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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공동주택, 도시, 라이프스타일

집에 관한 가장 순수한 이야기

푸하하하 프렌즈 한승재 건축가 에세이

Text | Seungjae Han
Illust | Jungmin Son

우리는 넓고 쾌적하며 잘 꾸며진 공간에 둘러싸여 산다. 그런데 그곳엔 어쩔 수 없는 허무함이 자리한다. 장소를 사진에 담아두거나 남들에게 자랑하기도 하지만 끝끝내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감을 느낀다. 비록 그것이 나의 집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그곳엔 시련이 서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문과 벽 사이, Y 씨의 공간

“저는 어릴 때 문하고 벽 사이 공간을 좋아했어요. Y 씨는 마치 예전부터 마음에 담아두었던 일을 고백하는 것처럼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에 대해 말했다. “문과 벽 사이요?” 나는 되물으며 문과 벽 사이 공간에 대해 생각했다. 문과 벽 사이 공간이라면, 문이 열렸을 때 문과 벽 사이에 남게 되는 뭐라고 부르기 애매한 공간을 말하는 것이다. 수시로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경우 사용이 어려운 공간이다. 그래서 그곳엔 보통 무겁고 애매한 물건이 놓여 있다. 애매한 물건의 대표 격인 역기와 소화기 등을 두기 좋은 장소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양말과 속옷 등의 퇴적지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Y 씨네는 온 가족이 한방에서 지냈는데, 그때 문과 벽 사이의 공간이 자신의 자리였다고 말했다. Y 씨는 그 자리를 정말로 좋아했다고 말하며 문과 벽 사이 공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문이 닫혀 있을 때는 없던 공간이 문이 열리면서 모습을 드러내고, 점점 어두워지고 좁아지다가 내밀해지는 공간이 된다. 한밤중에 누군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모두가 함께 쓰는 방 안에 자신만의 공간이 생기는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장소는 자기 연민과 불안, 절박함이 묻어 내 것이 된다.”




공간에 한 가장 순수한 이야기

나는 Y 씨의 이야기에 크게 감동했다. 그것은 공간에 대한 가장 순수한 이야기였다. 꼬마가 어느 구석을 소중하게 여기기까지 흘렀을 수많은 시간, 아니 수많은 밤에 꼬마의 머릿속을 떠다녔을 수많은 상념이 소중하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Y 씨가 매일 밤 잠들었던 방의 문과 벽 사이의 공간을 떠올려보았다. 이른 새벽 가족 중 누군가 뒤척이며 조심스럽게 일어나는 장면을, 다른 가족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문 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문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돌리고 '끼익' 하는 경첩 소리가 끝날 때까지 손잡이를 풀지 않는 모습을, 그리고 문밖의 전등을 켜는 순간 심하게 요동치며 어둠 속으로 쏟아지는 형광등 불빛을…. 불빛과 부산스러움으로부터 안전한 문과 벽 사이 공간을.



장소는 자기 연민과 불안, 절박함이 묻어 내 것이 된다. 공간을 얻게 된다는 것은 공간을 점유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공간을 얻게 된다는 것은 수없이 반복해서 본 영화의 모든 장면을 기억하는 것처럼 공간의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공간 구조를 내 몸처럼 익숙하게 익히는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공간이 있었다. 유약하고 보잘것없던 시절, 독서실 책상에 멀뚱히 앉아 하루 종일 시간을 때우던 시절, 나는 독서실의 어느 구석을 내 몸처럼 잘 알고 있었다. 수도 없이 시계를 올려다보았기 때문에 시계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칸막이 벽의 낙서는 눈을 가리고도 따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지나는 사람의 얼굴을 모두 알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과 산만한 사람, 그리고 나처럼 시간을 때우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엎드렸다가 허리를 폈다가 책을 폈다가 덮었다가 기지개를 켜는 척 드나드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늦은 시간이 되면 집으로 향하곤 했다. 시내버스 뒷자리에 앉을 땐 뒷바퀴가 불쑥 솟아오른 자리, 무릎을 포개고 앉아야 하는 낮은 좌석을 선호했다. 버스 창문에 머리를 붙이고 바깥을 바라보면 창밖의 불빛이 옆으로 기울어지며 창처럼 삐죽해지곤 했다. 비록 나의 소유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런 공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장소는 좋은 말로는 몸에 맞춘 듯한 익숙함이었고, 나쁜 말로는 지긋지긋함이었다. 그곳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며 그곳은 점점 소중해졌다.




빈자의 미학으로서 아름다운 공간

우리는 넓고 쾌적하며 잘 꾸며진 공간에 둘러싸여 산다. 그런데 그곳엔 어쩔 수 없는 허무함이 자리한다. 장소를 사진에 담아두거나 남들에게 자랑하기도 하지만 끝끝내 가까워질 수 없는 거리감을 느낀다. 비록 그것이 나의 집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그곳엔 시련이 서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Y 씨에게 시련은 문과 벽 사이 애매한 곳에 꿈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시련은 이름 붙여지지 않은 장소로 사람을 이끌고 그곳에서 꿈꾸도록 만든다. 현실이 버거운 만큼 꿈은 아름다웠을 것이다. 꿈은 과거에 잃어버렸거나 미래에 이루게 될 것이므로 과거나 미래에만 존재한다. 꿈은 말 그대로 꿈. 현실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좋았던 장소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곳에 아름다움을 두고 온다.




한승재 | 건축 설계 사무소 푸하하하 프렌즈(FHHH)에서 건축가로 일한다. 2014 김해건축대상 수상, 2015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 젊은 건축가 27인에 선정되었다. 자비로 출판한 책을 길거리에서 팔아본 경험이 있으며 최근에는 잡지에 기고했던 여러 편의 에세이를 묶어 책 <우리는 더듬거리며 무엇을 만들어 가는가>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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