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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라이프스타일, 노마드, 힙스터

강물 따라 유영하는 영국 보트 피플의 삶

영국 내로보트

Text | Nari Park

3200km의 운하를 품은 영국에서는 강가를 따라 정착한 보트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폭이 좁고 길어 ‘내로보트narrowboat’라 불리는 이 전통적인 운송 수단은 오늘날 영국인들의 대안적 주거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살인적인 집값과 규격화된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커낼 보터canal boater’들은 흐르는 강물에 매일의 삶을 맡긴다.




ⓒ Nari Park


ⓒ Nari Park




”젊은 친구야, 나를 믿어. 그곳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어. 단순하게 그저 보트 안에서 진창 생활하는 것이야말로 가치가 있는 일이야.”

- 소설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The Wind in The Willows> 중 -




살인적인 집값으로 악명 높은 여러 도시 가운데 런던은 맨 앞 열에 놓이곤 한다. 소득에 비해 하우스 렌트비가 월등히 높은 런던에서는 아파트 월세가 평균 2159파운드(약 320만 원)에 달한다. 사정이 이런 가운데 대안으로 떠오른 주거 형태 중 하나가 내로보트. 이스트런던 리젠트 운하 지역에는 폭이 좁은 강변을 따라 정박한 색색의 내로보트가 가득하다. 성인 서너 명이 어깨를 맞대고 간신히 앉을 만큼 폭이 좁은 이 늘씬한 보트에서의 생활자는 몇 년새 두 배 가까운 증가세를 보였다. “2018년 기준 1만 명이 넘는 이들이 런던 운하 근처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 <메트로>지의 설명이다. 실제로 중간급 시설을 갖춘 중고 보트 가격이 3000만~5000만 원대를 형성하고 있으니 런던 집값에 비해 10배 이상 저렴하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내로보트’는 굉장히 폭이 좁고 긴 배를 이른다. 폭이 2m, 길이가 14~21m 정도 되는데 과거 영국 전역에 석탄, 나무, 공업 제품 등을 실어 나르는 운송 수단이었다. 기차의 발달로 한동안 잊혔던 보트가 런던의 살인적 집값으로 인해 큰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더불어 영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운하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영국의 운하 역사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운하는 일반적인 유용함을 갖춘 훌륭한 물자 이동 수단”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1750년대에 개발된 수로와 배는 영국 산업혁명의 주요 동력이었다. 운하로 유명한 또 다른 도시 암스테르담과 달리 영국의 수로는 경제적인 유지ㆍ관리를 위해 폭이 2.1m를 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운하를 통한 물자 이동은 영국 산업혁명의 주요 동력이었고, 운하에 물건을 싣고 배를 띄우기만 하면 멀리 지방 도시까지 손쉽게 가 닿았다. 운하 역사학자 마이크 클라크Mike Clarke의 분석처럼 ‘세계대전을 치르며 쇠퇴한 운하 시스템’이 20세기 들어서면서 소중한 유산이자 레저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펍과 레스토랑, 사무실, 맨해튼 스타일의 로프트 하우스, 뮤지엄 등이 강변에 들어서면서 운하는 런던의 중요한 관광지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영국 수로를 관리하는 캐널 & 리버 트러스트Canal & River Trust가 출범했고, 운하를 따라 유유자적하는 캐널 보터가 놀라운 속도로 증가했다.




앨런 덴만이 실제 거주하는 내로보트. 크리스마스 파티 등 다양한 일상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공유한다. ⓒ Alan Denman


ⓒ Alan Denman


ⓒ Alan Denman




실제로 유튜브 채널에서 ‘narrowboat’를 검색하면 보트 위의 삶을 공유하는 수많은 영국인들의 영상을 만날 수 있다. 이스트런던 운하 주변에는 갑판에 화분이나 자전거를 놓아두고 빨래를 널어놓은 생활형 보트가 가득하다. 지난 5년간 영국의 ‘내로보트족’은 2배 이상 증가했고 연령층도 대학생과 직장인, 노부부까지 다양하다.

