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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노마드, 라이프스타일, 로컬

제주에 차린 베이스캠프 1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명연 에세이

Text | Myungyeon Kim
Photos | Hyoungjong Lee

우리 부부는 호주와 아이슬란드 로드 트립을 다녀온 뒤 집과 작업실이 한곳에 있으면 좀 더 효율적이겠다는 생각에 지하와 1층이 연결된 빌라로 이사했지만, 역시나 결론은 이곳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집은 아니었다. ‘그러면 어떤 집으로 이사하지? 이 동네일 필요도 없는데 어디로 가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제주도까지 내려가 우선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나와 남편은 평범 일상에 잠시나마 변화를 주고 싶어 로드 트립을 다니기 시작했다. 매년 부지런히 시간과 자금을 끌어모아 2017 35, 2018 50, 2020 23일과 15, 2021 30일을 보내고 왔다. 첫해와 두 번째 해는 캠핑카를 타고 호주를 돌고 그다음은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돌았다. 이후 코로나19 장기화로 호주나 아이슬란드에 한 번 더 가려던 계획을 접고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를 돌며 캠핑을 했고 지난 4월에는 30일 동안 제주도를 돌았다.








1년에 한 번씩 한 달쯤 낯선 곳에서 생활하며 일은 물론 익숙 일상과 잠시 떨어져 지내보니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고 집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생활 방식 더 가뿐하고 유연해지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집에 대해서는 쾌적함, 효율, 안전 외에는 크게 바라는 것이 없어졌다. 또 삶의 기준에 따라 과감히 비우고, 떠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와 남편각 디자인과 사진전공하고 관련 업계에서 20년 가까이 일했기에 한때 잘 꾸며진 갤러리 같은 집을 욕심 내기도 했지만 이제는 내려놓았다.










계획과 준비, 휴식과 충전을 거쳐 새로운 하루, 새로운 일상,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는 장소. 그런 의미에서 집을 일상의 베이스캠프라고 말한다. 처음 로드 트립을 준비하며 4개월 동안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밤마다 지도를 펼쳐고 루트를 짜며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씩 이동해 중소 도시와 내륙 오지를 거쳐 정해진 기간 안에 호주 대륙을 돌기 위해서는 세밀한 계획과 검증이 필요했다. 만반의 준비를 한 것 같아도 실전에서는 예측 불가한 상황이 너무 많고 위험한 순간도 더러 있다. 인적 없는 오지로 갈수록 두려움과 긴장감은 커졌지만, 우리를 보호해줄 ‘최소한의 집’(캠핑카)과 함께 여행한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외딴 마을 코티지와 신도시 아파트, 호텔 등에 머물며 매서운 자연으로부터 보호받고 안식을 누렸다. 그곳에서는 창밖 풍경을 수집하며 다니는 일상의 재미도 덤으로 얻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여행 준비로

어수선했던 집은 다시 안정적인 일상의 무대로 바뀐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여행 준비로 어수선했던 집은 다시 안정적인 일상의 무대로 바뀐다. 한동안 평온하게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또 다음 로드 트립을 준비할 때가 다가온다. 먹고사는 일도 중요하나 둘만의 공간에서는 앞으로 떠날 여행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그에 따른 선택과 집중을 위해 노력했다. 더 늦기 전에 우리가 원하는 생활을 해보기 위한 연습이기도 했다.








불필요한 집은 되도록 빨리 정리하는 게 좋았다. 10년은 살겠다며 공사도 하고 정성을 들였지만 포기가 빠를수록 계획을 세우기가 수월한 법. 그렇게 살던 집을 내놓기로 하고, 집에 대한 모든 생각을 초기화해 ‘어디에 살지’부터 고민했다. 매일 아침 정해진 장소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 2~3시간 만에 서울에 올 수 있는 거리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그 시간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하루에 무리 없이 왕복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였다. 이동 수단까지 다양하게 생각하면 전국 어디든 살아볼 만했다.










식탁 앞에 붙인 대한민국 전도를 보며 고민에 빠졌다. 속초와 춘천이 가장 먼저 등장한 후보였다. 서울과 경기도를 제외한 지역에 살아보고 싶었다. 이곳저곳 한창 따져보고 있을 때 마침 제주도에 집이 있는 친구의 제안으로 한 달 동안 제주도를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특히 여러 오름을 돌아다니며, 출장이나 짧은 여행으로 다녔던 때와는 전혀 다른 제주도를 보고 느꼈다. 그래서 이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는 ‘캠핑카를 사거나 단기로 숙소를 빌려 여러 번 와보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와 며칠 만에 생각이 바뀌었다.



남편이 먼저 “제주도로 이사할까?”라고 물었고, 나는 “괜찮은 것 같아”라고 답했다. 좋은 점, 나쁜 점 꼼꼼히 계산해보지도 않았다. 어차피 살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결혼 후 경기도 하남에 정착한 나와 남편은 그렇게 제주도에 흘러들어왔다. 최소 2년은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과 가능한 오래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진짜 ‘여행이 중심인 일상’을 실현하기 위한 베이스캠프를 차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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