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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도시, 코워킹, 큐레이션

유용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

디자인 스토어.위스키 시음실 무용;소

Text | Kakyung Baek
Photos | Hoon Shin

서촌 골목에 무용;소가 있다. 평일에는 디자인 스토어로, 주말에는 위스키 시음실로 변신하는 이곳은 쓸모없는 것에 쓸모를 찾아준다. LP 플레이어에서 들리는 오래된 음악 소리, 천천히 음미해야 알 수 있는 싱글몰트위스키, 제작 방식이 번거롭지만 매력 있는 리소그래피 디자인 소품이 여기 모여 있다.





(왼쪽부터) 윤진영, 고현




무용;소는 어떤 공간인가요?

(고현) 무용;를 차리기 전, 저와 아내는 주로 집에서 일했어요. 저는 프리랜서 에디터로 항상 집에서만 일하다가 아내와 함께 작업실을 구하기로 했죠. 그런데 무용;소를 작업실로만 사용하기엔 어쩐지 아쉬워 각자 좋아하는 요소를 하나씩 더 담았어요. 디자인을 좋아하는 아내의 취향과 위스키를 좋아하는 제 취향을 담아서, 주중에는 디자인 스토어 겸 쇼룸으로, 주말에는 위스키 시음실로 운영해요.

(윤진영) 남편은 항상 위스키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저는 제가 디자인한 소품도 판매하는 셀렉트 숍을 운영하고 싶은 꿈이 있었어요. 이 두 가지를 함께 녹여낸 공간이에요.








이곳을 운영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

(윤진영) 저는 인테리어 소품 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했어요. 디자인을 위한 시안을 제시하거나 해외에서 다양한 디자인 소품을 큐레이션해 국내에서 판매하는 일을 맡았어요.

(고현) 저는 여행 잡지사 에디터로 일했어요. 작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에디터를 하려고 준비하던 중에 무용;소를 열었죠. 그런데 최근 다시 새로운 잡지사를 다니게 돼서 무용;소 일과 병행하고 있어요.








쓸모없음(無用)’에 끌리게 된 이유가 있나요?

(고현) '실용'의 반대 의미인 '무용'이란 단어를 오래전부터 좋아했어요. 무용;소에 있는 위스키, 리소그래프 디자인 제품, LP 플레이어 등은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에요. 어떤 물건의 가치와 쓸모는 다른 영역의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쓸모없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멋진 취향의 물건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윤진영) 저희 부부는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했어요. 특히 데드라인에 쫓기면서 성과를 내야 하는 직업이었죠. 모든 현대인이 그렇겠지만 실용적인 것에만 몰두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반대로 저희는 오래되거나 남들이 보기에 쓸모없는 것을 향유하는 취향이 생겼어요. 대체로 무용하면 빠르게 소비되거나 대체되지 않더라고요. 예를 들어 일자로 곧게 자란 나무는 나무꾼들이 금방 베기 마련이죠. 하지만 굽이치며 자란 나무는 쓸모없다는 이유로 잘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몇백 년을 살아요. 사람들에게 그늘도 만들어주면서요.




어떤 물건의 가치와 쓸모는 다른 영역의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쓸모없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멋진 취향의 물건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무용;'에 붙는 세미콜론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윤진영) ‘무용사이에 붙는 세미콜론은 무용의 의미를 확장하는 역할을 해요. 장소보다 무용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는 걸 표현하고요. 시음회의 의미로 무용;, 북 토크 같은 모임의 무용;, 플리마켓을 여는 무용;, 타블로이드 매거진 형식의 무용;지 등 무용의 의미를 다양하게 기획해볼 예정이에요.








위스키에 매료된 계기가 있나요?

(고현) 잡지사의 업무 패턴 때문이었어요. 마감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집에 와서 혼술을 했거든요. 처음에는 맥주를 마셨어요. 그러다 출장을 다녀오면서 면세점에서 위스키를 한 병 사게 됐죠. 그때는 잘 몰라서 아무 위스키나 사서 마셨는데 맥주보다 가성비가 좋더라고요. 위스키는 한 잔 정도로 충분했으니까요. 결정적으로는 스코틀랜드에 출장 가서 위스키 증류소를 취재하면서 더 각별한 관심이 생겼어요.








스코틀랜드에서 어떤 위스키를 접했나요?

