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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리테일, 프리미엄, 힙스터

모자의 도시 시카고의 모자 장인

모자 브랜드 ‘옵티모’ 대표 그레이엄 톰슨

블루스 재즈 선율이 흐르고, 두툼한 딥 디시 피자 가게가 있고, 페도라 모자를 쓴 사람들이 가득한 미국 시카고. 그레이엄 톰슨은 1996년부터 예술가와 기업가는 물론 장인의 손끝을 알아보는 이들을 위해 특별한 모자를 만들었다. 그의 모자는 단순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거친 바람이 가득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로 쓰이고 있다.






20세기 초, 총성과 블루스 리듬이 얽히던 미국 시카고 거리에서 모자는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었다. 날카로운 시선과 위험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말없이 존재의 무게감을 드러내는 침묵의 상징이었다. 전설적인 마피아 알 카포네의 어깨 위에도, 푸른 조명 아래 선 블루스 뮤지션의 굳은 턱선 위에도 언제나 모자가 얹혀 있었다. 시카고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레이엄 톰슨Graham Thompson 또한 시카고에서 모자는 도시의 성격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바람의 결, 모서리가 뾰족한 건물들의 실루엣, 그 위를 덮은 회색 하늘. 그는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모자 안에 그런 풍경이 스며 있다고 믿었다.


대학에서는 금융과 일본어를 전공했지만 졸업과 동시에 톰슨은 망설임 없이 전설적인 모자 메이커 조니 타이우스Johnny Tyus의 공방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 7년간 수련하며, 오랜 시간 시카고 모자 문화를 묵묵히 이어온 장인들과 공동체의 정신을 배웠다. 결국 그는 타이우스의 가게를 이어받게 되고, 진짜 모자를 만들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세계 곳곳을 돌며 최고급 펠트를 수집하고, 모자 제작의 황금기를 빛냈던 앤티크 장비들을 복원해 잊힌 기술을 되살린 끝에 1996, 브랜드옵티모Optimo를 설립했다.


매장 안쪽에 조금 특별한 공간이 하나 있네요.

최고급 스트로 모자를 전시해둔 방이에요. 직접 손으로 만지지 않아도, 제가 하나하나 질감과 분위기를 설명해드리기에 감촉이 손끝에 전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죠.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곳이라, 관심 있는 분만 조용히 들어오는, 스피크이지(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는) 바 같은 느낌이에요. 그런 특별한 경험을 전하고 싶었어요.


요즘 클래식 스타일이 다시 유행하면서 옵티모도 무척 바빠졌다고요.

클래식의 회귀 덕도 있지만, 피부암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모자를 찾는 분이 많아졌죠.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모자를 자연스럽게 쓰는 데 익숙해졌다는 사실이 가장 큰 변화예요. 예전엔멋을 부린다는 시선이 강했지만 이제는 모자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죠. 그래도 우리의 시선은 늘 같아요. 유행을 좇기보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땐 분위기가 어땠나요?

제가 일을 시작하던 무렵에 모자 산업은 거의 사라져가는 참이었어요. 다행히도 저는 모자를 진심으로 아끼는 분들을 만났죠. 대부분 1930~1950년대 기억을 간직한 분들이었고, 그 시대의 모자에 대한 고집도 남달랐어요. 직접 손에 쥐어보면 알아요. 그 시절의 모자는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요. 당대에는 진짜 품질이 있었고, 그걸 그대로 재현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죠. 그래서 제 목표는 단순했어요. ‘잊힌 품질을 다시 세상에 보여주자.’


뛰어난 품질의 모자를 만들기 위해 사라진 공장의 장비와 도구, 잊힌 기술, 은퇴한 장인들의 손길까지 하나하나 찾아다녔다고요. 1930~1940년대의 빈티지 기계를 고집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때가 모자 품질의 정점이었으니까요. 이후 모자 산업이 쇠퇴하면서 자연스럽게 품질도, 우아한기품도 함께 무너졌죠. 그래서 보물찾기하듯이 사라진 1930년대 기술과 도구를 찾아 헤맸어요. 지금은 7명의 팀원과 함께 100년 된 옛 소방서를 개조한 작업장에서 모든 공정을 처리해요. 굉장히 노동 집약적이고 비효율적인 방식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원래 모자는 그렇게 만들어야 해요. 우리는 주문 제작도 가능해요. 챙 너비부터 리본 스타일까지 직접 고를 수 있어요. 평균 가격은 약 1500달러, 제작 기간은 6주 정도. 고품질의 펠트 모자는 비나 눈이 올 때도 쓸 수 있고, 마치 몸의 일부처럼 평생 함께할 수 있어요. 사실 저는 모자 산업 자체엔 크게 관심이 없어요. 제 목표는 단 하나예요. 최고의 품질! 그 영감은 전부 70년 전 산업에서 나와요. 지금도 그 시대로부터 계속 배우고 있고요. 그 시절의 방식이 저에겐 여전히 가장 아름답고 정직하게 느껴져요.


