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SPACE|도시, 호텔, 노마드

산업 디자이너의 주거 공간 실험

어 베터 플레이스

Text | Dami Yoo
Photos | Sangpil Lee

종각역 어느 골목 4층에 특별한 스테이가 문을 열었다. ‘어 베터 플레이스A Better Place’의 첫 번째 객실 401호다. 곱창집과 호프집, 코인 노래방과 DVD방이 즐비한 번잡한 종로, 일명 젊음의 거리에 자리해 있다. 스테이가 이렇게 의외의 장소에 들어선 이유는 따로 있다. 거주 문화와 공간에 대한 실험이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 베터 플레이스 401호는 산업 디자인 스튜디오 유스풀 워크숍Useful Workshop이 기획하고 운영에 참여한다. 산업 디자이너가 만든 여행객을 위한 스테이라니, 그것도 혼잡한 상업지구 한가운데, 방 한 칸으로 이뤄진 숙박 랜드라니. 의아하지만 이곳은 머무르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침실은 물론 부엌과 화장실 모두 완성도 높은 미감으로 완성되어 있으며 선반, 침대, 소파, 수건 걸이 등 대부분의 가구는 이곳을 위해 직접 디자인했다.

생각해보면 종로는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서울을 경험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위치이기도 하다. 낮에는 굴지의 기업 사옥이 불을 밝히고 저녁이 되면 술집을 찾는 이들로 북적거리는 곳. 공무원, 각종 자격증 시험을 목전에 둔 학원 수강생들도 여기에 모여든다. 서울의 주요 명소들이 지척에 있어 여행객들도 자주 찾는다. 이렇게 도시의 날것을 경험할 수 있는 지역이라는 점은 스테이의 입지 조건에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곳을 단순한 숙박 브랜드로 치부하기엔 비장한 면이 있다. 그 비밀은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말해준다.







정확히 말해 어 베터 플레이스는 생활의 편리함과 아름다움을 제안하는 숙박 브랜드이자 주거 공간 브랜드다. 오랫동안 동시대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주거 공간에 대해 고민했던 문석진 디자이너가 자신의 생각을 현실로 이루어낸 일종의 프로토타입이기도 하다. 문석진의 공간은 산업 디자이너답게 접근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벽, 바닥, 천장 같은 공간의 요소도 제품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한 것. 기능과 용도를 가진 모듈형 벽이 그의 대표적인 아이디어다.








벽은 공간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골격으로, 영역을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용도다. 그러나 어 베터 플레이스의 벽은 수납공간, 책꽂이, 환풍기, 전기 배선 등 아홉 가지 기능을 하는 ‘모듈형 벽’이다.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모듈을 고르고 공간의 크기에 맞게 설치할 수 있어 공간을 유연하게 구성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각각의 모듈은 별도의 시공 없이 편리하게 설치할 수 있으며 일반 주택이나 아파트 모두 조화롭게 어울리도록 디자인했다.




공간의 요소를 용도를 지닌 제품으로 디자인하고 이를 조합해 개인화된 공간을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아이디어는 어 베터 플레이스의 오리지널리티가 된다.




공간 디자이너와 산업 디자이너의 사고방식의 차이를 여기서 느낄 수 있다. 일반적인 공간 디자이너라면 용도에 따라 공간을 나누고 소재, 가구, 제품으로 공간을 채워 완성한다. 반면 문석진은 공간의 요소를 용도를 지닌 제품으로 디자인하고 이를 조합해 개인화된 공간을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아이디어는 어 베터 플레이스의 오리지낼리티가 된다.

한편 이 아이디어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안할 수 있게 디자인하는 것도 중요한 숙제였다. 문석진은 제품의 완성도와 함께 경쟁력 있는 가격까지 충족시켜야 ‘정말 나은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단계의 공정으로 제품이 완성되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가장 큰 주안점이었다. 어 베터 플레이스가 만들어지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친 이유이기도 하다. 401호에서 볼 수 있는 모듈 벽과 수건 걸이, 작은 우산꽂이 등은 대부분 절곡 기법이나 절삭가공 등을 사용해 단순한 공정으로 만들었다.








401호 객실 안 서가도 살펴볼 만하다. 여기에는 더 나은 공간에 대해 생각하며 읽어볼 만한 서적들을 두었다. 그중 장림종, 박진희의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는 이 공간의 토대가 된 책이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도시 건축에 대한 담론을 살펴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내용이다. 국내 최초의 아파트인 종암아파트부터 시작하는 아파트 역사는 물론 사회, 문화, 경제, 정치가 아파트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어 베터 플레이스가 기존 한국의 아파트 문화에 기반한 획일화된 아파트 주거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심미적이고 효율적인, 그리고 합리적인 솔루션을 제안하는 브랜드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는 요소다.

어 베터 플레이스에서 선보이는 모듈형 공간 시스템은 1인 가구, 소가구, 대가구의 카테고리를 뛰어넘는다. 타킷을 사용자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거 문화와 개인화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오늘날의 시대성을 아우르고 있다는 인상이다. 401호 객실은 많은 사람들이 머물며 그의 아이디어를 경험하고 피드백을 수집하는 테스트 베드다. 그리고 앞으로 도시 곳곳에 하나씩 생겨날 어 베터 플레이스의 씨앗이자 주거 브랜드로 확장할 단초로 기대를 모은다.



RELATED POSTS

PREVIOUS

집을 떠나 집을 생각하다
호텔 그라피 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