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프리미엄 와인 판매량이 20% 이상 증가했다. 집에서 술을 즐기는 문화가 일반화되면서 고급 술에 대한 장벽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와인 전문가들은 좀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 함께 와인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떠올리고 있다. 전문가들이 예측한 2022년 와인 트렌드를 정리했다.
01 어번 와이너리Urban Winery
어번 와이너리란 시골이 아닌 도시에 있는 와이너리를 뜻한다. 뉴욕, 런던, 시드니를 중심으로 생겨난 어번 와이너리는 양조장, 시음실, 이벤트 시설을 갖추고 소비자에게 먼저 다가가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소개하고, 각자 취향에 따라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소비력을 확보한 후 생산 구조를 발전시키는 식이다. 런던 어번 와이너리의 선구자 런던 크루London Cru의 린지 마덴Lindsey Marden은 “자동차로 반경 2~3시간 거리 내의 농장에서 구한 포도로 영국 품종의 와인 만들기를 목표로 했다. 어번 와이너리는 일반 와이너리와 달리 지역 재료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은 물론 도시를 벗어나는 것이 힘들어지고 일, 주거, 놀이가 근거리에서 가능한 생활권이 중요해지면서 올해 어번 와이너리가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미국 뉴욕의 레드 훅 와이너리Red Hook Winery는 빌딩 루프톱에 와이너리를 열었다. 레드 훅 와이너리 측은 우범지대로 알려진 지역이었지만 와이너리가 생긴 후 천천히 변화했다고 설명한다. “온라인이 성행하는 시기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오프라인에서만 가능한 경험과 감성, 커뮤니티를 원한다. 어번 와이너리는 주민과 함께한다. 지역 주민만의 개성은 우리 브랜드를 풍성하게 만든다.”
02 가치 중심 와인Value-driven Wines
맛으로 와인을 구입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스토리텔링에 따라 구입을 결정한다. 내추럴 와인 또한 맛보다 친환경 과정, 지속 가능성, 브랜드 철학 덕분에 급속하게 성장했다. 내추럴 와인은 현대식 농기계, 화학비료,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만든 와인이다. 양조 과정에서도 첨가물을 일절 넣지 않고 자연 효모만으로 발효시킨다. 라벨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일반 와이너리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라벨 규정도 자유로워 개성 있는 그림을 그려 넣거나 적고 싶은 문구를 넣기도 한다. 이제 소비자들은 맛, 품종, 라벨 등 고전적 방식으로 와인을 고르기보다 스토리텔링이 확실하고 호기심을 끄는 별종 와인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빈야드 브랜드 와인 세일즈 매니저 제이슨 소럴Jason Sorrell은 내추럴 와인, 비건 와인뿐만 아니라 제3세계 와인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가 가격 때문일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프랑스에서는 우박과 해일이, 미국에서는 산불이 크게 번져 포도 수확량이 좋지 않았다. 2022년 프랑스와 미국 와인 가격이 엄청 오를 것이다. 이미 샴페인은 재고를 확보하기 힘들 정도다. 이에 따라 와인 수입업자들도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와인을 택할 것이다.”
맥주보다 와인을 선호하는 새로운 MZ세대 소비자들이 중요시하는 지속 가능성, 환경 등은 빠뜨릴 수 없는 요소가 되었다. 샤토 몬테레나 수석 와인 제조자 매트 크래프턴Matt Crafton은 “어느 때보다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옷을 고르듯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와인 브랜드를 지지하고 있다. 앞으로 여성이 운영하는 와이너리, 유색 인종이 소유한 와이너리가 지원받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03 컬러 파워Colour Power
오랫동안 와인은 품종과 색깔에 따라 범주를 나눴다. 그러나 전 세계의 젊은 와인 생산자들이 대체 와인 생산 방식과 기술을 탐구함에 따라 점점 그 범주가 흐려지고 있다. 와인의 신세계라 불리는 오렌지 와인이 좋은 예다. 조지아 전통 방식에서 출발했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하면서 올해 내추럴 와인과 함께 인기를 지속할 전망이다. 오렌지 와인은 오렌지로 만들지 않는다. 포도 껍질을 함께 넣고 발효시켜 와인이 오렌지 빛깔을 띠기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 기술적 용어로 말하면 '포도 껍질째 발효한 화이트 와인’ 또는 '포도 껍질을 첨가한 와인'이다. 로제 와인도 급성장할 전망이다. 지난 10년간 로제 와인 소비량은 30% 증가했다.
