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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라이프스타일, 노마드, 다양성

유명 영화감독의 집 보존을 위한 펀딩 프로젝트

데릭 저먼의 ‘프로스펙트 장’

Text | Kakyung Baek
Photos | Art Fund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지대, 저 멀리서 소금기 가득한 바람이 불어오고 강한 태양이 내리쬔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악조건 속에서 집을 짓겠다는 결심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조건 속에서도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었다. 심지어 집주인이 죽고 나서 전 세계 사람들이 그 집을 공적 가치로 보존해야 한다며 모금 캠페인을 벌이는 중이다.







이는 영국 켄트주 던지니스 발전소 근처에 있는 데릭 저먼의 집 ‘프로스펙트 장莊(Prospect Cottage)’에 대한 이야기다. 영국 자선단체 아트 펀드Art Fund는 최근 영화감독이자 예술가 데릭 저먼의 집이 개인 사유지로 경매에 넘어가기 전에 공공을 위한 유산으로 지켜내자며 기금 조성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올해 3월 31일까지 350만 달러(약 54억 원)를 모금하는 것이다. 3월 초인 현재까지 모인 금액은 약 270만 달러로 전체 금액의 76%를 달성했다. 만약 기한까지 목표액을 채우지 못하면 데릭 저먼의 집은 개인 사유로 넘어가게 된다.

아트 펀드 대표 스티븐 듀차Stephen Deuchar는 “프로스펙트 장은 살아 숨 쉬는 예술 작품이다. 이 집은 데릭 저먼의 창의적인 충동으로 가득 차 있다. 동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창조적인 영감의 원천이 되어줄 이 집을 구해야 한다”며 프로젝트에 참여해줄 것을 절실히 표명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배우 틸다 스윈턴와 터시타 딘, 제러미 델러,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아이작 줄리언 등 영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대거 동참해 이 캠페인을 돕고 있다.








데릭 저먼은 상업 영화의 반대편에서 파격적인 실험 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했다. 그는 동성애자인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영화 전반에 녹여내길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카라바지오>, <블루>, <템페스트> 등 아방가르드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걸작을 남기기도 했다. 1980년대 퀴어 문화의 대변자였던 그는 게이 인권을 위한 운동 역시 소홀히 하지 않았다. 주류 문화의 변두리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영화감독으로, 예술가로 살았던 그는 갑작스럽게 에이즈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후 던지니스의 프로스펙트 장으로 거처를 옮기고 황무지에 지은 집을 자신의 들끓는 창의력을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해나갔다. 그에게 집이란 단순히 머무르는 공간이라기보다 자신의 병과 육체적인 시련에 위축되지 않고 직면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에 가까웠다.

데릭 저먼은 프로스펙트 장 외벽을 영국의 유명한 시인 존 던의 작품 ‘떠오르는 태양(The Sun Rising)’의 구절로 장식했다. 또 집 뒤로 펼쳐진 부지는 해변에서 떠밀려온 조약돌을 이용해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꾸었다. 문화의 최전선에서 주류의 질서를 뒤엎는 작품을 만들면서도 목가적 자연에서 에너지를 얻는 그의 태도는 얼핏 모순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인터뷰에서 “나는 강간당한 전원과 도시보다 관목과 꽃이 우거진 옛날 들판을 믿는다”고 밝힌 데릭 저먼이었기에 황량한 부지에서도 크로스커스, 장미, 양귀비를 그 어떤 정원사보다도 싱그럽게 가꿀 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 데릭 저먼의 정원은 그의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은 사람보다 훨씬 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주말마다 찾아올 정도로 유명해졌다.




“나는 프로스펙트 장 프로젝트의 비전에 열성적으로 공감한다. 이 집은 열려 있는 영감의 원천이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머신과도 같다. 이곳을 찾을지도 모를 사람들을 위해 데릭 저먼은 자신의 특별한 재능을 공유하는 것이다. 나는 그 젊은 예술가와 함께하면서 넘치는 행운을 받았다. 앞으로도 더 많은 동료와 여행자들이 그 행운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

- 데릭 저먼의 뮤즈, 배우 틸다 스윈턴 -




프로스펙트 장의 인테리어 역시 데릭 저먼의 예술혼을 기반으로 한다. 선반에는 영화 <템페스트>를 제작할 때 썼던 슬레이트가 놓여 있고, 바다에서 떠밀려온 자갈과 부속품이 설치 작품처럼 걸려 있다. 이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조예가 깊었던 그가 직접 그린 초상화들이 걸려 있으며, 고풍스러운 목재로 지은 거실 한쪽에는 유화를 그리는 작업실도 있다. 특히 그의 메모가 담긴 스케치북과 정원을 가꾸기 위해 작성한 일지는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서 곧 대중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정체성이 곳곳에 녹아 있는 프로스펙트 장은 성소수자(LGBTQ+)에게는 일종의 성지 순례지로서의 의미를 내포한다. 동성애에 대한 시선이 지금보다 훨씬 더 부정적이었던 시대에 영화와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을 통해 그에 대한 혐오에 맞서 싸웠던 그였기 때문이다. 에이즈에 걸린 이후에도 프로스펙트 장에서 지내며 병과 싸우던 그의 모습은 성소수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상징 그 자체였다. 그가 세상을 등지기 1년 전 BBC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기억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에 “글쎄요, 증발하는 것도 근사할 것 같습니다. 내가 자아낸 거미줄을 다 갖고 사라지고 싶어요. 완전한 소멸, 그것이 나의 소망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죽음을 대면하는 데릭 저먼의 의연한 태도는 그의 영화 <비트겐슈타인>에서 언어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죽음은 삶의 의미와 형태를 부여하기에 두렵지 않다”라고 한 명대사를 떠오르게 한다.

데릭 저먼의 영화는 가난하지만 아름답다. 그는 극심한 저예산으로 강력한 내러티브를 찍기 힘들다고 토로하면서도 시대착오적 의상과 소품으로 오히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키치적 장면을 완성했다. 이성애 사회에서 역사의 진보를 냉소하면서도 인권운동가로, 정원사로 정력적으로 살았던 데릭 저먼. 그의 집이 3월이 지난 후에도 주류 문화와 사회의 가장자리를 떠도는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위로의 장이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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