(고현) 영화 <조제>의 로케이션을 동행하는 취재였어요. 그중 증류소 촬영이 있어서 부랴부랴 글렌파클라스Glenfarclas의 증류소를 섭외해 방문할 기회가 있었죠. 이곳은 지금까지도 가족이 대를 이어 운영하는 증류소예요. 싱글몰트위스키를 처음으로 대중에게 알린 곳이기도 하죠. 싱글몰트위스키는 우리가 익히 아는 양주, 다시 말해 블렌디드 위스키의 재료예요. 최적의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블렌딩 재료로만 쓰던 싱글몰트위스키를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음하니 글렌파클라스에 더 애착이 생기더라고요. 무용;소에서도 주기적으로 소개하는 위스키예요.










무용;소의 위스키 시음실에서는 입문자를 위한 코스가 있어요. 어떤 기준으로 기획하나요?

(고현) 제가 위스키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적인 바로 운영하지는 않아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9종류의 위스키를 선보이고 있어요. 스코틀랜드 지역을 크게 3개로 나눠 스페이사이드, 하일랜드, 아일라의 위스키를 각각 3병씩 두 달 간격으로 선별해 소개합니다.

(윤진영) 위스키 하면 중후하고 어렵다는 인상이 있어요. 아까 남편이 얘기했듯 퇴근하고 한 잔 마셨을 때 후련한, 그런 기분을 다른 분들도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캐주얼하게 기획했어요. 편한 분위기에서 함께 취향을 찾아보자는 거죠. 싱글몰트위스키는 위스키의 취향을 찾는 데 좋은 술이거든요.



공간을 디자인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가요?

(고현) 길종상가의 박가공 대표와 오랜 시간 미팅을 하면서 저희가 가장 원한 것은 가변형 공간이었어요. 디자인 스토어, 위스키 시음실이라는 이질적 공간을 조화롭게 운용할 수 있도록 목적에 따라 변하는 가구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윤진영) 부채꼴 모양의 테이블을 사각형, 원형 등의 형태로 붙이거나 따로 떼어서 쓸 수 있어요. 로고에도 부채꼴 모양 안에 무용;소의 초성을 본뜬 도형을 넣었어요.








공간을 설계할 때 한옥의 서까래를 일부러 남겨 놓은 건가요?

(고현) 한옥의 특징을 살려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무용;소를 디자인하지는 않았어요. 한옥에서 위스키나 디자인 소품을 소개하는 게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저희는 그 이질적인 것을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거든요.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나 개성적인 컬러를 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윤진영) 그저 여행하면서 수집한 물건을 가져다 두었을 뿐인데, 한옥이라서 그런지 분위기가 더 이국적으로 느껴져요. 예전에 저희 신혼집이 북촌에 있었어요. 언젠가 한 번쯤 한옥에 살아보고 싶었는데,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한옥을 택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한옥을 충분히 즐길 여유가 없었죠. 이번에 작업실을 구할 때도 막연히 한옥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폴카랩이라는 브랜드의 쇼룸이기도 하죠. 어떤 브랜드인지 소개 부탁드려요.

(윤진영) 제가 좋아하는 것을 디자인하고 삶을 지속해보겠다는 의미로 폴카랩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슬로건은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취향 연구소예요. 제가 디자인에 주로 활용하는 패턴은 아줄레주azulejo예요. 건물 외벽이나 내부에 타일 형태로 장식하는 패턴을 말하는데, 포르투갈을 여행할 때 이 패턴의 매력에 빠졌죠. 이 외에도 리소그래프 방식으로 디자인을 인쇄해 제품을 만들고, 최근에는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패브릭에 인쇄를 했어요. 이 패브릭으로 강원도의 옥희방앗간이라는 곳과 컬래버레이션해 들기름을 포장하는 보자기를 만들기도 했어요.










무용;소에서 맞는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윤진영) 주중 낮에는 디자인 스토어로 문을 열어요. 그때 무용;소 문을 활짝 열어두고 보사노바풍 LP를 틀어요. 컴퓨터로 디자인 관련 작업을 하면서 스트레이트로 위스키를 한 잔 마실 때가 있어요. 그 순간이 정말 좋아요. 마감에 쫓기지 않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사실이요.



앞으로 무용;소에서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윤진영) 폴카랩의 이름으로 여러 제품을 보여드리고 동시에 저희와 신념이 비슷한 브랜드를 디자인 스토어에서 소개하려고 해요.

(고현) 처음이자 마지막 시음회였던 고독한 시음회를 작년 늦가을에 했어요. 위스키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기획했던 건데 코로나 상황 때문에 잠시 중단된 상태죠. 하지만 여럿이 모일 수는 없어도 테이스팅 메뉴를 개발해 위스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드리고 있어요. 상황이 좀 나아진다면 마치 여행을 떠나듯이 스코틀랜드 지역별로, 국가별로 위스키와 증류주를 경험해볼 수 있는 시음회를 기획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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