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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도시, 로컬, 친환경

집에서 회사까지 걸어서 15분

15분 도시

Text | Young Eun Heo
Photos | Micael, Emilie Koefoed

현대 도시는 시간을 절약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365일 내내 교통체증을 겪으며 출퇴근하고, 쇼핑몰에 가며, 병원과 문화시설에 간다. 특정 지역만 발전한 현재의 도시는 사람보다는 자동차 중심으로 계획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도시환경과 우리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하루를 돌아보면 꽤 많은 시간을 길에다 쏟아붓는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출퇴근 시간은 이것을 제일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다. 빅데이터에 따르면 서울 안에서 평균 출퇴근 시간은 53,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할 때는 평균 72분이라고 한다. 하루에 2~3시간을 길에서 보내는 셈이다. 이러한 사정은 주말이라고 다르지 않다. 장을 보러 마트를 가거나 잠깐의 휴식을 위해 여가·문화시설에 가려면 평일보다 더 지옥 같은 교통체증을 겪는다.



현대 도시는 편의성을 추구하며 설계했다고 하지만 거기 사는 우리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효율성만 고려한 도시계획은 거주 지역과 기타 지역을 분리시켰고, 여기에 부동산 가격이라는 조건이 붙기 시작하면서 거주 지역은 도시와 멀리 떨어졌다. 결국 우리는 집, 직장, 학교, 병원, 공원이 여기저기 흩어진 환경에서 수많은 불편과 어려움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




지금의 도시는 사람보다

자동차를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 카를로스 모레노, 팡테옹 소르본 대학교 교수 -




이처럼 지난날의 도시 설계는 좋은 방향이 아니었음이 명백해졌다. 그사이 사회문제는 더 심각해졌고, 공동체는 분열되었으며, 기후변화와 전염병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 도시는 새로운 도시 모델을 구상 중이다. 그중에서도 팡테옹 소르본 대학교의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가 발표한 ‘15분 도시(15 minute city)'는 지속 가능하고 인간 중심적인 도시 모델로, 미래의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15분 도시는 도보 또는 자전거로 15분 이내에 집, 직장, 학교, 시장, 병원, 공원 및 여가 시설이 위치한 도시다. 핵심은 자동차를 줄이고 도보와 자전거같이 인간 중심적이고 친환경적인 이동 수단을 도입하는 것이다.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는 "지금의 도시는 사람보다 자동차를 중심으로 계획되었다라고 말한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그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보행자 도로보다 훨씬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자동차 도로, 사람이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불법 주차로 가득한 골목길 등. 사람보다 자동차가 우선인 환경에 우리는 익숙해졌다.



이와 반대로 15분 도시는 인간을 중심에 두고 도보와 자전거 같은 퍼스널 모빌리티를 주요 이동 수단으로 생각한다. 이럴 경우 도시는 자연스럽게 보행자와 자전거를 중심으로 설계되고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시설이 늘어난다. 줄어든 자동차 수 덕분에 배기가스 배출량이 감소되어 친환경 도시도 구축할 수 있다. 이동 수단만 바뀔 뿐인데 도시 전체가 변하게 되는 것이다. 집에서 편의 시설을 걸어서 다니면 이동 시간이 줄어 여가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여가 시간은 삶의 만족도와 연결되기 때문에 15분 도시에 사는 시민은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 게다가 보행자 중심의 도로는 어린이, 노인, 장애인 같은 사회적 약자의 이동권과 연결되어 누구나 평등하고 안전한 환경을 보장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15분 도시의 목표 중 하나는 지역 경제 활성화다. 15분 거리 내에 위치하는 시설에는 필수 소매점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15분 도시를 시행 중인 프랑스 파리에서는 주요 도로 건물 1층을 소매점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조정하고 있다. 일부 특정 지역에만 번화가가 조성된 지금의 도시는 당연히 지역 불균형과 젠트리피케이션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15분 도시는 도시 내 각 지역이 긴밀하게 연결되고 골고루 발전할 수 있게 설계함으로써 지역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



15분 도시를 처음 발표했을 때, 실현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현재 파리, 멜버른, 발렌시아, 상하이 등 세계 여러 도시가 15분 도시계획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인식이 변화한 이유에는 기후변화와 코로나19라는 배경이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생활양식의 변화는 15분 도시가 주장하는 근거리 생활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도와줬다. 이에 힘입어 15분 도시는 세계 도시들이 모여 기후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는 C40에서 코로나19 이후의 도시 모델로 소개되었다.








잘 살기 위해서는 좋은 집만큼 풍족한 사회 기반 시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집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 15분 도시는 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도시 모델이자 이론이다. 물론 현재의 도시 구조를 대대적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지만, 15분 도시 모델을 적용하는 다른 도시를 보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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