땅에 세워진 보편적인 집과 달리 운하를 따라 흘러가는 배에서의 생활은 어떨까? 지하철을 타고 런던 도심으로 출근했다가 퇴근 후 보트로 돌아와 몸을 누이는 삶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2주 이상 같은 곳에 머물면 벌금을 물기 때문에 이동이 필수인 보트 생활은 마치 한 편의 로드 무비처럼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하우스 대신 왜 보트를 선택했느냐고요? 재정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죠. 자연을 가장 가까이 접하며 여행하는 낭만도 있고요. 2주마다 보트를 이동해 새로운 아침을 맞으러 떠나는 우리에게 ‘고정된 아침’이란 없어요.” - 런던 내로보트 생활자, 앨런 덴만 -




예순을 훌쩍 넘긴 앨런 덴만Alan Denman은 올해로 4년 차에 접어든 내로보트 생활자다. LA에서 시나리오 작가와 영화 제작자로 일했던 그는 자연을 가까이 접하며 자급자족의 삶을 살고자 아내와 함께 ‘물 위의 집’을 선택했다. 모두가 그러하듯 처음에는 평범한 하우스 생활을 했다. 런던 남서쪽 템스강 근처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극도의 지루함이 밀려왔다. “그저 살인적인 월세를 내기 위해 일했다”고 회상하는 그는 “집이라는 규격화된 공간에 연연하지 않게 된 순간 비로소 행복이 찾아왔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덴만이 소개하는 보트에서의 삶은, 행복을 좇는 데에서 집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불편을 감수하고 마주한 자연은 덴만에게 값비싼 집보다 더 중요한 삶의 가치를 알려준다.



현재 머무는 보트는 어떤가요? 주거 기능을 얼마만큼 반영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요즘 젊은 캐널 보터들은 예전보다 장비가 뛰어난 보트를 타지만 우리는 반 전기 보트(semi-offgrid)에서 살아요. 가능한 한 자급자족하는 삶이 목표인 만큼 전기도 태양 전지판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생산합니다. 강한 디젤엔진으로 배를 움직이는 방식인데, 속력을 높이거나 하진 않아요. 엔진이 추진기를 구동해 보트를 앞으로 당기는데, 전진과 후진, 두 가지 기어만 이용해요. 배 안에는 조리대와 침대, 소파 등 주거에 필요한 시설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보트에서의 삶을 동경하지만 겨울에는 굉장히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운하가 얼면 보트를 움직일 수 없거든요. 그리고 집 이상으로 지속적인 관리, 유지와 보수가 필요해요.



보트에서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아침은 매일 멀티퓨얼 스토브multifuel stove를 켜는 것으로 시작해요. 보트를 따뜻하게 데운 뒤에 카푸치노를 마시며 아내와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눠요. 지난 30년간 해온 우리의 아침 의식이죠. 서로가 살면서 느끼는 두려움, 꿈과 희망, 전날 있었던 의견 충돌 같은 것을 해결하는 매우 생산적인 시간이에요. 또한 현재 머무는 곳에서 앞으로 어떤 곳으로 향할지 계획을 세워요. 남들과 달리 매일 다른 하루를 마주하니까요.



주로 어느 곳에 보트를 정박하며 생활하나요?

대부분의 시간을 런던 주변 운하에서 보내는데, 새로운 시선으로 이 멋진 도시를 바라보는 데 매력을 느낍니다. 런던의 운하는 그야말로 숨겨진 비밀의 장소예요. 여름에는 운하를 따라 전원으로 떠나는데, 몇몇 장소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해 감탄하게 만들죠.



배를 타고 운하를 여행하면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소는 어디인가요?

코츠월드에 있는 스트랫퍼드 운하(Stratford Canal)를 돌던 때가 기억에 남아요. 오래된 다리 밑을 지나며 자물쇠 보관소를 봤는데, 마치 낡은 배를 타고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죠.



땅에 세워진 정형화된 집이 아닌 보트라는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집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운하를 따라 흐르는 노마드 여정은 앞으로 얼마나 더 계속될까요?

처음 시작은 살인적인 월세로부터 벗어나 경제적 자유를 얻고자 함이었지만 단지 돈을 아끼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어요. 보트에서의 삶은 마법 같고 한없이 모험적인 삶을 살게 하죠. 처음에 가족과 친구들의 놀라움과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우리에게 왜 보트에서 사느냐고 묻지 않아요. 그들은 주말이면 크루즈를 즐기거나 우리 집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오죠. 아내와 저는 앞으로도 늘 새로운 아침을 맞는 이 여정을 즐길 계획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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