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한동훈은 공인중개사를 따라 이 집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생각했다. ‘여기라면 하우스 콘서트도 할 수 있겠다.’ 거실이 반듯한 정사각형 구조인 데다 부엌과 분리되어 있고 벽지가 아닌 원목으로 두른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 마치 집이 자신한테 그렇게도 살아보라고 권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그는 지금 집과 어떤 대화를 나누며 살고 있을까. 한 달에 한 번 여는 콘서트부터 매일 하는 리추얼까지 그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들었다.
활동명이 있죠?
네. 본명은 한동훈, 아티스트로 활동할 때는 모하니Mohani란 이름을 써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최근에 레이블 ‘사운드 에어 레코드Sound Air Records’를 설립했어요. 아름다운 사운드를 만드는 뮤지션들과 같이 작업하며 시너지를 내고 싶어요.
모하니가 무슨 뜻이에요?
큰 고민 없이 가볍게 지은 이름이에요. 제가 미국에서 오래 살았어요. 거기서 친한 친구가 빈티지 가게를 했는데 가게 이름이 ‘할머니Halmoni’였어요.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할머니가 살았던 시절의 옷과 물건을 팔았죠. 그 친구가 저에게 처음 공연을 제안했어요. 그러면서 아티스트 이름은 뭘로 할 거냐고 묻길래 그 가게 이름(할머니)이 기억에 남았는지 ‘모하니’를 떠올렸어요. “뭐 하니?”하고 묻는 것 같기도 하고 영어로도, 국어로도 읽기 쉽고요. 고향이 부산이라 이제 아예 ‘모하노’로 바꿀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벽에 액자처럼 걸어둔 게 LP 커버군요.
제가 이사 오기 전에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이 벽에 못을 많이 박았더라고요. 그걸 그대로 두고 LP 커버를 전시하는 지지대로 활용하고 있어요. 높이가 딱 알맞죠? 특히 좋아하는 앨범을 걸어뒀어요. 저는 1960~1970년대 음악을 좋아해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발매된 노래를 들으면 오히려 미래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저를 딴 세상으로 데려다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 활동하는 앰비언트는 최신 장르 아닌가요?
아니에요. 앰비언트란 장르를 처음 접한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상당히 오랫동안 진화해 온 전자음악 장르예요.
저는 최근에야 앰비언트를 알게 됐는데 우리말로는 ‘환경 음악’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렵게 느껴졌어요.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자연물에 비유하면 맑은 공기 같아요. 음료에 비유하면 맑게 비치는 차 같고요. 집 안의 사물로 비유하면 늘 그 자리를 지키며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가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말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순수하고 은근하지만 존재감이 있는 사운드라고 생각해요.
그런 특징이 있다면 이 동네 증산동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오래된 주택가의 은은한 풍경이 살아 있죠. 맞아요. 계단에 널린 빨래나 골목으로 삐쭉 나온 마당의 감나무 가지, 능소화를 보면 사실 별것 아닌데 마음이 푸근해져요. 거실에 있으면 새소리도 잘 들려요. 옥상에 가면 북한산도 잘 보이고요. 작업실에서 내다보는 창문 밖 풍경도 정말 좋아해요.
늘 집에 작업실을 뒀나요?
네. 밖에 작업실을 따로 둔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작업실 운영 비용을 아끼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작업실은 그냥 제 삶의 한 부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사 갈 집을 구할 때 항상 제가 잘 방이 아니라 작업실 방을 먼저 살폈어요. 지금도 보세요. 안방을 작업실로, 부엌 옆 제일 작은 방을 침실로 쓰죠. 이 정도 악기와 장비를 수용하면서 작업할 공간이 있는 곳, 그게 제가 집을 고르는 첫 번째 조건이에요.
그럼 집 이야기를 제대로 해볼까요? 언제 이 집에 이사 왔어요?
2022년 2월이었어요. 처음 이 집을 둘러보고 나가자마자 공인중개사 아주머니께 “이 집으로 할게요”라고 말했어요. 아주머니께서 “잘 생각했어요. 청년이 성실해 보여서 (아껴둔 거) 보여준 거야”라고 말씀하셨는데 영업성 멘트인 줄 알면서도 너무 감사했어요. 집에 살림이 빼곡해서 구석구석 볼 수도 없었는데 청소하면 근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을 구할 때 하우스 콘서트를 염두에 뒀나요?
집을 볼 당시만 해도 하우스 콘서트가 제일 조건은 아니었어요. 예전부터 하우스 콘서트를 하고 싶긴 했지만 이전에 살던 집은 그럴 상황이 전혀 아니라 잊고 지냈었죠. 근데 이 집 거실을 보자 바로 그 생각이 떠오른 거예요. 오죽하면 이 집을 제가 찾은 게 아니라 이 집이 나를 찾아줬다고 말하고 다녀요.
