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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맨션에 재미있는 친구들이 산다

허재영 누누 디렉터

Text | Kakyung Baek
Photos | Hoon Shin

누누 디렉터 허재영은 남산맨션에서 가족과 살면서 친구들을 만나 함께 일한다. 그는 ‘항상 친구들과 일한다’는 표현을 종종 쓰는데 친구와 일하면 아이디어의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상상하고 실현하는 일상을 누누라는 브랜드로 아카이빙하는 허재영 디렉터를 만났다. 숍 문을 열자마자 허재영과 장줄리앙의 유쾌한 상상의 결과물이 형형색색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누누라는 브랜드 이름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나요?

저와 함께 누누를 이끌어가는 아티스트 장줄리앙Jean Jullien의 아들 이름이 루예요. 저희 딸이 ''라는 발음을 잘 못해 '누누'라고 했거든요. 프랑스어로 nou’는 우리라는 뜻이기도 하고요.



누누의 공간이 들어선 남산맨션과는 어떤 인연이 있나요?

2006년부터 10년간 영국에 살았는데, 그동안 공항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남산맨션이 매번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남산에 딱 한 채 있는 아파트라 독특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러다 한국에 들어와 집을 구할 때 자연스럽게 남산맨션이 떠올랐죠. 제가 영국에서 일할 때 바비칸에 관한 프로젝트를 맡은 적이 있어요. 그 후로 20세기 후반의 건축양식인 브루탈리즘을 좋아하게 됐어요. 한국에서도 그런 느낌이 나는 곳에서 살고 싶었고요. 남산맨션은 옛날 호텔을 본떠 지은 곳이고 실제로도 건물이 호텔로 등록돼 있어요. 이곳에서 집을 열 군데 보았는데 모두 평수가 다르고 현관 위치도 달랐어요.








누누의 팝업 전시가 열린 이곳은 어떤 데인가요?

원래 개인적인 작업실로 쓰던 곳이었어요. 그런데 2021년 초에 물이 새서 침수돼 수리하는 김에 언제든지 누누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자고 생각했죠.



작업실을 새롭게 디자인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가요?

이 공간을 함께 설계한 디자이너에게 요청한 게 가변적 공간이었어요. 지금 여기 있는 선반과 모든 집기에 바퀴가 달려 있어 완전히 밀어놓을 수도 있고 수납장으로 고정할 수도 있어요. 집기를 뒤로 끝까지 밀어놓으면 공간이 생겨 작은 갤러리로 만들 수도 있죠.이렇게 작업실을 새롭게 단장하고 누누의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는 팝업 전시 <누누 홀리데이>를 기획했어요. 제가 사는 집 아래에 있는 공간에서 여는 전시이니 주제는 Home’으로 정했고요.








'홈'으로 꾸미기 위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무엇이었나요?

침대를 들이면 자연스럽게 집 같은 분위기가 날 것 같았어요. 또 이번에 신제품 촬영을 하면서 포토그래퍼 친구가 즉흥적으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을 벽에 붙이니 마치 누군가의 집에 걸린 추억이 담긴 사진처럼 따뜻한 분위기가 연출되더라고요. 또 이전의 컬렉션을 할 때 만들었던 시계도 걸어놓고 장줄리앙의 회화 작품도 걸어놓았죠. 누누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이 공간을 메우면서 자연스럽게 집이 된 것 같아요.




누누에 관한 여러 이야기가 이 공간을

메우면서 자연스럽게 집이 된 것 같아요.”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누누 제품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저와 장줄리앙의 페르소나로 만든 패턴을 바탕으로 파자마, 침구, 베게 등을 새롭게 만들었죠. 또 연말연시를 대비해 저희의 베스트셀러인 글라스 제품을 다양한 주류, 음료를 담을 수 있도록 새로운 디자인으로 만들었고요.



특히 글라스 제품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고요.

잔에 어떤 음료를 담는지에 따라 컬러도 느낌도 바뀌는데 그런 점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도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온 누누 글라스 제품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사람들이 여러 상황에 다양한 음료를 담아 이 잔을 즐기는 모습을 올리거든요. 분명히 웃고 있는 표정이 그려진 잔인데 어떤 각도로 어떤 상황에 보느냐에 따라 표정이 미묘하게 슬퍼 보이기도 해요. 그날의 제 감정이 투영되는 것일 텐데,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잔이라고 할 수 있죠.





