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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방 전문가가 제안하는 열린 공간

주방 디자인 전문가 앤 뉴먼

Text | Nari Park
Photos | Flora, Gilbertson Photography

거대 자본의 도시 텍사스를 무대로 사옥과 학교 등 방대한 공간을 설계해온 앤 뉴먼은 문득 치열한 마감과 천문학적 수치를 다루는 일에 피로감을 느꼈다. 결국 자연을 벗하는 미드웨스트식 삶에 동화되어 미네소타에 터전을 잡고 사적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일로 전향했다. 거주자 라이프스타일이 스며들게하는 그녀의 작업 방식은 <미드웨스트> 매거진의 ‘2022년 베스트 하우스 인테리어 어워즈’에 선정되며 크게 주목받았다.









앤 뉴먼Anne Newman 씨는 서른 해 넘는 긴 시간 동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활동했어요. 어떤 계기가 지금의 자리까지 이끌었을까요?

미 중부 오하이오의 한적한 시골에서 나고 자랐어요. 어린 시절부터 막연히 빌딩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생활하고 싶었죠. 1980년대 초반 오하이오를 떠나 텍사스로 건너가면서 커머셜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당시는 정말 기회가 많은 시기였어요. 전 세계에서 엄청난 자본과 다양한 인종이 모여들어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도시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맡아 분주하게 살았죠.



지금 거주하는 미네소타로 건너 온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커머셜 디자이너이자 세 아이의 엄마로 치열하게 살다 보니 어느 순간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맡아서 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마다 수많은 마감 일정을 맞춰야 했고, 여러 도시로 출장을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회의가 들었던 것 같아요. 브랜드와 기업을 상대하는 커머셜 디자인 작업보다는 일반인을 상대하는 디자인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닿았죠. 그 역시 마감을 맞춰야 하는 일이지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클라이언트와 대화나 설득으로 풀어낼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분야라고 느꼈어요.





©Gilbertson Photography

 

©Gilbertson Photography




레지덴셜 디자인 작업은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다루는 공간이 훨씬 작고 섬세하다고 할까요. 커머셜 디자이너로 일할 땐 학교 식당, 기업 사옥 로비 등 대규모 시설을 맡았다면 프라이빗 디자이너로 전향한 뒤에는 누군가 생활하는 사적 공간을 다루게 되었죠. 누군가 집을 사고 파는 과정을 보게 되고, 상대적으로 작고 프라이빗한 공간을 상대하면서 소소한 재미를 느꼈어요. 현재 파트너스 포 디자이너스 앤드 아키텍츠Partners 4 Designers and Architects 소속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는데, 주방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요.



아파트나 콘도 같은 레지덴셜 공간부터 개인의 집까지 그간 수없이 다양한 주방을 디자인했어요.

제가 작업한 주방을 모두 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거예요. 예전 주방이 굉장히 폐쇄적인 구조였다면 요즘에는 모든 공간과 연결되는 오픈 키친 형태가 트렌드죠. 근래에는 딱히 주방만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는 찾기 어려워요. 거실, 주방, 복도 등 모든 공간이 집이라는 큰 구조 안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이곳 미니애폴리스에서 가장 큰 호수로 꼽는 레이크 칼훈Lake Calhoun 주변 콘도들이 대표적이에요. 주방이 거실 전체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렇다 보니 배관공, 전기 기사, 집 수납장을 제작하는 목수 등과 공조해 작업하고 있어요.




오늘날은 거실, 주방, 복도 등 모든 공간이 집이라는 큰 구조 안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




주방 전문가로서 미드웨스트 스타일 주방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특정 디자인을 미드웨스트 키친이라고 설명하는 데는 무리가 있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좀 더 미니멀하고 현대적인 느낌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요. 따뜻한 질감의 목재로 꾸민 전통적인 주방을 골조로 세련된 몰딩을 더해 깔끔하고 현대적인 스타일로 완성하는 식이죠. 최근에는 이탈리아 브랜드의 주방 제품과 독일 브랜드 포겐폴Poggenpohl의 컨템퍼러리 주방 브랜드 제품을 함께 사용하는 가구도 많고, 미드웨스트 기반의 로컬 브랜드 크리스털 캐비닛Crystal Cabinet 제품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클라이언트가 어떤 스타일의 주방을 선호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매우 전통적이거나 매우 현대적인 스타일을 넘나든다고 할 수 있겠네요.





©Gilbertson Photography




미드웨스트는 1,000개가 넘는 호수를 품은 자연 친화적인 지역이잖아요. 전망 좋은 집이 유독 많은 만큼 경치와 주변 환경이 집 구조나 주방 인테리어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미드웨스트 특유의 주방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죠. 캐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수납장이 빼곡한 조리대, 오픈 키친을 가득 채운 대형 아일랜드 테이블이 대표적이에요. 그렇다 보니 아름다운 전망을 마주하고 조리하거나 식사할 수 있는 구조를 원하는 경우가 많고, 리모델링을 할 때도 구조 전체를 새롭게 바꾸기보다는 기존 형태에서 최대한 집주인이 희망하는 그림을 이상적으로 구현하는 데 집중하죠.