재개발 예정지란 게 걱정스럽진 않았어요?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재개발 지역이라 서울치고는 제 예산에서 넓은 집을 구할 수 있었던 거니까요. 공인중개사 아주머니는 “고치는 것도 못질도 마음대로 해도 돼”라고 저에게 속삭이셨죠. 저와 이 집은 서로 잘 만난 것 같아요. 어쨌든 제 형편에 맞춰 풍족하게 살 수 있게 되어 좋고요. 이 집도 분명히 저한테 고마워할 것 같아요.
하우스 콘서트는 왜 하고 싶었어요?
공연을 하고 싶은데 공연장에 연락해서 제가 이런 공연을 하니 ‘섭외해 주세요’, ‘자리를 빌려주세요’ 이런 부탁을 하는 게 저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내 공간에서 내가 하고 싶을 때 공연하겠다’가 첫 번째 목표였어요. 그리고 제가 하는 음악은 큰 공간에서는 겉도는 느낌이더라고요. 생활감이 묻어 있는 작은 공간이 훨씬 잘 어울리는 음악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우스 콘서트는 보통 어떻게 진행해요?
인스타그램에 공지를 띄우고 15명 내외로 신청을 받아요. 당일에는 제가 문지기가 되어 집 사용법을 안내해 드려요. “이쪽이 화장실이고 저쪽 방에 와인이 있습니다. 포토존은 저기이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문은 저기입니다.” 출석 체크가 끝나면 뮤지션 역할로 돌아와 1시간 반 공연 중 첫 번째 연주를 해요. 연주를 마치면 초대한 뮤지션이 공연을 이어가고 저는 거실 맨 뒤나 부엌에서 관찰자가 되죠. 이 ‘공연장’을 지켜볼 때 마음이 벅차요. 뮤지션도 관람객도 즐기는구나. 이 순간이 모두에게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싶어요.
“처음 온 집이라 낯설기는 하지만 언젠가 가봤거나 본 적이 있거나 살아봤을 집. 앰비언트란 장르도 그런 것이에요.”
그 특별함이란 무엇이 만드는 걸까요?
저에게는 우리 집 거실, 그들에게는 남의 집 거실인 이 공간이지 않을까 싶어요. 처음 온 집이라 낯설기는 하지만 언젠가 가봤거나 본 적이 있거나 살아봤을 집의 생김새나 방 크기, 인테리어가 익숙하게 다가오겠죠. 제가 생각하는 앰비언트란 장르도 그런 것이에요. 먼지 쌓인 가구나 튀어나온 못, 낡은 벽지도 그런대로 괜찮은, 그래서 오히려 낯설어도 금방 마음이 편해지게 만드는 무언가죠. 평소 음악을 잘 안 듣거나 앰비언트를 모르는 분도 “좋다”, “재밌다” 하는 거, 그게 저에게 제일 큰 칭찬이에요. 사실 저의 생활 신념도 그래요. 약간의 오차, 약간의 빈틈이 다른 관계를 만들 여지가 된다고 믿거든요.
이 집에 온 뒤로 생긴 취미도 있어요?
매일 30분이든 1시간이든 연주를 해요. 하나의 리추얼인데 계기는 단순해요. 처음 산 악기가 있는데, 친분을 쌓으려면 시간이 필요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겠다는 규칙을 정했어요. 제가 게으른 사람이란 걸 잘 아니까 자리에 앉으면 바로 작업할 수 있도록 다가가기 쉽게 장비를 세팅했고요.
집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음악도 있나요?
딱히 집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 것은 없지만 제가 이곳에서 만든 음악 전부가 아닐까요. 이 집에 와서 사운드가 많이 달라졌어요. 거품이 많이 빠졌다고 할까요. 예전에는 하나라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컸는데 지금은 덜어낼 수 있는 능력과 용기가 생겼어요. 최소한의 요소로도 음악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붙은 것 같아요.
그러네요. 이 집에 살며 창작한 모든 음악이 이 집을 담고 있겠어요.
이 집은 저에게 ‘지금까지 그런 삶을 살았으니까 이렇게도 한번 살아봐’라고 안내해 준 친구 같아요. 여기 와서 생활도 변했어요. 예전에는 술도 많이 먹고 그랬는데 요즘에는 책도 읽고 제 자신을 생각하는 시간도 가지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어요.
이사 갈 때 어떤 느낌일까요?
제가 이 집에 사는 마지막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제 꿈은 이사 가기 전에 공인중개사 아주머니, 아랫집 가족, 집주인 모두 초대해 하우스 콘서트를 여는 거예요. 집주인도 이 안에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대요. 모두 초대해 거실에서 공연하고 옥상에서 술도 한잔하면서 멋진 작별을 하고 싶어요.
1730
더 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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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저자 빈센트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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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오아시스와 마조렐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