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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칼럼니스트가 리스본에 연 독립 서점

리스본 독립 서점 '솔티드 북'

돈과 책은 식물과 같다. 정성스럽게 가꾸고 돌봐야 한다. 금융 전문 칼럼리스트이자 “Open Up” 저자인 앨릭스 홀더. 그는 숫자와 그래프, 경제 분석으로 가득한 돈 이야기를 보다 쉽게, 편하게, 자유롭게 들려주는 작가였는데 고향 영국 런던을 떠나 포르투갈 리스본에 정착해 독립 서점 솔티드 북를 열었다. 책을 통해 돈의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연결이라는 의미를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포르투갈로 떠나기 전, 누군가 런던에서 가장 그리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아마도 허름한 의자에 기대어 싸구려 와인을 홀짝이며 책을 읽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던 순간을 떠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점의 노란 불빛 아래서 책장을 넘기던 기억이 유난히 선명했다.” 앨릭스 홀더Alex Holder는 영국 이브닝 스탠더드신문 칼럼에서 독립 서점 솔티드 북salted book'을 오픈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적었다.


2019 9, 남자 친구 마크 톰슨, 그리고 세 살 난 아이와 함께 포르투갈로 떠났다. 1, 그저 새로운 삶을 경험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리스본의 해변, 눈부신 햇살, 그리고 모든 것이 한 박자 느린 일상. 이곳에서라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에 어느덧 햇수로 6년이 흘렀다. 삶이 한층 여유로워졌지만 리스본의 햇살 아래서도 책을 만지는 감각이 그리웠다. 리스본은 세계에서 1인당 서점 수가 가장 많은 도시지만 영어 서적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점은 없었다. 매년 수만 명에 이르는 영국인, 미국인이 포르투갈로 이주한다는 사실만 본다면 시장에 커다란 공백이 있는 상태였다. 책장 넘기는 소리, 서점에서 친구들과 새로 나온 책에 대해 나누던 대화가 간절했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직접 서점을 열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물론 서점 운영을 해본 적도 없고, 게다가 취미 생활에 가까운 거라는 독립 서점을 오픈하겠다는 결심은 도전 그 자체였죠.” 그렇게 2년간 공간을 찾아다닌 끝에 산투스Santos에서 매물을 발견했다. 그녀는 서점에솔티드 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든 것은 소금을 치면 더 나아지니 말이다.












처음에는 서점 운영 매뉴얼 같은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필수로 갖춰야 할 책 리스트, 예를 들면 제이디 스미스나 로알드 달의 책 같은 것 말이죠. 하지만 서적 공급업체 측에서는 그 말을 듣고 크게 웃더군요. 1500권의 책을 모두 직접 골라야 했죠.” 다행히 런던에서 플록스 북스Phlox Books를 운영하는 에이미 마딜Aimée Madill이 경험을 공유하며 그녀의 첫 발걸음을 이끌어주었다.


아치형 출입문 너머로 리스본의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햇살을 머금은 딥 블루 컬러의 맞춤 제작 책장에는 보물 같은 책들이 꽂혀 있다. 솔티드 북 큐레이션은 단순하다.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책. 멀리사 페보스Melissa Febos , 프레데리크 그로Frédéric Gros , 니케시 슈클라Nikesh Shukla . 베스트셀러 작가 조던 피터슨이나 데이비드 월리엄스, 콜린 후버의 책은 찾을 수 없다. 앨릭스 홀더가 책을 고르는 사이 마크 톰슨은 목수 크리스티안 륄만Christian Rühlmann과 함께 서점에 맞는 책장과 테이블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했다. 일반 테이블은 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휘어지기 때문에 단단한 구조물이 필요했다. 아트 디렉터가 되어 공간의 모든 디테일을 고민했다. 바닥 색감부터 테이블 높이까지, 모든 것이책이 살아갈 공간을 만드는 일이었다.



출판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단단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이곳은 책을 파는 곳을 넘어 책을 이야기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작가 인터뷰, 낭독회, 글쓰기 강연 등을 열며 지역사회와 연결되는 방식에 집중한다. 특히 글쓰기 강연이 인상적이다. 읽기와 쓰기는 완전히 다른 행위다. 훌륭한 독자가 되려고 글을 쓸 필요는 없지만, 좋은 글을 쓰려면 반드시 많이 읽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감동적인 책 한 권이 누군가를 작가로 만들기도 한다. 출판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책 클럽을 운영하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면 최고의 북 클럽은 대개 폐쇄적이죠. 저는 소수를 위한 모임보다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단단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녀의 책장에는 가장 잘 팔리는 역사, 판타지 범죄 소설은 거의 없다. 그러나글쓰기에 관한 책만큼은 최고의 컬렉션을 자랑한다. 그녀가 말하는 글쓰기 팁은자신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철저히 고민하고 독자에게 특정한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 것’. 그녀 스스로가 글을 쓰고 싶은 독자이기에 책 애호가가 좋아하는 대화가 이 공간에 담겨 있다고 보면 된다.


4월에는 그녀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회고록을 쓴 작가 에이미 키Amy Key가 강연할 예정이다. “작가 애니 딜러드의 말처럼 회고록을 쓸 때는 독자의 팔을 붙잡고그리고 내가 이걸 했어! 정말 흥미롭지 않아?’라고 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그녀는 참석자들과 함께 글을 읽고, 개인 서사를 풀어내는 방식을 탐구할 계획이다. 4주 동안 함께 글을 읽으며 내용을 분석하고 자전적 글쓰기가 지닌 도전과 윤리적 문제, ‘자기중심적이라는 부끄러움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고민할 것이다.








서점을 운영하는 삶은 저널리스트로 일할 때와는 전혀 다르다. 하루 종일 화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 “책을 정리하는 일은 마치 잔디를 손질하는 것처럼 손끝에서 작은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같아요. 무엇보다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 물건, 지혜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요.” 그녀는 자신보다 15년 어린 친구와도, 15년 더 많은 인생을 산 친구와도 허물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녀의 세계는 서점 덕분에 더욱 넓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저는 서점을 방문한 고객에게 책을 직접 만지고, 첫 페이지를 읽어보라고 권해요. 그래야 그 책이 자신에게 맞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저는 지금 아마존 알고리즘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좋은 책을 읽고 있어요.”


솔티드 북은 책을 읽고 쓰고 이야기하는 공간을 넘어 연결을 체감하는 공간으로 진화 중이다. 이주자도, 지역 토박이도, 여행자도 이곳에서 새로운 책을 발견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생각을 떠올린다. 우연히 들른 여행자도 새로운 루트를 발견하며 여행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책장 사이를 거닐다 보면 새로운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고, 책 한 권이 예상치 못한 대화를 만들어낸다. 책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는 이 작은 공간에서 독서의 즐거움은 더욱 깊어진다.



Text | Anna Gye

Photos | Kane Hu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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