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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호텔, 노마드, 재생

상상이 현실이 되는 멋진 신세계

카사 플레네어, 빌라 사라세니 외

Text | Anna Gye
Photos | Child Studio, Riccardo Fornoni, Alexis Christodoulou, Mue Studio

3D 아티스트는 실제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하는 것 같은 현실 속에 집을 짓는다. 우리는 가상과 현실이 뒤섞인 ‘공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더 이상 진실과 거짓은 중요하지 않다. 픽셀로 지은 집에서는 삶을 체험하는 또 다른 방식이 작동한다. 지난 여행을 되새김질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하고 마음 깊은 곳에 뭉쳐 있는 감정을 건드리기도 한다.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은 책 <언컨택트>에서 공존 현실은 멋진 신세계라 표현한다. 공존 현실은 가상현실과 증강현실보다 한발 더 나아간 개념이다.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섞은 기술에 네트워크를 결합해 원격의 다른 사용자들이 현실감을 느끼며 친밀하게 협업하는 세상이 바로 공존 현실이다. 혼자 꾸면 꿈이지만 모두가 꾸면 현실이 되는 곳. 이곳에서는 진짜와 가짜가 중요하지 않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도 없다. 느끼는 모든 것을 그냥 받아들이면 되고, 지각한 것이 곧 현실이 된다. 실제 존재하진 않으나 존재하는 것 같은 현실을 만드는 이들이 바로 3D 아티스트다.

3D 이미지는 가상현실, 증강현실 기술의 플랫폼을 이용하면 실제 그 공간에 찾아가는 경험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가상 공간은 가짜를 전제했지만 공존 현실 속에서는 실재감이 우선이다. 심장이 뛰고 손에 땀이 밸 만큼 사실적인 이미지와 현실적인 물건과 장소를 등장시켜 사람들의 욕망을 건드린다. 픽셀로 그린 정교한 공간은 1인칭 시점을 바탕으로 해 강한 몰입감을 준다. 일상과 일탈이 뒤섞인 공간을 탐험하는 일은 타인의 집에 초대받은 것 같은 설렘을 주는 동시에 자신의 심리 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명상을 유도하기도 하고 풀리지 않았던 감정이 해소되기도 한다.








<엘르 데코>, <월페이퍼> 등의 매거진이 인테리어 건축물로 소개한 카사 플레네어Casa Plenaire’. 이곳은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차일드 스튜디오가 만든 가상의 비치 하우스다. 디자이너 체황Che Huang과 알렉시 코스Alexy Kos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영국 스킨케어 브랜드 플레네어Plenaire와 협업한 작품입니다. 여행과 휴식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먼 목적지를 상상하는 모습을 표현했어요. 불안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요즘 같은 시기에 떠나고 싶은 여행지에서 머무는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요한 바다는 지중해의 휴양지 발레아레스 제도Balearic Islands에서, 아치형 구조 건물은 그리스 산토리니의 원형 별장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집에 펼쳐진 물건은 아티스트 피에르 폴린Pierre Paulin, 에로 아르니오Eero Aarnio, 그레타 본네선Greta von Nessen 등의 그림에서 차용했다.








3D 아티스트 리카르도 포르노니Riccardo Fornoni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샬로트 타일러Charlotte Taylor가 함께한 빌라 사라세니Villa Saraceni 또한 코로나19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치유의 집이다. 이탈리아 시슬리 ‘스카라 데이 투르키Scala dei Turchi’의 모래 절벽 위에 들어앉은 집에는 아티스트 피카소의 세라믹 작품과 핀란드 디자이너 일마리 타피오바라Ilmari Tapiovaara의 커피 테이블 등 실재 작품이 등장한다. 모래성 같은 집에 앉아 발끝에서 넘실거리는 바다를 하루 종일 바라보고 싶어진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세상이 저 너머 있다면 그것이 현실 아닐까요? 가상현실, 증강현실 서비스를 끊김 없이 이용할 수 있는 5G 시대가 오고, 오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디지털 도구가 개발되면 상상이 곧 현실이 될 것입니다. 현실은 상대적 개념일 뿐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죠.” 인테리어 디자이너 샬로트 타일러는 비주얼 아티스트와 함께 이미지너리 하우스 프로젝트 ‘메종 드 사블Masion de Sable’을 진행 중이다. 이 프로젝트는 ‘앞으로 우리는 멋진 공간이 아닌 감정이 풍부한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발전했다.

3D 이미지를 이용하면 본인에게 중요한 사건, 사람, 기억이 반영된 집을 만들고 가상 체험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 건축도 가능하다. 중국 구이린 마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디 아더 플레이스 구이린 리토피아The Other Place Guilin Litopia’는 스튜디오 10이 작업한 3D 이미지를 고스란히 현실로 옮긴 것이다. 스튜디오 10은 착시 현상이 느껴지는 그래픽 아티스트 에스허르M.C. Escher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3D 작품을 만들었다. 게스트하우스 벽에서 객실 계단이 튀어나오고 현관문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비비드 컬러로 채워진 객실은 물리적 법칙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철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말하는 수수께끼 같은 꿈을 꾸는 것 같다.







3D 아티스트 알렉시스 크리스토돌로Alexis Christodoulou는 미니멀한 선과 차분한 색채로 만든 정적인 공간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VR 기기를 쓰고 공간에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현실 감도 높은 작품을 추구하는 그는 뱅앤올룹슨, LG 시그니처, 그로헤 등 많은 리빙 브랜드와 이미지 및 영상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을 따르는 19만 명의 팔로워들은 매일 집 구경을 떠난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 아티스트 강민진Minjin Kang과 김미주Mijoo Kim로 이루어진 뮤스튜디오의 시리즈 작업 ‘섬웨어 인 더 월드Somewhere in the World’도 우리를 세상 밖으로 이끈다. 인스타그램에서 화제를 모은 프로젝트 ‘비주얼 이스케이피즘 II Visual Escapism II’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작품이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안식처에 당도한 것 같은 느낌. 그곳에는 커다란 창이 있다. 창밖으로는 달이 떠 있는 깜깜한 밤하늘, 새파란 하늘 아래 잔잔한 바다, 살결처럼 부드러운 모래가 보인다.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고요한 풍경은 현실을 잊게 만들고, 기억 속 목적지로 순간 이동한 것처럼 느껴진다. 현실과 가상,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려는 퇴행적 시선을 거두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장소에 도달할 수 있다. 세상을 느끼는 방법이 달라지면 세상은 변한다. 늘 꿈꿀 수 있는 세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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