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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노마드, 라이프스타일, 로컬

제주에 차린 베이스캠프 2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명연 에세이

Text | Myungyeon Kim
Photos | Hyoungjong Lee

부부의 시간에도 계절이 있다면 지금 그들은 여름을 보내는 중이다. 결혼 생활의 싹을 틔우고 조금씩 성장한 봄을 지나 이제 막 여름에 들어선 것이다. 부부의 성장이 멈춘 것 같던 결혼 6년 차, 이때 시작한 로드 트립은 두 사람의 관계와 삶의 자세를 전반적으로 바꿔놓았다. 결혼이란 제도적 결합보다 로드 트립을 통해 쌓은 경험이 더 중요한 변화를 이끌었다.








우리의 여름은 휴식과 완성의 시간이다. 그동안 꿈꾸며 연습한 것을 실현해보고 결실과 농익음의 계절로 넘어갈 준비를 하는 때. 봄처럼 분주하고 애써온 시간에 대한 보상으로 오로지 둘에게만 집중하며 그동안 꿈꿔온 삶을 살아보려 집을 제주도로 옮겼다. 제주도로 이사하기 전에는 한 달 동안 제주도를 몇 바퀴 돌며 예행연습도 해보았다. 그때 한라산 백록담에서 섬을 내려다보며, 또 여러 오름을 다니며 이런 풍경 속에서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한 적이 있는데, 지금 내가 그 풍경 속에 들어와 살고 있다는 사실이 때론 신기하다. 그 여행이 끝나고 결심부터 이사까지 약 3개월. 로드 트립으로 다져진 팀워크가 빛을 발해 모든 과정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이사 후 한 달에 두어 번씩 서울을 오가며 지낸다. 시간에 쫓기는 일상이 아니고 로드 트립처럼 한 번에 수백 킬로미터를 운전하는 것도 아니기에 비행기 타고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는 생활도 재미있다. 덤으로 좋아하는 비행기 기종이 생겼다. 하늘에서 해가 뜨고 지는 것도 종종 본다. 또 하늘에서 집도 볼 수 있는데, 낮에는 유난히 반듯하게 잘 지은 2층 집과 언덕 위에 우뚝 솟은 빌라가 길잡이가 되어주고, 밤이면 집 앞 펜션 마당에 걸린 조명등이 길잡이가 된다. 불빛을 따라가며 이웃집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도 가늠할 수 있다. 이런 생활이 몇 번 반복되니 하늘길도 우리 생활 영역의 일부인 듯 느껴진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커피 한 잔 뽑아 해안 도로를 달려 바다를 보러 가고, 낮에는 숲이나 오름에 운동 삼아 다녀온 뒤 ‘구름이 좋은 날’이면 노을을 보기 위해 다시 바다로 나간다. 종종 바다와 하늘을 보며 오늘은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할지 결정하곤 한다. 그렇게 자연이 이끄는 대로 조용히, 자연의 세상에 세 들어 사는 느낌으로 일상의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우회적인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단순하게 결정한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제주도에 사는 동안 억지로 혹은 일부러 무언가를 하기 위해 애쓰지 않기로 해서인지 큰 불만이나 불편함 없이 생각보다 빨리 적응했다. 제주도의 혹독한 겨울을 한번 겪어봐야 한다고들 하는데, 아직까지는 견딜 만하다. 제주도의 차고지증명제(자동차 소유자에게 자동차의 보관 장소 확보를 의무화하는 제도) 때문에 차량 두 대 중 한 대를 급히 팔아버렸지만, 우회적인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단순하게 결정한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차를 타고 나가 쓰레기를 버리고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는 데에도 익숙해졌다. 새벽 배송 불가, 일부 상품 택배 불가, 각종 생활 편의 서비스 제공 불가 지역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소비도 줄고 택배 포장 뜯으며 느끼는 죄의식도 줄었다. 그렇게 제주도 이사를 계기로 오랫동안 길들여진 생활 방식을 버리고 초심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이다.








시골 생활이 낯선 우리는 첫 시골살이를 육지도 아닌 바다 위에 홀로 있는 섬에서 시작하는 게 조심스러워 제주 시내 쪽으로 집을 알아보았다. 자연은 집 밖에서 즐기고, 집은 그저 쾌적하고 안전하고 편하길 바랐다. 되도록 단독주택도 피하고 싶었다. 결혼 후 첫 집이 단독주택이었는데 그곳에서 5년을 살며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결혼 생활 자체가 집에 대한 끊임없는 시행착오의 과정이었다. 첫 집인 단독주택은 물론이며, 그다음에 살았던 아파트 1, 그다음의 복층 빌라, 그리고 제주도 집까지. 둘의 인생을 조율해나가듯 집도 우리에게 맞춰 조율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다행히 제주도에는 연세라는 제도가 있어 1년씩 살아볼 수 있는 집이 많다.







우리는 매일 집을 이야기한다. 요즘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든 그 동네에서 눈에 띄는 집들은 이름이나 위치를 표시해둔다. 매일 밤 쇼핑하는 기분으로 제주오일장에 올라온 집들을 살펴보기도 한다. 어떤 날은 제주도 동서남북에서 다 살아보고 싶고, 또 어떤 날은 그래도 한 번은 바닷가에 살아봐야지하기도 한다. 어차피 집에 대해 100% 만족은 없다는 것을 이미 몇 차례 경험했기에 다양하게 살아보는 거다. 여기 제주도에서만큼은.








제주도 첫 집을 계약하던 날 우리는 일단 1년 살아보고 그다음엔 집을 짓자라고 했다. 그런데 두 달도 되지 않아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집이 아직 많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집을 그리는 대신 이런 집에 가면 이렇게 살 수 있고, 저런 집에 가면 저렇게 살 수 있는 다양한 삶의 시나리오를 상상한다. 우리 둘에 아이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고, 집과 자연까지 세 꼭짓점을 연결하는 다양한 일상을 마치 놀이하듯 엮어본다. 그 대화 속에서 우리는 또 새로운 꿈을 꾸고 삶의 여러 가능성을 찾는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집과 함께 성장하며 완성을 향해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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