샴페인 가격이 치솟으면서 로제 와인이 기념일 와인을 대체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이처럼 컬러 와인이 주목받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사람들이 창의적이고 신선한 와인을 찾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와인 엑세스 대표 에이제이 레스닉A.J. Resnick은 코로나 시대가 와인의 혁신을 불러왔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레스토랑도 새로운 판매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한 잔 판매'를 늘린 것이다. 소믈리에 티파니 토비Tiffany Tobey는 한 잔 판매용에 적합한 와인 잔을 직접 제작했다. 글라스 바도 등장했다. 글라스 바는 병 대신 와이너리에서 우드 와인 통을 가져와 판매한 후 다시 되돌려주는 식으로 환경보호에도 동참하고 있다.
04 캔 와인Canned Wine
와인 한 병을 따면 일곱 잔을 마실 수 있다. 가족과 함께라면 모르지만 혼술을 하기엔 적지 않은 양이다.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캔 와인이다. 2010년대 처음 시장에 등장한 캔 와인은 지금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오히려 와인의 풍미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외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제 캔 와인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잡지 <마켓워치MarketWatch>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전 세계 유명 와이너리 580곳에서 무려 1450가지 캔 와인을 출시해 판매했다고 소개했다. 유니언 와인 컴퍼니Union Wine Company는 2013년부터 캔 와인을 출시했다.
예전에는 혼자 쉽게 즐길 수 있고 이동이 가능하며 오프너 없이 즐길 수 있다고 홍보했지만 지금은 100% 재활용 가능하다는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내세운다. 요즘에는 감각적인 그래픽 디자인을 입혀 젊은 세대에게 어필 중이다. 와인병을 대신하려는 노력은 올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병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병, 마개, 라벨 등 와인 부속품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친환경 종이 팩도 등장하고 있다. 프루걸 보틀Frugal Bottle은 94% 재활용 가능한 종이 팩 와인을 생산한다. 종이 팩 와인은 냉장 보관이 쉽고 유리병보다 최대 5배 가볍다. 탄소 발자국도 최대 6배 적다. 현재 브루걸 보틀은 영국, 미국 와이너리와 합작해 종이 팩을 제작하고 있다.
05 와인과 디지털Wine with Digital
국내에서 전통주를 제외한 모든 주류는 전자 상거래와 배송이 금지되어 있지만 해외에서는 비대면 판매가 활발하다. 와인스 바인스 애널리틱스Wines Vines Analytics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주류 온라인 사이트가 급속하게 늘었고, 소비자들에게 직접 와인을 배송한 양이 1년 전에 비해 27% 상승했다고 한다. 현재 미국 시장은 ‘와인 구독 전쟁’이라 불릴 만큼 지난 1년간 와인 스타트업이 급속하게 증가했다. 넷플릭스 소믈리에 시리즈에 등장해 인기를 모은 마스터 소믈리에 이안 코블Ian Coble이 관리하는 솜셀렉트 월간 와인 클럽은 매달 99달러에 와인 4~6병을 제공한다.
블라인드 식스 패키지는 소믈리에처럼 블라인드 시음 체험을 할 수 있는 제품이다. 검은색 종이에 싸여 있는 와인 6병에 번호가 적혀 있고 이안 코블이 직접 쓴 메모, 진행 설명서, 시음 노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윙크 월간 와인 클럽은 와인 잡지 편집장 수산 코스트셰바Susan Kostrzewa가 운영한다. 매달 39달러부터 시작해 어번 와이너리, 소규모 양조장 와인 위주로 소개한다. 퀴즈로 와인 취향을 파악한 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 토큰) 기술은 와인업계에서도 통용된다. 호주의 펜폴즈 와인Penfolds Wine은 2022년 10월에 수확해 만드는 약 300병 한정판 ‘2021 마길 셀러 3’를 NFT 마켓 플레이스를 통해 판매했다. 할리우드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의 와인 브랜드 인비보Invivo도 NFT 플랫폼을 통해 와인을 판매한다. 와인 라벨, 와인 아트 필름 등 다양한 방식으로 NFT와 와인이 조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