에
두루 잘 어울리기 때문이죠. 모빌은 공간에 임팩트를 주면서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매력적인 오브제예요. 그저 방 천장이나 커튼 레일에 매달아두면 보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죠. 저는
모빌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좋아해요. 빛이 드는 정확한 위치에 매달아두면 하루가 흘러가는 매 순간 그림자의
형상이 변하는 미세한 변화를 즐길 수 있어요.
작업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제가 만지고 사용하는 재료를 통해 영감을 받는 편이에요. 나무의 자연스러운 형태나 색상을 보면서 새로운 결합과 형태를 떠올리죠. 알렉산더 칼더와 마티스의 작품은 제 모빌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어요.
현재 생활하는 이스트런던 집에 딸린 가든 스튜디오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제가 작업하는 공간으로 매우 작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어요. 다양한
재료를 보관하는 서랍이 여러 개 있죠. 제 작업이 주얼리 디자인과 목공예 사이를 오가기 때문에 큰 도구도
있어요. 스튜디오 절반은 목재 작업용 긴 탁자, 나머지 절반은
납땜 같은 금속 작업이 가능하도록 설계했죠. 휴식하기 좋은 아늑한 소파도 있고요. 마지막으로 정말 아늑하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는 지붕이에요. 스튜디오의
금속 지붕 위로 비가 내릴 때 소리가 꽤 큰데, 그 소리가 마치 음악처럼 제가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요.
“하루를 잘 마치고 다시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느낄 때 가장 행복한 거 같아요.
온전히 하루가 끝난 기분이거든요.”
집에서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 특별한
공간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하루를 잘 마치고 다시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느낄 때 가장 행복한 거 같아요. 온전히 하루가 끝난 기분이거든요. 4명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만큼
곳곳에 크고 작은 다양한 공간을 확보해야 해요. 텍스타일을 전공했기에 담요와 쿠션을 수집하고 그것을
집 안 가득 배치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해요. 주방에 있는 소파 자리는 제가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에요. 발을 올린 채 몸을 카우치 깊숙이 누이면 엄청난 행복감이 밀려와요.
주로 집 어디에 모빌을 걸어두나요?
특별히 공간을 염두에 두지는 않아요. 정기적으로 소품을 바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한 가지 사물을 편애하지 않아요. 최근 아티스트 라우리 홉키스Lauri Hopkis의 콜라주 작품을 구입해 주방에 걸린 제 모빌 옆에 두었어요. 그것을 한 번씩 들여다보면 보다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매번 볼 때마다 색과 형태가 조금씩 다른 듯한데, 그런 측면에서 자주 쉽게 볼 수 있는 공간이 좋은 것 같아요.
이스트런던에서의 바쁜 일과 중 가장 소중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 일상은 항상 아침을 일찍 맞는 것으로 시작해요. 아이들을
깨워 학교에 등교시켜야 하고 그런 다음 저만의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스튜디오로 향하기
전 잠시 숨을 고르는 찰나의 고요가 소중해요. 잠시 차 한잔 마시고 마음의 평온을 얻도록 ‘위시 리스트’도 작성하고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가족과 함께할 때예요. 서로 바쁜 하루를 마감하고 모여 앉아 대화하는 시간만큼 소중한
건 없죠.
집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모두가 그렇듯 제게도 집은 매우 소중한 공간이에요. 팬데믹 이전부터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을 정도로요. 이 안락한 공간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보스니아 작가 알렉산더 헤이만Alexander Hayman이 이런 말을 했어요. “집은 당신이 그곳에 없을 때 비로소 인식하게 되는 공간이다.” 자신만의 온전한 집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이들, 집을 떠나본 이들에게 집의 가치와 소중함은 더욱 크다는 말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