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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도시, 코워킹, 힙스터

작업실 통해 떠나는 누군가의 우주여행

노비츠키 리스닝 스튜디오

Text | Dami Yoo
Photos | IKEA

누군가의 작업실을 들여다보는 것이 흥미로운 이유는 무엇일까? 작업실에서 발견하는 작품의 흔적 혹은 영감은 그 세계를 이해하는 데 흥미를 일으키는 불씨가 된다. 빈지노는 이번 새 앨범 작업을 위해 스웨덴 말뫼에 한 달간 머물며 송 캠핑을 경험했다. 그리고 지난 7월 음악의 영감이 된 크고 작은 요소들을 이케아 쇼룸에 펼쳐놓았다. 그의 이번 앨범에 영감이 되었던 요소를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뮤지션 빈지노가 7년 만에 정규 앨범을 공개했다. 2개의 타이틀곡을 포함해 총 15곡으로 채운 풍성한 음반이다. 그런데 음원 정식 발매 전 선공개한 장소가 바로 이케아라는 점이 꽤 신선하다. 이케아 광명점 쇼룸 한 공간을 노비츠키 리스닝 스튜디오로 꾸미고 곳곳에서 음악을 들어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빈지노가 지난해 음악 작업을 위해 한 달 동안 머물렀던 스웨덴 남서부 항구도시 말뫼의 스튜디오를 모티브로 했다. 현관을 열면 부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소파가 있던 곳에서 협업자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작업하고 시간을 보낸 송 캠핑song camping의 경험을 재현한 공간이다. 빈지노는 말뫼라는 낯선 도시, 새로운 장소에 머물며 오로지 곡 작업에 몰입했던 당시의 경험에 큰 의미를 두고 이케아 디자이너와 함께 노비츠키 리스닝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창작자의 공간에서 작품 흔적을 발견하는 일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삶과 예술을 나란히 했던 예술가의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노비츠키 리스닝 스튜디오에서는 그의 앨범 속 음악을 들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음악의 모티브가 된 물건들이 곳곳에 놓여 있어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를테면 이번 앨범 수록곡의 영감이 되었던 군대 시절 사용하던 물건, 랩과 가사를 적은 메모와 종잇조각, 그가 머물렀던 말뫼 스튜디오를 기록한 사진, 농구 선수 노비츠키와 관련된 기념품, 그리고 빈지노의 파트너 스테파니가 만든 막걸리까지, 이번 앨범에 등장하는 사소해 보이지만 의미심장한 요소가 즐비하다.



창작자의 작업실을 옮겨오는 방법으로 공간을 풍성하게 채우고 초대하는 일은 보는 이에게 일종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곳에 감도는 창의적인 기운, 감각 있는 물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의미심장한 풍경, 그 장소에서 벌어졌을 법한 창작의 고민과 환희의 순간을 연상해보는 일은 어쩌면 창작자가 선보이는 결과물보다 더욱 인상적이고 큰 감흥을 줄지도 모른다. 창작자들이 이곳에서 움직였을 동선, 직접 손으로 다루었을 도구와 다양한 물건, 협업자와 나눈 대화와 고민의 시간을 가늠해보는 것이다. 빈지노는 자신의 삶과 생활에서 일어났던 일, 각각의 찰나를 망라하는 식으로 작업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특히 이번 앨범은 본인 삶의 타임라인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노비츠키 리스닝 스튜디오의 쇼룸에 펼쳐진 그의 메모와 물건, 그에게 영감을 주었던 플레이리스트는 그의 음악과 삶을 이해하는 데 크고 작은 힌트가 된다. 따라서 그의 음악 세계가 궁금했던 사람이나 잘 몰랐던 사람, 그의 음악을 기대하고 있었던 사람 모두에게 흥미로운 발견의 기회를 준다.










작업실이나 사적인 방을 오픈하거나 재현해 공개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일은 자주 일어나는 흥미로운 이벤트다. 디어스 판교, 맹그로브 등 최근 젊은 세대를 공략하고자 하는 주거 브랜드 역시 때때로 여러 분야의 크리에이터를 초청해 방마다 각각의 개성과 분위기로 한껏 치장해 공간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한편 망원동에 위치한 작은 서점 ‘작업책방 씀’에서는 매월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해 작가의 작업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책과 물건을 전시하고 작가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최근 오픈한 1유로 마켓에서도 작가의 방이나 작업실을 구성하는 물건들을 그대로 가져와 작품과 함께 사적인 공간을 가늠해볼 수 있도록 꾸며 전시에 볼거리를 더했다. 또 지난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한국현대미술작가조명 4 - 이형구>전은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100여 점에 이르는 작품과 함께 작가의 작업실을 미술관에 그대로 재현했다. 백남준아트센터 역시 전시장 한편에 백남준이 과거에 뉴욕 작업실에서 사용했던 집기를 그대로 가져와 작가의 작업 세계를 간접적이지만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








이렇게 독립 서점이나 소규모 전시 공간, 대형 기획 전시에서까지 벌어지는 ‘작업실 복제 현상’은 작업실이란 창작자의 정수가 한데 모인 장소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창작자의 뼈와 살이기도 한 물건들을 한데 모아 불러일으키는 환상은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기도 한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음은 물론 실험 정신, 유니크한 관점, 아이디어를 전개해나가는 과정 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공간을 들여다보며 느끼는 쾌락의 수치는 또 얼마인가.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는 작가 카르커 카제미르Karke Kazemier 2005년부터 운영해온 자신의 블로그에 전 세계 아티스트들의 작업실 이미지를 모은다. 얼핏 보아도 수백 명이나 되는 아티스트들의 작업실이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안젤름 키퍼, 루이즈 부르주아, 아이웨이웨이, 클로드 모네 등 걸출한 작가부터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평생 묵묵히 작업을 이어간 사람들의 이름도 보인다. 그들의 작업실은 대체로 낡고 허름하고 지저분하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고 신비로운 우주 같다. 블로그 한편에 늘어서 있는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눌러보면 도시와 시대를 넘나들며 각자의 고집스러운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이 들고, 예술가로 살아가는 그들의 존재감에 카리스마가 더해진다. 이렇게 창작자의 공간에서 작품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이 매력적이고 경이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삶과 예술을 나란히 했던 예술가의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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