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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 디자인한 로마의 호텔

호텔 ‘팔라초 탈리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챌린저스> 등 감각적인 영화를 선보인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또 다른 직업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일찍이 인테리어에 관한 애정을 밝힌 그는 2016년에 스튜디오를 설립해 주거 및 상업 공간을 디자인하고 있다. 영화감독이 공간 디자인을 하다니 어리둥절할 만하지만, 결과물을 보면 위대한 예술가에게는 경계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영화는 그것을 연출한 감독의 철학은 물론 관심사와 추구미까지 드러내는 장르다. 그런 면모는 작가주의 영화에서 더 두드러지는데 루카 구아다니노Luca Guadagnino 감독의 영화도 그중 하나다. 감독의 이름을 알린욕망 3부작’ <아이 엠 러브> <비거 스플래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는 눈부신 햇빛이 일렁이는 이탈리아의 여름과 휴양지의 느긋함을 영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각 영화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의 호화로운 빌라, 빛바랜 색감마저 정겨웠던 이탈리아 시골 마을도 관객들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미술감독과 긴밀하게 협력해 영화 속 공간을 치밀하게 구현한다. 그의 영화를 떠올릴 때 귀족의 호화로운 빌라와 소박한 시골 별장이 기억나는 것은 그 때문이지 않을까. 한 인터뷰에서 감독은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꿈이다라고 조심스럽게 밝혔고, 그 바람은 2016년 자신의 이름을 딴 스튜디오 루카 구아다니노를 설립하면서 현실이 되었다.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구성된 이 그룹은 영국 런던의 가정집(패션 커머스 플랫폼육스설립자의 집)을 시작으로 로마 산로렌초 광장의 이솝 매장, 펜디 2021 F/W 런웨이 무대, 베네치아 리도섬의 아파트 등을 디자인하면서 그곳만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스튜디오 루카 구아다니노의 디자인적 특징은 색, 기하학무늬, 장인 정신으로 정리할 수 있다. 2024년에 공개한 호텔팔라초 탈리아Palazzo Talìa는 그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팔라초는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시대에 세워진 정청政廳(정무를 보는 관청)이나 귀족의 주택을 뜻한다. 본디 16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교황, 학자 등을 배출한 저명한 학교였다. 1999년에 문을 닫으면서 방치되었던 건물을 한 이탈리아 부동산 회사가 럭셔리 호텔로 리모델링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호텔 주요 공간의 인테리어를 맡은 스튜디오 루카 구아다니노는 16세기에 그린 천장 프레스코화, 그리스 로마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장식과 조각품, 질감이 살아 있는 벽이 돋보이는 중세 건물에 다채로운 색 팔레트, 기하학무늬, 장인 정신이 담긴 가구와 조명을 추가해 시대를 초월하는 호텔을 만들었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또한 미적 취향을 마음껏 드러냈다. 균형과 비례가 돋보이는 고대 예술품부터 장인의 손길이 닿은 정교한 장식품까지 영화에 등장한 소품은 감독의 관점에서 선택하고 영화 속 공간에 놓였다. 감독의 예술에 대한 찬사는 인테리어 작업에서 장인에 대한 존중으로 발현된다. 스튜디오 루카 구아다니노는 지역 장인에게 장식품과 가구 제작을 의뢰한다. 팔라초 탈리아에서는 스페인 장인이 만든 마욜리카 타일(색이나 그림으로 장식한 타일)로 웰니스wellness 공간(스파와 사우나)과 스위트룸을 꾸몄고, 시칠리아 도자 장인에게는 바 테이블 상판 제작을 의뢰했다. 리셉션 홀, 레스토랑도 스튜디오 팀원들이 직접 발품을 팔아 찾은 가구와 조명으로 채웠다.


오래된 공간에 색과 기하학무늬를 활용해 현대적 감성을 불어넣는 것 역시 스튜디오 루카 구아다니노의 특징이다. 팔라초 탈리아에서 이 역할을 담당한 건 러그로, 아일랜드의 건축가 겸 미술가 나이젤 피크가 제작한 러그는 빨강, 분홍, 노랑, 파랑, 초록 등 화려한 컬러와 기하학무늬로 방문객의 시선을 바닥으로 이끈다. 러그에 사용한 색상은 VIP 전용 마그나 홀 천장의 프레스코화에서 따온 것으로, 색을 통해 과거와 현대가 연결되는 경험을 이끌어냈다. 동시에 화려한 색과 무늬로 이루어진 러그 하나만으로도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각 영화에서 이탈리아의 활기찬 여름 풍경을 보여준 구아다니노 감독은 조경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원예에 관심이 생겼다고 밝힌 그의 집에는 가드닝 책으로 가득한 테이블이 있을 정도다. 감독의 새로운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호텔 정원으로 이어졌다. 조경가 블루 맘보르와 함께 작업한 정원은 초록빛을 뽐내는 열대우림 식물로 채워져 있다.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로마 시내를 여행한 후 자연에 둘러싸여 조용히 휴식할 수 있는 곳이다.



영화와 인테리어를 분리하려고 합니다. 하나는 상상의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 공간을 다루기 때문이죠.”



되도록 영화와 인테리어를 분리하려고 합니다. 제가 추구하는 걸 표현한다는 점에서 목적은 같지만, 하나는 상상의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 공간을 다루기 때문이죠.” <엘르 데코>와의 인터뷰에서 구아다니노 감독은 인테리어 작업을 할 때는 영화와 전혀 다른 관점으로 다가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완벽한 이미지를 그려내고 하나의 이야기를 향해 달려간다는 점에서 영화와 인테리어는 속성이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놀랍게도 스튜디오 루카 구아다니노가 디자인한 공간들은 감독의 영화와 닮아 있고, 감독이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호텔 팔라초 탈리아는 구아다니노 감독의 또 다른 영화인 셈이다.



Text | Young-eun Heo

Photos | Palazzo Talìa, Giulio Ghirar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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