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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고 기묘한 나의 오래된 집

작가 최예선

Text | Yesun Choi
Photos | Jungmin Son

이상하고 불편한 집, 다른 집에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 자주 발생하는 집, 그래서 좀 더 알아가고 싶은 집. 작가 최예선은 그의 집을 이렇게 표현한다. 현재 그는 용산에 있는 100년 된 적산 가옥에 살고 있다. 집을 잘 관리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부지런해야 하지만 집과 친해질 수 있기에 마다하지 않는다. 벽간 소음도 너그러이 이해하는 이웃과 푸른색 지붕에 보금자리를 튼 고양이 가족 등 작가 최예선이 오래된 집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을 함께 느껴보자.








두 집 살림의 시작

나는 두 집을 오가며 산다. 시아버님과 우리 부부가 함께 사는 신도시 아파트와 우리 부부가 각자의 사무실과 작업실로 쓰는 서울의 100년 된 이층집이다. ‘두 집 살림’은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면서 나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한 집이 언제나 잘 관리되는 평범한 아파트이기에 다른 한 집은 평범과 거리가 먼 형태의 가옥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오후에 머무는 집은 용산의 적산 가옥이다. 1층은 건축가인 남편이 동료들과 함께 사무실로 쓰고, 조그마한 응접실이 있는 2층은 나의 집필실이다. 이 집에서 지낸 지 5년이 넘어서 이 집과 함께 살아가는 법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나는 이 집을 어르신 모시듯이 대한다. 마루가 내려앉을까 조심조심 걷고, 목조 가옥이니 자나 깨나 불조심이다. 겨울엔 보일러가 얼지 않게 하는 비결도 터득했다. 낡은 집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사물과 시간을 담대하게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이 집에서 감지한 감수성을 글로 표현해보자면 이럴 것이다. “진짜 중요한 건 깊이 봐야 알 수가 있어. 우리는 각자 고유한 것을 품고 있지. 그건 누가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네 속에 있는 거야.




낡은 집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사물과 시간을 담대하게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후암동의 낡고 오래된 나의 집

이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 사장의 말이 생각난다. 당시 후암동의 다른 적산 가옥에 살다가 좀 더 넓은 곳으로 옮기려는 우리 부부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안 보여주는데, 두 분은 이런 것을 좋아할 것 같아서요.” 후암동과 바로 이어진 동자동의 언덕길을 올라가면서, 처음 이 동네를 발견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조용하고 오래된 동네, 천천히 낡아가던 동네였다. 동네 사람들의 면면도 참으로 다양했다. 강아지는 거의 보이지 않고 고양이가 많았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는 능소화가 폈는데 이 동네는 덩굴장미였다. 낮고 오래된 집들은 지붕이 꼿꼿하게 펴지지 않고 고양이 등처럼 휘어 있었다.



우리는 푸른 지붕을 올린 흰색 이층집 앞에 멈춰 섰다. 마당에 핀 장미 덩굴이 둥글게 대문을 감싸고 있었다. 처음엔 그 낭만적인 모습 때문에 1970년대에 지은 집인가 했다. 그러나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상황이 달라졌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자 집의 유구한 역사와 마주하게 되었다.




혼란스럽고 낭만적인 낡은 집의 역사

이 집이 1925년에 완성된 용산의 문화 주택단지인 쓰루가오카 1단지에 속한 44필지 중 하나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진짜 100년 된 집이었던 것이다. 마치 내가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만 같았다. 후암동, 갈월동, 동자동은 적산 가옥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동네다. 적산 가옥은 가옥의 형태나 스타일과 관련된 명칭이 아니라, 패망한 일본인들이 본토로 돌아가면서 남겨둔 가옥을 뜻한다. 미군정에서 이런 집을 모두 접수해 한국인에게 불하했다. 문화도 다르고 삶도 달랐던 일본인들이 살던 집이 갑작스럽게 한국인의 집으로 바뀌었다. 이런 이유로 적산 가옥의 이미지는 매우 혼란스럽다. 지붕이 높고 어두운 집, 나무 냄새가 어지럽게 풍기는 집, 이물감도 느껴지지만 낭만적이기도 한 집, 곧 사라질 집, 일시적인 집.



이 집도 한국인이 소유하게 되면서 가족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전쟁 직후 집이 턱없이 부족했다. 월남한 사람들,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몰려든 사람들이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집은 늘릴 수 있는 데까지 늘렸다가 여러 개로 쪼개지고 나뉘었다. 이 집도 반으로 자르고 필지도 분리되어 두 집이 되었다. 두 채가 된 집이 각자 증개축을 하다 보니 겉으로는 한 집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변했다.




오래된 집을 둘러싼 무심하고 귀여운 이웃들

그렇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옆집의 존재가 무척 가깝다. 보통 아파트는 층간 소음이 문제지만 이 동네 집들은 벽간 소음이 많다. 남편은 이런 집 구조를 우스갯소리로 ‘더블베드의 고충’이라고 했다. 한 사람이 움직이면 옆에 누운 사람이 그 움직임을 알아차리듯이 벽을 통해 흘러나오는 생활 소음은 막을 수가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 작업실에서 음악을 크게 틀고 성대한 모임을 하느라 큰 소음이 나던 날에도 무심한 이웃들은 한 번도 주의를 주거나 야단을 부린 적이 없다.



한 집에 몇 명이 사는지도 모를 정도로 고요한 이웃과 달리 야단법석을 부리는 존재가 있긴 하다. 우리 집 푸른 지붕 틈새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고양이들이다. 날씬한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아가들이 폭풍 성장을 하며 신나게 지붕 위를 돌아다닌다. 고양이 가족은 이 집이 마음에 드는지 날마다 밤마다 어슬렁거린다. 그러니까 이 집은 그 누구도 집사가 되고 싶지 않은 성인 넷과 그들을 집사로 여기는 고양이 세 마리가 살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일시적인 세입자들은 별 고민 없이 같이 살고 있다. 귀엽고 지혜로운 할머니 같은 이 집에서.




최예선 | 문화유산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찾아내는 작가로 비정기 미술 잡지 <아트콜렉티브 소격>의 동인으로도 활동한다. 최근에는 벽돌집, 도시 한옥, 양관 등 모던 시대의 감수성으로 지은 집에 관해 얘기하는 책 <모던의 시대 우리 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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