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SPACE|도시, 호텔, 노마드, 다양성

영화 속을 굴러다니는 집

타이니 홈

Text | Kay B.
Photos | Chloe Barcelou

프리랜서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클로이와 브랜든이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집, 타이니 홈. 영화 세트장에서 버려진 목재를 재활용해 만든 집은 그들의 취향이 담긴 빈티지한 소품으로 꽉 차 있다. 이 커플은 바퀴 달린 집에서 화보나 영화를 찍으며 커리어를 쌓고 밤이면 아늑한 침실에 누워 대자연을 만끽한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tvN의 TV 프로그램 <바퀴 달린 집>이 화제다. 자동차에서 잠을 자는 ‘차박’이나 캠핑용 자동차보다 한층 더 집 모양새를 갖춘 트레일러 하우스가 등장한다. 그곳에서 몇 명의 연예인들이 누군가를 초대해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들은 종종 부엌에서 물을 너무 많이 써서 보관용 통에서 오수가 넘치는 불상사를 겪지만, 이동하는 집이 캠핑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사실 이러한 삶의 양식은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타이니 하우스tiny house라는 대안적 주거 형태로 자리 잡은 개념이다. 작은 공간에 꼭 필요한 가구와 생활 도구만 갖추어놓고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바퀴 달린 형태의 집에서 사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문화는 땅이 드넓은 북미와 유럽 지역 젊은이들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바퀴 달린 집>이 자연을 만끽하려는 여유 있는 모습이라면, 서양의 타이니 하우스는 의식주를 해결하는 현실적인 집에 가깝다. 후자의 의미에서 영화 세트 디자이너 클로이 바셀루Chloe Barcelou와 그의 약혼자 브랜든 배첼더Brandaon Batchelder의 집 타이니 홈tiny home은 삶과 일에 모두 적합한 좋은 사례이다.








300m2 크기의 타이니 홈은 스팀펑크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고풍스러운 현관과 바로 옆에 달린 거대한 선박용 핸들(이 핸들을 돌리면 집이 2배 이상으로 넓어진다), 안쪽에 자리한 빈티지풍 오븐, 뜨개질로 만든 담요, 인형 침대에서 잠을 자는 애완 토끼. 마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등장하는 살아있는 성처럼 웅장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을 뿜어낸다. “타이니 홈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문제였어요. 브랜든과 저는 둘 다 프리랜서 아티스트이기 때문이었죠. 저는 영화 세트 디자이너로도 활동하다가 둘이서 함께 프로덕션 회사를 차리게 되었어요.”

클로이와 브랜든은 수년 동안 재정적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들이 애써 만든 세트장이 촬영이 끝난 후 버려지게 되자 목재 구조물을 재활용해 집을 짓기로 한 것이다. 미국 전 지역을 돌아다녀야 하는 일의 특성상 집에 바퀴를 달아서 이동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라 생각했다. 2014년 가을 미국 뉴햄프셔에서 처음으로 짓기 시작한 타이니 홈은 4개월 만에 전체 윤곽이 완성되었다. 그녀에 따르면 집을 완공하기까지 주차 공간을 마련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은 한 지역에서 집을 짓는 동안 땅을 빌려줄 사람이 있는지 광고를 냈는데, 블럼즈라는 땅 주인이 2년 동안 무상으로 주차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 한다.








타이니 홈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거실이 바로 보인다. 몽환적인 조명과 샹들리에, 양말이나 옷가지를 보관하는 그물 등 클로이의 취향이 담긴 소품이 잘 정돈돼 있다. 영화 세트 디자이너인 클로에는 실제로 촬영장에서 쓴 소품을 집에 들여놓기도 한다. 때로는 타이니 홈을 촬영장으로 쓰기도 하기 때문에 집에 들이는 물건을 고를 때는 전시할 오브제를 고르듯 심혈을 기울인다. 거실 바닥은 이들이 키우는 애완 토끼의 은신처로 설계했다. 평소 래비탓rabitat이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토끼는 밥을 먹거나 굴 속으로 뛰어다니며 하루를 보낸다. 내부 공간에서 윗부분은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침실이다. 생활 반경과 구분되도록 복층으로 디자인해 보다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브랜든이 맨 처음 타이니 홈을 설계할 때, 집 위쪽에 18개의 크고 작은 창문을 마련했다. 주로 탁 트인 자연에 주차하기 때문에 낮에는 햇빛을 듬뿍 받아서 인공조명을 쓸 필요가 없고 동시에 에너지까지 절약할 수 있다. 이런 절약 정신은 타이니 홈에 수납 가구를 만들 때도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부엌 찬장 가격은 50달러(약 6만 원)도 되지 않는데, 도로변에 버려진 것을 리폼했기 때문이다. 샤워 부스는 25달러(약 3만 원)어치의 고철을 모아 직접 만든 것이며, 화장실 캐비닛은 칠면조 구울 때 쓰는 팬과 거울을 이용해서 멋지게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타이니 홈에서의 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 커플은 전체적으로 인테리어에 새로운 변화를 줄 예정이다. 클로이의 말에 따르면, 좋은 인테리어란 그 공간에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정말로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타이니 홈에서 지내는 동안 클로이와 브랜든은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는 붙박이 형태 가구를 제작하는 중이라고 했다. 또 타이니 홈을 처음으로 만들고 이곳에서의 삶을 일군 과정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는 중이다. “우리가 이 작은 집을 디자인하고 직접 만들고 살았던 경험은 제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이었어요. 물론 어려움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이 되고 즐거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커리어에서도 정말 많은 기회를 열어주었기 때문이에요.”

TV 프로그램 <바퀴 달린 집>의 출연진 중 한 명이 집 안을 수리하면서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이건 힐링이 아니라 킬링이잖아!” 모든 것을 갖춘 집을 놔두고 최소한의 것만 있는 이동식 집에서 생활하는 데는 분명히 커다란 어려움이 있다. 타이니 하우스가 일종의 미니멀한 트렌드라고 해서 그 붐에 휩쓸려 허울만 좇기보다는 자신에게 집은 어떤 곳이고 어떤 수단인지 찬찬히 살펴보는 게 먼저다. 클로이와 브랜든의 경우 자신에게 집과도 같은 약혼자와 함께한다는 점, 영화 촬영지로 기능해야 한다는 점, 이 두 가지에 집중한 결과물로 타이니 홈이 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당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집의 기능과 가치만 모아놓는다면 어떤 모양의 공간이 탄생할까?




RELATED POSTS

PREVIOUS

집을 떠나 집을 생각하다
호텔 그라피 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