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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다양성, 로컬, 코워킹

부산항 앞 하나뿐인 우든 보트 빌더

이경진 라보드 대표

Text | Solhee Yoon
Photos | Seungyong Jung
Film | Jaeyong Park

“길이 10m, 폭 3m 남짓한 우든 보트를 만드는 조선소로는 라보드가 국내에서 유일합니다”라고 말하는 이경진 대표. 원주의 올리브선박학교에서 만난 친구 넷이서 부산 영도로 와서 동고동락하며 배를 만든 지 올해로 6년 차다. 그는 배와 집은 닮았다고 말하며 눈을 반짝였다. 기술만 있으면 손수 지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안에 꿈꾸고 생각할 여유가 있다는 점이 그렇다고 한다.








사무실이 특이하네요. 되게 오래된 건물 같아요.

3년 전 영도구청의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 사업에 발탁돼 공간을 배정받았는데 그게 이곳이었어요. 일제강점기에 지은 적산 가옥이죠. 저희는 나무를 다룰 줄 아니까 내부를 직접 수리했어요. 부산 시내에 있는 적산 가옥 카페나 공방을 답사한 다음 구조미가 드러나는 인테리어로 방향을 잡았어요. 안정성 때문에 기둥은 모두 새것으로 교체했지만 지붕은 원래 있던 그대로예요. 한국 최초의 근대식 목선 조선소인 다나카 조선소가 영도에 있었거든요. 그와 관련된 일을 하던 사람이 이곳에 살지 않았을까 상상하곤 해요. 저희는 이곳을 현재 사무실 겸 목공예 워크숍 공방으로 쓰고 있어요.










우든 보트 빌더라는 건 참 생소한 직업이에요.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요?

저는 어렸을 때 통영 욕지도와 부산 영도에서 살았어요. 그러니까 통통배부터 여객선까지 크든 작든 어떤 배든 저에게 익숙한 대상이었죠. 배를 만들겠다는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우연히 원주의 올리브선박학교에 갔다가 다양한 배 종류를 보고 반했어요. 이렇게 예쁜 배가 있다니, 이건 작품이다 싶었죠. 그래서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그곳에 입학해 기술을 배웠어요.








올리브선박학교에서 만난 동기들과 라보드 사업을 시작했다고요.

역시나 비슷한 마음이더라고요. 저렇게 예쁜 배를 나도 한번 만들고 싶다!(웃음) 저를 포함해 넷이 뭉쳤어요. 학교를 졸업한 다음에는 2년간 각자 다른 기술을 익혔고요. 저는 부품 설비를 맡았고 다른 이들은 제작 및 용접, 운항 및 엔진, 설계 분야를 맡았어요. 집 짓는 일도 그렇잖아요. 기술만 있으면 셀프 시공할 수 있듯이 우리도 기술을 익혀서 인건비를 줄여보자는 전략이었죠. 그렇게 나름 준비한 다음 사업자 등록을 마쳤고요.




지금은 눈앞의 구체적인 것을 더 유심히 봐요. ‘이 마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를 오래 고민하죠.”




처음 제작한 배는 어땠어요? 성공적으로 출항했나요?

그게, 만들 때까지는 좋았어요. 낮에는 각자 회사에서 일하고 밤이나 주말에만 모여 배를 만드는 고단한 일정이었는데 그마저도 신났어요. 근데 진짜 문제는 배를 만든 다음이더라고요. 완성했다는 기쁨은 딱 10일 갔어요. 사람들도 '예쁘다', '신기하다' 그러고는 더 관심을 갖지 않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사업을 취미처럼 하면 안 된다는 것을요. 덕분에 저희도 많이 성장했어요. ‘사업을 왜 해야 하지?’ ‘배를 좋아하는 우리 마음을 어떻게 전달하지?’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출발했죠. 사실 처음 간판을 걸었을 때는 '이름 날리는 배 하나 만들어서 돈 많이 벌어야지'라는 생각이었거든요. 지금은 눈앞의 구체적인 것을 더 유심히 봐요. ‘이 마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를 오래 고민하죠.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법, 이웃과 함께 사는 법에 더 관심이 생겼어요.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잘 알리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 같아요.










마음은 조금 아팠겠지만 제1호 우든 보트를 통해 얻은 깨달음이 크네요. 그래도 첫 승선했을 때는 기뻤죠?