©Gilbertson Photography




사람들은 왜 주방이 모두 공개되는 오픈 키친을 원할까요? 미국 주거 공간을 관통하는 키워드라는 생각이 들어요.

미국 사람들은 열린 주방 공간에서 함께 요리하고, 음식과 와인을 즐기며 담소를 나눠요. 일종의 파티 공간인 셈이죠. 자연스럽게 리빙 룸과 연결되며 확장성을 갖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주방을 구성할 때 조심해야 할 점이 있어요. 한 공간에서 두 곳 이상을 개방하면 사람들은 그 안으로 들어서길 주저하는 심리가 있어요. 현관에서 주방까지 연결되는 짧은 복도, 그 끝으로 주방을 오픈하는 정도가 적당해요. 미국에서는 주방을 흔히 ‘공간의 구심(hub of home)’이라 불러요. 넓든 좁든 간에 사람들은 주방을 중심으로 모이고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죠. 다닥다닥 서로 어깨를 맞대고 서 있어야 하는 것도 개의치 않아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들이 모이는 의미 있는 공간이니까요.










미국의 내로라하는 디자인 회사들이 밀집한 인터내셔널 마켓International Market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미 중부의 인테리어 트렌드가 모두 이곳에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기차역이었던 곳을 1980년대 후반에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한 역사적 건물이에요. 원래는 4개의 분리된 독립적인 플랫폼들을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공간으로 통합했죠. 실제로 건물 로비의 중심부는 기차가 지나다니던 곳이었어요. 현재는 5층 규모의 이 빌딩 안에 인테리어, 가구, 건축, 디자인 전문 회사가 모여 있죠.



수많은 인테리어 & 디자인 회사 가운데 본인이 소속된 파트너스 포 디자이너스 앤드 아키텍츠는 어떤 성격의 회사인가요?

저희 회사를 찾는 고객들은 보다 건축적인 디자인 요소를 원해요. 기능을 중시하고 공간 속에서 리듬감과 동선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죠. 주방을 예로 들면 우리는 공간 모서리 부분에 누군가 서 있거나 일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기려고 해요. 다른 인테리어 회사들은 그곳에 수납공간을 넣는 식으로 빈 공간을 없애는 데 반해서요. 보통 어른 1~2명이 식사 준비를 하는 게 일반적인데, 테이블을 중심으로 각자 움직이면서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런 ‘숨은 공간’을 두어 기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공간을 선택할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나요?

엔지니어였던 아버지는 어린 시절 우리 집을 직접 지었어요. 높은 천장과 볕이 잘 드는 매우 현대적인 스타일의 집이었어요. 그 집이 제가 자란 후 집을 선택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쳐요. 제가 집 위치와 주변 환경을 중요하게 보는 것도 그 시절의 안정감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 거주하는 미네소타의 집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1978년도에 설계된, 기본 골조는 좋지만 내부 인테리어는 정말 형편없는 집이었죠. 그럼에도 구매를 결정한 건 그곳의 환경 때문이었어요. 집 주변이 아주 조용하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데다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산책하기도 좋죠. 최근 수술을 받아 몸이 불편한 이웃이 있는데, 마을 전체가 음식을 나눠 먹으며 도울 만큼 이웃 간의 관계도 높아요. 26채의 가구가 모인 가운데 ‘반장’도 정하고, 1년에 2번 정도 모여 주변 환경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죠. 조경이나 담장, 산책길, 겨우내 내린 폭설로 인한 피해 복구 같은 것에 대해 논의해요. 새 이웃이 오면 환영식도 하고요. 내부는 원하는 대로 수리하면 되지만 주변 환경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죠.





©Gilbertson Photography




하루 중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파티오 소파에 앉아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을 훑으며 중간중간 새소리와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즐기는 기분이 남다르죠. 근처 공원을 산책하거나 친구들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이메일을 체크하며 여전히 일하는 여성으로서 바쁘게 살아가는 긴장감도 새삼 소중해요. 남편과 생선 요리나 심플한 샐러드 등 저녁 식사를 함께 만들어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순간이 특별하게 다가오고요. 며칠 전에는 둘이서 음식을 포장해 근처 놀이터에 가서 먹었는데 참 즐거웠어요. 나이가 든다는 건 딱히 색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과 감사함을 느끼는 과정 같아요.



삶에서 힘든 순간에는 무엇을 통해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나요?

당장 여동생에게 전화하죠.(웃음) 4명의 자매가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에요. 그간 제 삶의 모든 초점은 가족에게 맞춰져 있었던 것 같아요. 딸과 아들을 돌보고, 손자 손녀와 함께하는 삶은 무척 특별했으니까요. 몇 년 전 은퇴한 남편은 하루빨리 제가 일을 그만두길 기다리고 있어요. 함께 하고 싶은 것이 많을 테죠. 좋아하는 여행을 하며 삶의 어지러운 순간들을 극복해가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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