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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노마드, 라이프스타일, 로컬

오늘의 집보다 할머니 집

길종상가 박길종 대표

Text | Kiljong Park
Illust | Jungmin Son

2010년부터 다른 사람 집의 가구를 만들고 공간을 다뤄온 박길종 대표에게 좋은 집이란 어떤 모습일까? 오늘날의 유행을 한데 모은 곳이 아니라 오랜 시간 취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된 할머니 집 같은 곳이다. 그는 지금 집에 함께 사는 가구를 소개했다. 망원동 골목에서 얻은 소파부터 대학생 때부터 쓰고 있다는 철제 캐비닛까지, 그 사연만 들어도 애틋함이 느껴진다.


할머니 집에 대한 동경

내가 하는 일은 주로 공간에 필요한 가구나 집기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것이다. 의뢰인 대부분은 자신이 들어갈 새 공간에 맞게 모든 걸 한꺼번에 바꾸길 바란다. 그것도 매우 빨리. 하지만 나는 상황이 허락하는 한 그 공간에서 지내면서 기존 가구와 동선 등을 고려해 필요한 사물의 크기와 색상, 기능 등을 생각해보고 추가하길 권한다.



지금 유행하는 스타일의 가구나 소품으로 꾸민 공간보다는 시간을 두고 취향과 추억이 담긴 물건이 쌓이면서 적절하게 배치된 공간이 더 매력적이다. 한집에 오래 살면서 온갖 물건이 사용하기 편리하면서 보기 좋게 배치된 것을 보고 사람들은 할머니 집 같다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런 집을 동경하는지도 모른다. 할머니 집처럼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 쌓인 물건 중 일부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함께 오래 산 물건에 관하여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상 같은 경우 상판은 90x180cm 크기에 밝은 회색으로 10년 전 공간 디자인 전시 후 가져온 것이고, 유광의 스테인리스 다리는 대학생 때 친구 아버지가 인테리어하다 망친 테이블 5개 중 하나다(나머지 4개는 작업실에서 바퀴를 달아 작업대로 잘 쓰고 있다). 상판에 비해 다리가 작아 가분수 같지만 여유 공간이 많아 컴퓨터 본체를 숨겨두기도 좋고, 반려견 쿠키의 동굴이 되기도 한다. 책상 상판이 차분한 회색이라 주변에 화려한 색상의 소품을 두면 색상 대비로 더 산뜻해 보인다.




지금 있는 물건과 어울리게 배치하고 더 오래 쓰면서 그 사연과 함께한 사람을 추억하고 싶다




식탁 의자와 거실 소파 중 일부는 한 친구가 망원동에서 길에 버려진 것을 사진 찍어 보내줬는데 열대지방 느낌이 나는 라탄 소재와 녹색 벨벳의 쿠션으로 만든 것이었다. 너무 마음에 들어 바로 용달을 섭외해 작업실로 가져왔고, 그중 팔걸이가 있는 1인용 소파 2개는 스펀지와 천 갈이를 해서 집에서 사용한다. 이후 추가로 소파를 살 때는 녹색 벨벳과 어울리게 노란색 코르덴 소재 소파를 골랐다. 그렇게 해서 아내의 화장대와 수납장을 디자인할 때도 노랑을 포인트 색으로 사용하게 됐다.



거실에 있는 월넛 색의 앤티크한 타원형 식탁은 한 10년 전에 친구가 준 건데 낮은 다리를 달아 전시에 쓰기도 하고, 집에서 쓰다가 다른 친구의 술집에 팔았는데 술집이 문을 닫아 다시 가져와 쓰고 있다. 이제 많이 낡아서 바꿔야지 하면서 계속 사용한다. 망원동에서 가져온 라탄 소재 의자와 잘 어울리기도 한다.



옷 방에는 대학생 때 학교 재활용품 수거지에서 가져온 서류 보관용 4단 철제 캐비닛이 2개 있다.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는 이 캐비닛은 계절별로 옷을 접어 보관하는 용도로 쓴다. 영화 속 오래된 탐정 사무실에 있는 빛바랜 상아색, 회색으로 된 그 캐비닛이다. 집에 있는 천장 조명은 이사 올 때부터 있던 것을 그대로 둔 것도 있고 새로 달기도 했는데, 원래 있던 것은 1990년대 이 빌라를 지을 때 기본으로 달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옥색 원형 테두리가 있는 우물형 천장 안에 동그란 6개의 뿌연 유리 커버가 잘 어울려 그대로 뒀다. 다른 조명은 이 일을 시작할 무렵 오래된 전파사에서 구매한 작은 샹들리에와 갈색 유리, 백색 유리, 금속으로 된 조명이다. 정확한 생산 시기나 회사는 알 수 없지만 요즘 나오는 조명보다 더 예쁘다. 이사 다닐 때마다 새로운 집 천장에 달면 원래 있던 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준다.




남의 취향 말고 나의 취향

모두가 할머니 집같이 공간을 꾸밀 필요는 없다. 본인의 취향을 부끄러워하거나 다른 이의 공간을 부러워하지 말고, 우리가 모두 각자 다른 것처럼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길 바란다. 앞으로 몇십 년을 더 살면서 우리 집에 무엇을 더 새로 들일지는 모르지만, 지금 있는 물건과 잘 어울리게 배치하고 더 오래 쓰면서 그 사연과 함께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다.




박길종 | 길종상가 대표. 길종상가는 상가에 입점한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배우고 느끼고 겪어온 모든 것을 이용해 다른 이들에게 필요한 물건이나 인력, 이외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적절한 금액을 받고 지속적으로 운영한다. 2010년부터 길종상가를 운영해오면서 작성한 작업 노트를 바탕으로 최근 <길종상가 2021>이라는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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