고객에게 던지는 첫 질문이 뭔가요? 일반적으로어떤 디자인을 찾으시나요?”라고 묻는데요.

디자인을 먼저 내세우지 않아요. 주문 제작 또한 권하지 않아요. 모든 고객과 처음엔 그저 가볍게 대화를 나눠요. 평소 어떤 옷을 즐겨 입는지, 도시적 감성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서부의 거친 멋을 선호하는지 묻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사는지, 모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듣는 거예요. 모자는 그 사람의 태도, 정체성, 감각을 말해주는 목소리라고 생각하면 건네는 질문 하나하나가 조심스럽죠.


제작 과정이 결코 간단하지 않을 텐데, 어떤 순서로 이뤄지는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줄 수 있나요?

첫 단계는 언제나 디자인이 아니라 소재예요. 정확히는 펠트죠. 저희는 포르투갈의 펠트 전문 업체 페스파Fespa에서 최고급 펠트를 공수해요. 펠트가 도착하면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지하 저장고에 보관해요. 본격적인 제작은 펠트에 스팀을 가해 부드럽게 만든 다음 원하는 형태를 잡는 블로킹blocking으로 시작해요. 고온의 스팀 챔버 안에서 베이킹하듯 모자를 구워내는 디캐티징decatising을 거치면 형태가 단단히 고정되죠. 이후에는 손맛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마감 공예실에서 크라운과 챙을 정교하게 다듬고, 광택을 내고, 디테일을 정리해요. 그런 다음 리본, 안감, 스웨트 밴드를 붙이는 트리밍trimming 작업을 거쳐 챙에 특유의 곡선을 삽입하는 마지막 단계 플랜징flanging으로 이어져요. 이런 순차적 과정을 거치는데, 모든 단계에서 단 하나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주저 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도 많이 가지만, 이것이 바로 품질을 결정한다고 생각해요.


이 중 가장 중요한 단계가 있을까요?

공정으로 따지자면 펠트의 결을 만들어내는 마감 단계가 정말 중요해요. 그 결이야말로 모자의 첫인상을 결정하거든요. 섬세한 손길 하나로 모자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지죠.



시간이 지나도 몸의 일부처럼 남는 모자를 만들고 싶었어요. 모자를 쓰는 건 단순히 스타일이 아니라, 어떤 태도를 갖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시카고에서 모자 문화의 전성기는 언제였나요?

20세기 초예요. 특히 1914, 미국에서 1인당 모자 판매량이 최고치를 찍었죠. 그 시절 거리엔 모자를 쓰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모자가 멋의 기준이자 사회적 예의였어요. 그땐 브랜드마다 품질로 정면 승부하던 시대였어요. 펠트의 질감, 마감의 정교함, 전체적인 완성도까지, 모든 면에서 치열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매출이 우선시되고, 값싸고 가벼운 프리셰이프 모자가 시장을 채우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멋도, 기술도 조금씩 가벼워졌죠. 자동차가 대중화된 것도 커다란 변화였어요. 걷는 일이 줄면서 굳이 날씨를 살필 필요가 없어졌거든요. 그렇게 모자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고, 모자 문화도 함께 기억에서 멀어졌죠.


언제 처음 모자에 매료되었나요? 그때를 기억하나요?

아마도 아주 어렸을 때였을 거예요. 아버지 옆에 앉아 고전 누아르 영화를 보던 어느 저녁이었죠. 화면에서 신사들이 천천히 걸어 나오는데, 머리에 쓴 모자가 이상할 정도로 눈길을 끌었어요. 말수가 적고 표정도 거의 없는 인물들이었는데, 모자 하나로 말보다 많은 걸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죠. 정확히는 그 순간, 모자가 단순히 머리에 쓰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의 태도와 존재감을 형상화하는 도구라는 걸 직감으로 알아차렸던 것 같아요.


스승인 모자 메이커 조니 타이우스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열여섯 살 때 소개로 타이우스를 만났고, 그가 영화언터처블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쓰고 나온 모자를 만든 장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언젠가 꼭 그에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리기 시작했죠.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마음으로 그를 찾아갔어요. 매일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 저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만 해낼 수 있는 미묘한 감각을 배워갔어요. 어느 날 그가 이곳을 팔겠다는 말을 하자마자 내가 이 일을 이어가겠다는 생각을 했죠. 제자로서의 의무가 아니라 바라던 기회로 선택한 것입니다.


