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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호텔, 노마드, 힙스터

시드니 물 위를 유영하는 고독의 빌라

릴리패드 팜비치 호텔

Text | Nari Park
Photos | Lillypad Palm Beach

“우리가 병든 것은 우리만의 시간을 소음과 바꾼 까닭이다.” 원로 철학자 박이문이 쓴 아포리즘의 한 구절처럼, 잡음 가득한 세상에서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고독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완벽한 휴식처라 하겠다. 호주 시드니의 인적 드문 해변을 유영하는 수상 호텔 ‘릴리패드 팜비치’는 육지의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완벽한 정적 속에 잠들고 싶은 이들의 바람을 담았다.







디자이너 척 앤더슨Chuck Anderson이 설계한 릴리패드 팜비치Lilypad Palm Beach는 단독주택을 연상시킨다. 바다 위에 떠 있다는 위치적 특별함을 제외하면 언뜻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펜션 건물과 흡사하다. 최근 시드니 팜비치 연안에 정박해 영업을 시작한 이 부티크 호텔은 최대 14일까지 머물 수 있다. 물 위에서 즐기는 특별한 점심 식사와 스파 서비스 같은 럭셔리 이벤트를 제공하며, 점심 식사는 16명까지, 스파는 6명까지 가능하다.

릴리패드 팜비치는 화려한 인테리어 디자인과 특별한 경험 등 최근 호텔들이 내세우는 경향에서 나아가, 인간의 절대적 고립과 고독을 서비스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물 위를 유영하는 호텔은 유유자적의 특별한 낮과 밤을 선물한다. 완벽한 태양열발전으로 운영하는 이곳은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통해 원시의 자연과 융화되기 위한 나름의 방식을 선택했다.








바다 위를 항해하는 이 완벽한 플로팅 호텔에서는 소소한 일상의 단면과 마주할 수 있다. 인적 드문 시드니의 팜비치 연안에 정박한 호텔은 한 시간 거리의 피트워터Pittwater 일대까지 운항하는데, 바다 위의 완벽한 고요와 마주하는 순간은 모든 게 특별하다. 물결에 따라 미세하게 오르내리는 호텔의 움직임, 지평선 너머로 해가 뜨고 지는 순간, 검은 밤바다와 나누는 무언의 대화. 크루즈나 보트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몇 날 며칠의 낮과 밤을 보내야만 체득할 수 있는 바다 위에서의 일상은 지극히 사소해 더욱 특별하다. 테라스에 앉아 바라보는 수면 아래로 유영하는 흰 해파리 떼, 데크 위에 날아와 앉는 갈매기, 주방에서 요리하며 창밖으로 내다보는 바다 풍경은 며칠 밤을 바다에 허락해야만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처럼 자연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순간, 비로소 고독의 여행이 완벽해진다. 완벽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가 이곳에 있다.




“사람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곁에 두고 즐길 수 있는 휴식 공간을 필요로 한다. 지금껏 교류했던 세상과 완벽하게 차단하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 척 앤더슨, 디자이너 & 릴리패드 팜비치 호텔 대표 -




자발적 고독과 고립을 부여하는 운영 방식은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타인과 거리를 두는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시드니 주민만 예약을 받는 이 호텔은 완벽하게 사회와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이유로 예약이 끊이질 않는다. ‘안전하고 인적이 드문 비치의 특성을 반영, 현재의 일상에서 완벽하게 고립되고 싶은 사람들의 문의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호텔 측의 설명이다.








호텔 이용객들의 만점에 가까운 리뷰는 설득력을 높인다. 이곳에서 스몰 웨딩을 치른 제시카 르 허레이는 “미칠 것 같던 결혼식을 마치고 완벽하게 바다 위에서 마주한 허니문의 적막은 최고의 호사였다”고 반추한다. 또 투숙객 루디 마운더는 “이틀을 머무는 동안 종종 하늘이 흐리고 비가 내렸지만 그것이 오히려 마법 같은 풍경이었다”라며, 적막과 무료함이야말로 일상의 사소한 풍경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하룻밤 숙박비가 최소 1650달러이지만 완벽한 고독을 위해 지불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이들은 주저하지 않는 듯 보인다.

프랑스 철학자 올리비에 르모는 그의 저서 <자발적 고독>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세계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세계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사회로 되돌아갈 필요를 느낄 때 고독을 경험한 이들은 이전과는 달라져 있다. 고독은 되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내면의 자발적 망명이자, 회심과 변화의 기술인 것이다.” 확실한 것은 완벽한 내면과 만나는 고독의 시간을 경험한 이들의 삶이 이전과 조금은 방향을 달리한다는 사실이다. 집단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내면과 살아온 삶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호텔이라는 ‘한시적 집’의 키워드로 떠오른 시대. 지금 우리는 나의 공간 속에서 어디까지, 얼마만큼 고요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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