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SPACE|라이프스타일, 커뮤니티, 코워킹, 재생

노인을 위한 집은 있다

시니어 리빙 하우스

Text | Nari Park

종종 미래의 집을 그려본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도심의 아파트 생활을 이어갈까, 아니면 정원이 딸린 전원주택에서 한 번씩 찾아오는 가족을 반기며 살아갈까. 무료 조식, 커뮤니티 센터, 피트니스 시설, 수영장, 헬스 전문가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시니어 리빙 하우스는 노인을 위한 이상적인 집을 선보인다.







미국에서는 노년층의 주거 대안으로 전문 시니어 리빙 하우스senior living house가 일반적 대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듬해인 1946년, 340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나 ‘베이비붐 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60~70대에 접어들면서 ‘노후의 집’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형성된 결과다. 2030년에는 미국인 5명 가운데 1명이 베이비붐 세대가 되며 노령화가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다수의 미국 부동산 전문 미디어가 향후 시니어 리빙 하우스 트렌드를 가늠하는데 올해를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존 노년층이 자녀에게 의지하며 함께 거주하던 것과 달리, 베이비붐 세대는 자녀의 집 근처에 집을 마련해 독립적인 생활을 하길 원한다.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 부흥을 이끈 이들은 다양한 취미와 재능을 갖춘 것은 물론 도시 생활에도 익숙하다.” <시니어 하우징 뉴스>의 이와 같은 분석처럼 생의 황혼기를 준비하는 60대 이상 노인들은 이전 세대와는 확실히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한다.




“시니어 리빙 하우스는 '우아하게 늙어가는 것(aging gracefully)'에 대한 노년층의 바람을 집약한 이상적인 주거 형태다.”

- <비즈니스 인사이더> 기사 중 -




‘시니어 리빙 하우스’란 노인층을 타깃으로 특화된 아파트 또는 타운 하우스를 가리킨다. 여러 타워를 연결해 적게는 수십, 많게는 1000여 세대가 더불어 생활하는 시니어 리빙 하우스는 노인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모든 서비스가 집약되었다. 커피와 와인을 마시며 정기적으로 친목을 도모하는 커뮤니티 룸은 물론 피트니스 시설, 요가 센터, 수영장, 골프 클럽, 산책 코스와 텃밭 등 차별화된 시설로 경쟁력을 높인다. 자체 관리실을 통해 전구를 교체하거나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고 우편물을 직접 받는 수고로움을 해결한다. 격렬한 신체 활동을 독려하기보다는 사회적 활동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편의 시설에 집중하는 섬세함이 돋보인다.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 같은 시류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최근의 시니어 리빙 하우스는 5성급 리조트에 준하는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는 수상 경력에 빛나는 셰프, 와인 셀러, VIP 트리트먼트 등 최고급 서비스가 집약되어 있다. 시니어 리빙 하우스를 중심으로 ‘럭셔리 커뮤니티’ 트렌드를 엿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시니어 리빙 하우스 입주 비용은 일반 아파트를 훨씬 웃돈다. 입주 희망자의 건강 상태, 희망하는 서비스 등을 고려해 월세로는 수천 달러, 매매 비용으로 약 100만 달러(약 12억 원)를 책정했다.




누군들 자신이 살던 곳을 등지고 낯선 시설에 들어가는 삶을 예견하고 희망할까.

그 고민 끝에 발전을 거듭한 것이 지금의 시니어 리빙 하우스다.




시니어 리빙 하우스 전문 업체 애프터55가 미국 최고의 시니어 리빙 하우스로 꼽은 ‘브룩데일 시니어 리빙Brookdale Senior Living’은 미국인들이 희망하는 궁극의 시니어 리빙 하우스로 볼 만하다. 미국 47개 주 내 10만 명 이상의 주민을 보유한 이곳은 노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다각도에서 배려한다. 언제든 전문 도우미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어시스티드 리빙Assisted Living’, 전문 직원이 알츠하이머나 치매 환자의 거동을 24시간 가족에게 전달하는 ‘메모리 케어Memory Care’를 제공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언뜻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원이나 전문 병원의 인상이 짙지만, 일상 생활이 가능한 건강한 노인들을 위한 ‘인디펜던트 리빙Independent Living’ 하우스도 갖췄다.


일례로 미네소타에 자리한 브룩데일 시니어 리빙 하우스 지점을 살펴보자. 거주민은 근처 타깃 필드 구장에서 트윈스 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워커 아트 센터의 야외 조각 공원을 산책한다. 미시시피강을 따라 패들보트를 즐기고, 도보로 닿는 근처 로컬 상점에서 요리 수업과 라이브 연주, 오후의 마티니 한잔을 즐길 수도 있다. 아울러 노인을 위한 텃밭을 제공하고 헤어 숍과 뷰티 살롱 서비스도 제공한다. 도서관과 산책로, 수영장 시설은 기본이다. 비단 노인뿐 아니라 젊은 층에게도 시니어 리빙 하우스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표적인 럭셔리 시니어 리빙 하우스로 꼽히는 아코야 트룬 코티야드Acoya Troon Courtyard.




사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역시 시니어를 위한 주택의 폭이 넓은 것은 아니었다. 한국처럼 본인 소유의 집에 머물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료가 필요한 나이가 되면 요양원으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누군들 자신이 살던 곳을 등지고 낯선 시설에 들어가는 삶을 예견하고 희망할까. 그 고민 끝에 발전을 거듭한 것이 지금의 시니어 리빙 하우스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지금, 노년층이 밀집한 시니어 리빙 하우스는 오프라인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관계의 커뮤니티’로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자가 격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집의 공간적 한계에서 오는 답답함을 상쇄하고 이웃과 소소한 안부를 건넬 수 있는 ‘작은 사회’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관계 지향형 주거 모델인 시니어 리빙 하우스는 물리적 나이를 떠나 공동체 생활을 희망하는 이들의 대안으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죽는 날까지 관계 맺기를 희망하는 인간의 바람을 이처럼 완벽하게 구현한 주거 커뮤니티가 있을까.




RELATED POSTS

PREVIOUS

집을 떠나 집을 생각하다
호텔 그라피 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