옵티모는 영어로최상의라는 뜻이죠. 최고의 모자를 만들겠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이름인가요?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이 이름은 남미에서 유래한 전통적인 클래식 스트로 모자에서 따온 거예요. 가운데에 길게 주름이 잡힌 형태를 옵티모라고 부르죠. 예전엔 그 모자를 반으로 접어 품에 넣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어요. 휴대하기 편하고, 다시 펴도 본래 형태가 잘 유지됐거든요. 제가 이 이름을 브랜드로 사용한 건 단지 멋진 실루엣 때문이 아니에요. 그 안에 담긴 정신, 유연하지만 무너지지 않고, 전통을 품으면서도 기능적으로 완벽한 구조 때문이죠. 시간이 지나도 몸의 일부처럼 남는 모자를 만들고 싶었어요. 모자를 쓰는 건 단순히 스타일이 아니라, 어떤 태도를 갖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타 브랜드와 옵티모의 특별한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첫째는 원재료예요. 옵티모를 위해 제작한 실버 비버 펠트를 사용하거든요. 손끝으로 만져보면 금세 알아요. 단지고급이라는 말로는 부족해요. 밀도와 깊이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빛과 그림자가 다르게 흐르죠. 둘째는 방식이에요. 요즘은 효율이 우선이잖아요. 빠르고 싸고 편한 게 기준이 되는 시대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펠트를 다리고, 면도하고, 광을 내요. 오래 걸려도 그게 우리 방식이고 신념이에요. 하나 더 꼽자면, 마감 방식이죠. 리본 하나, 안감 하나도 전부 손을 거쳐요.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 소홀히 하지 않죠. 지금껏 제가 복원하고 연구한 수많은 빈티지 모자를 떠올려봐도 옵티모의 트리밍은 최고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모자 메이커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가요? 많은 도전 뒤에는 포기도 감수해야 할 것 같아요.

이 정도 퀄리티의 모자를 만든다는 건 정말 많은 걸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죠. 좋은 재료는 언제나 귀하고, 단종된 기계를 하나하나 찾아 복원하는 일도 결코 간단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정성을 쏟아도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는 건 또 다른 여정이고요. 하지만 그만큼 보람도 커요. 세계 곳곳에서 멋진 고객을 만나고, 결과물이 매번 한 단계씩 나아갈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죠.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우리 팀의 장인 정신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사실이 늘 자랑스럽습니다.


시카고가 고향이라고요. 이 도시와의 인연이 꽤 깊어 보입니다.

, 태어나고 자란 곳이에요. 시카고는 원래부터모자의 도시였어요. 날씨가 워낙 제멋대로라 모자가 꼭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스타일의 일부가 된 거죠. 재즈와 블루스처럼 이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 역시 모자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어요. 건축, 디자인도 마찬가지예요. 시카고의 정체성은 여러 요소가 촘촘히 얽혀 만들어졌고, 모자 역시 그 흐름 속에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의 말을 듣고 보니 매장 위치도 시카고답다는 생각이 드네요.

중심부, 수직 빌딩이 가득한 시카고 도심을 그대로 압축한 모나드녹 빌딩 안에 있어요. 1958년 시카고 건축 랜드마크로 지정된 최초의 건물로 미국 건축사에서도 아주 중요한 건물이에요. 도시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어서 브랜드 정체성과도 딱 맞죠. 이보다 더 시카고다운 장소는 없다고 생각해요.


모자 공방에서 함께 작업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오랜 시간 함께 일해온 동료들이에요. 채용은 늘 신중하게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하죠. 모자 제작은 몇 달 만에 배울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모자 메이커가 되려면 시간과 집중력, 손의 감각이 모두 필요해요. 저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팀원도 많아요. 각자 자신만의 전문 분야가 있고, 저는 그걸 조율하며 전체를 이끌고 있어요.


모자 문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옵티모 관련 책도 출판한 만큼 시카고가 아닌 다른 도시에도 매장을 오픈할 계획은 없나요? 옵티모 브랜드를 어떻게 성장시킬지 궁금해요.

모자업계 자체에는 관심이 없어요. 저에게 성장이란이 아니라깊이예요. 더 많이 만드는 게 아니라, 한 사람에게 완벽히 맞는 모자를 만드는 것. 대량생산은 우리의 방식이 아니에요. 숫자는 줄일 수 있어도 품질은 절대 타협할 수 없죠. 진짜 브랜드는 그렇게 좁고 정교한 길을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고 믿어요.



Text | Anna Gye

Photos | Mineu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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