허재영 제공






스테레오바이널즈, 피치스 등 여러 브랜드를 디렉팅 하는데 그중에서도 누누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누누는 라이프타임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요. 여느 브랜드처럼 잘 키워서 투자를 받고 비즈니스적으로 성장시키는 것보다 제가 평생 가져가고 싶은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에요. 제 일상에서 함께하면서 최대한 부담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함께하기 위해 노력해요. 저는 일과 생활에 경계가 없는 편이에요. 가족과 대화할 때도 일에 관한 얘기를 나누기도 해요. 일할 때도 가족과 친구가 연관되고요. 이런 제 생활 패턴을 아카이빙하는 역할이 누누인 것 같아요.








집 바로 아래에 작업실이자 누누 숍을 낸 것도 삶의 패턴과 맞닿아 있겠네요.

맞아요. 새벽이든 언제든 아무 때나 내려와서 편하게 일도 하고 쉬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 이곳을 만들었어요. 예전에 영국에서 회사 다닐 때는 퇴근 시간이 정확하게 6시라서 퇴근 후 개인 일을 할 시간이 충분했어요. 그래서 영국에서 일하면서도 한국에 브랜드를 론칭할 수 있었던 거고요. 이런 패턴이 한국에 들어와 살면서도 이어졌어요. 누누와 협업하고 도움을 주는 분들이 대부분 남산맨션에 사세요. 예를 들면 제가 누누 반지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웃 중에 은으로 작업하는 분이 계시더라고요. 그분과 남산맨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반지를 만들게 됐어요.








장줄리앙과는 어떤 식으로 협업하나요?

DM, 문자, 페이스타임 등등 다양한 채널로 계속 아이디어를 주고받아요. 그렇게 티키타카하다가 장줄리앙이 먼저 스케치를 보내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요즘 나는 음반을 만들고 싶어같은 아이디어를 장줄리앙이 던지면 저는 관련 분야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해서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요. 이런 식으로 일하면 다양한 협력자를 만들 수 있고 그들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일하다 보면 프로젝트의 깊이가 생기고 풍부해져요. 누누는 저와 장줄리앙이 시작한 브랜드지만 결국 저희 친구들과 같이 만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항상 친구들과 일한다는 표현을 많이 써요.



친구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본인이 일을 대하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을 것 같아요.

아이디어의 장벽이 허물어져요. 제가 어렸을 땐 클라이언트와 일하면서 제 아이디어나 시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많이 속상해했어요. 하지만 그 프로젝트에서 쓰지 않았다고 해서 아이디어가 버려지는 게 아니라 그것을 모아놓고 또 다른 프로젝트로 이어가는 게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친구들과 일하면 그런 한계가 없어요. 여기서 이 아이디어를 쓰지 않았으면 다른 새로운 일을 벌이면 되거든요. 저는 매일 기도를 하는데 가장 큰 주제가 상상하는 것의 끝이 없게 해달라는 것이에요. 정말 터무니없는 상상이 아니라면, 웬만한 상상은 현실화하는 시뮬레이션이라고 봐요. 그렇게 계속 상상하고 실현하는 힘을 만들어주는 게 제겐 친구들인 것 같아요.








누누가 첫선을 보인 후 재정비 시간을 가졌죠.

론칭하고 나서 많은 관심을 받았어요. 그렇게 기대 이상의 인기를 얻고 많이 알려지는 게 부담스러워서 잠깐 쉬면서 누누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했어요. 우리가 이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소모되는 게 맞는 건지, 우리 아이들이 지어준 이름으로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세일즈에만 목매는 게 맞는 일인지 2년 정도 함께 고민했어요. 가장 우선적으로 오버 프로덕션을 하지 않기로 했어요. 선주문, 예약제로 제품을 생산하면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죠.



올해 계획한 누누의 행보에 대해 알려주세요.

곧 장줄리앙의 개인전을 열 예정이에요. 지금껏 장줄리앙이 선보인 거의 모든 작업을 한자리에서 큰 규모의 전시로 선보일 거예요. 그에 맞춰 누누도 새로운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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