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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도시, 라이프스타일

반짝반짝 작은 방

일러스트레이터 손정민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손정민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구석구석 채운 방을 여행하며 조용하지만 분주한 일상을 보낸다. 서촌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이곳은 이따금 맛있는 음식 냄새가 피어오르는 아늑한 집이자 그의 작업을 뒷받침하는 영감의 샘이다. 그의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그림을 보며 ‘공간은 사람을 닮는다’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인터넷에서 당신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던 중 ‘요즘 정말 핫핫핫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표현을 봤어요. 동의하나요?

어떤 분이 그런 표현을 써주셨는지 감사하네요. 그게 사실이었으면 좋겠어요.(웃음)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활동했어요. 어쩌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나요?

뉴욕에서 회사를 다녔는데 직장 생활이 저랑 잘 안 맞았어요. 한 브랜드만을 위해 일하는 것도 힘들었고, 결과물이 쌓이질 않으니 ‘내 작업’이라는 생각이 덜했죠. 그저 막연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걸 워낙 좋아했거든요.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판화 수업을 들으면서 혼자 꾸준히 그림을 그렸어요. 그것도 직업이 되면 싫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가 않더라고요.




“다른 사람 눈에는 정신없어 보이겠지만 전 물건이 너무 바르게 정돈되어 있으면 오히려 답답해요. 이렇게 보여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전 다 알거든요. 때로는 이 공간이 저 자체인 것 같기도 해요.”




식물, 사람, 공간에 대한 관심을 주로 표현한다”라는 소개 글을 봤어요. 당신은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인가요?

네. 특히 제 그림은 작업실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보다시피 시선이 닿는 곳마다 뭔가 잔뜩 있잖아요. 다른 사람 눈에는 정신없어 보이겠지만 전 물건이 너무 바르게 정돈되어 있으면 오히려 답답해요. 이렇게 보여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전 다 알거든요. 때로는 이 공간이 저 자체인 것 같기도 해요. 미국에 있을 때부터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사람들 말이, 어디에 있든 제 공간은 늘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하더라고요. 어지럽혀 있지만 뭔가 따뜻하고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라고요.



작업실을 구하면서 특별히 주의를 기울인 부분이 있나요?

빛이 잘 들어오는지, 조용한 곳인지, 근처에 공원이나 산이 있는지를 많이 살펴봤어요. 이전에도 근처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공간은 예뻤지만 도로변이라 소음이 심했거든요.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가 워낙 어려운 동네라, 부동산에 말해두고 오래 기다린 끝에 구했어요. 예전에 기업에서 외국인 렌트로 지은 건물이라는데, 그래서인지 일반 아파트나 빌라하고는 구조가 좀 달라요. 그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죠.



집과 작업실이 한 공간에 있어서 불편한 점은 없고요?

둘 다 겪어봤는데 저에게는 이게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가끔 새벽에 자다 깨서 작업하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땐 침실 문을 열기만 하면 되니까 편하죠. 공간이 하나로 통일되니 살림도 한결 간소해지고요.









어쩐지 슬로 라이프를 추구할 것 같은데,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아침에 눈을 뜨면 날씨와 공기를 체크하고 인왕산으로 산책을 가요. 요즘은 공기가 안 좋은 날이 많으니까요. 한 시간 반 정도 산책하고 와서 작업을 시작합니다. 가끔 친구들이 놀러 오기도 하지만,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작업실에 종일 있는 날이 많아요. 작업이 잘 안 풀리면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근처에 있는 갤러리들을 둘러보기도 하고요. 산책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정리되고, 매일 보는 풍경이 갑자기 새롭게 보이기도 해요. 그 순간이 너무 좋아요.



단골 산책 코스가 있나요?

청운도서관을 지나 돌아오는 짧은 산책로도 좋아하고, 사직공원 쪽으로 걸어가는 산책로도 아침 일찍 새소리 들으면서 걸으면 참 좋아요. 조금 더 걸어서 성곽로까지 가기도 하는데,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끝없이 펼쳐진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요.



하루 종일 혼자 작업하다 보면 조금 외롭기도 할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작년에 약간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친한 일러스트레이터가 한 명도 없거든요. 한국에서 일러스트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모임을 도모하는 성격도 아니라서요. 대화를 나눌 동료가 없다 보니 친구들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의견을 듣는 게 전부라 가끔 갑갑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가까운 거리에 친한 작가들이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얼마 전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드로잉 클래스를 열었는데, 그림을 매개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참 좋더라고요. 오히려 제가 그들에게서 영감을 받기도 했고요.




“저녁마다 친구랑 둘이 집 근처 공원에서 그림을 그렸어요. 정원의 꽃과 식물을 그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렸죠.”




애용하는 도구나 매체가 있나요? 특별히 손 그림을 고집하는지요?

그런 건 아니지만 손으로 이런저런 매체를 섞어 쓰는 걸 좋아해요. 한 도구를 애용한다기보다는 수채화, 아크릴, 유화, 연필, 색연필, 오일 파스텔 등을 두루 사용하고요. 요즘은 연필로 그리는 라인 드로잉에 한창 빠져 있어요.



그림을 그릴 때 주로 어떤 부분에 집중하나요?

이제까지 보고 배운 것들을 잊으려고 노력해요. 어린아이의 순진함을 갖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걸 보고 배운 터라 그걸 허물기가 쉽지 않아요. 기존 작업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끈질기게 모색하는 것, 그게 제가 늘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식물을 즐겨 그리는 이유가 있나요?

식물을 좋아하는 건 저에게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 같아요. 어릴 때 시골에 살아서 가족과 함께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거든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식물을 보면 마음이 편해요. 힘든 일이 있어도 공원이나 식물원에 가면 금세 기분이 좋아져요. 집을 구할 때도 근처에 공원이나 산이 있는지 먼저 살펴보고요.








당신의 책 <식물 그리고 사람>을 갖고 있어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닮은 식물을 짝지은 작업이죠. 어쩌다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했는지 놀라워요.

미국에서 회사 다닐 때 저녁마다 친구랑 둘이 집 근처 공원에서 그림을 그렸어요. 정원의 꽃과 식물을 그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렸죠. 지금 생각하면 둘 다 정말 건전했던 것 같아요.(웃음) 나중에 제 작업을 보니 얼굴 그림과 식물 그림이 제일 많았어요. 친구들이 생일을 맞을 때마다 얼굴 그림을 액자에 넣어 선물하곤 했거든요. 안 그래도 두 개를 짝지어서 뭔가를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놀랍게도 출판사에서 비슷한 기획의 제안이 들어왔어요.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빛이 잘 들어오는 시간에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서 작업에 몰두할 때! 그리고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작업 얘기, 사는 얘기 나누면서 맛있는 음식 먹을 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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