그럼요! 발을 디디지도 못했어요. 쳐다보기만 했죠. 아주 작은 파도에도 우리 세투스(Cetus) 다치겠다!” 하고 소리치고 난리였어요. 거의 모실 정도였죠.(웃음) , 첫 배 이름이 세투스예요. 세투스는 고래자리의 별자리예요. 길이가 10m 정도로, 꽤 큰 규모에 속하거든요. 말하자면 경력도 없으면서 고난도의 끝판왕에 도전한 거라고 할 수 있죠.



지금은 제2호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름은 월러스Walrus예요. 바다코끼리란 뜻인데 콘셉트는 영도 앞바다에 띄우는 관광선이에요. 영도 앞바다에는 터그보트(예인선)라고, 큰 선박이 항만에 들어올 때 안전하게 접안하도록 돕는 배가 많거든요. 이 배에서 디자인 영감을 받았어요. 8인승 규모로 제작 중인데 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배를 띄우기 위한 관련 행정 절차만 잘 마무리되면 곧 바다에서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운항할 때 어떤 기분이 드나요?

사실 조타 키를 잡는 친구는 따로 있어요. 그렇지만 가끔 저도 핸들을 잡아볼 때가 있는데, 그때 진짜 좋은 에너지를 느껴요. 드라이빙 좋아하는 분들이 뻥 뚫린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걸 좋아하잖아요. 그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해요. 배를 운항할 때는 여유가 생기고, 무엇보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우든 보트는 수명이 짧지 않나요?

우든 보트나 FRP 보트나 수명은 같아요. 30~40년 쓰죠. 그런데 FRP 보트는 부서지면 그대로 끝이지만 우든 보트는 수리해서 다시 쓸 수 있어요. 제때 수리하고 관리하면 100년도 쓰죠. 집이랑 똑같아요.








넷이서 함께 사업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잘 지내는 노하우가 있나요?

초창기에는 저희 넷이 한 집에 살았어요. 그러면서 각자 바깥에서 벌어 온 돈을 얼마만큼만 자신이 갖고 나머지는 라보드 통장에 저금했죠. 지금 저희가 운영하는 제주도 게스트하우스도, 친구 둘이서 장보고 과학기지, 세종 과학기지로 출장 가서 벌어 온 돈으로 마련하고 나머지 둘이서 수리해 완성한 거예요. 이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건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존중에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의 노력을 알고 어려움도 아니까요. 한 집에 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게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나름 저희만의 룰도 있어요. 사실 저희 넷은 일하고 싶지 않을 때 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꿈꿨던 사람들이거든요. 그런 세상을 만들자고 사업을 시작했고요. 그래서 지금도 각자 책임은 다하되 휴식 시간에는 관여하지 않아요.



스스로 챙기는 역할이 있나요? N등분해서 일을 맡고 있지만 대표로서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청사진을 많이 그리는 편이에요. 우리의 미래에 대해, 나아갈 길에 대해. 물론 저도 대표직에 서툴기 때문에 계속 제 역할을 잘하고 있나 의심해요.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다면 지금껏 제 곁을 떠난 사람이 없다는 것이에요. 그것만으로도 느리지만 순항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또 제가 맏형이에요. 그래서 동생들이 좋아하는 꿈을 이루도록 돕겠다는 다짐을 하게 돼요. 다들 원하는 모습이 하나씩 있거든요. 사실 또 그런 게 있어야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고요. 한 친구는 이다음에 요트를 사서 요트에서만 살겠다고 해요. 우든 보트가 아니라서 조금 서운하긴 한데(웃음) 응원하고 있어요.








강단이 느껴져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루고 싶은 꿈을 향해 흐트러짐 없이 다가서는 모습에서요.

저는 진짜 평범한 사람이거든요. 근데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알았고 그것에 다가서는 여정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요.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저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어요. 월급이 적을지언정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죠. 그런 느낌 있잖아요. 돈을 벌어도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은. 저는 다행히 제 일에 대해서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지금이 재미있고 다음 것이 궁금하죠. 집중해서 시간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데에 만족해요.










팔목의 타투는 어떤 의미인가요?

왼팔에는 라보드 로고를, 오른팔에는 세투스 별자리를 새겼어요. 이 의미를 잊고 싶지 않더라고요. 훗날 저희 팀이 나이가 들어 헤어지더라도, 혹여나 모를 풍랑에 회사가 없어지더라도 이때를 잊지 않기 위해서, 기억하기 위해서 타투로 간직하는 거예요.



앞으로 어떤 재미있는 일을 해볼 생각인가요?

영도구청이 진행하는 골목길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저희가 이 골목에 있는 공간 하나를 올여름부터 운영하게 됐어요.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아담한 게스트하우스와 목공방이죠. 영도에서 한 달 살기하면서 저희와 함께 카누나 카약을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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