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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공동주택, 다양성, 도시

바람아 멈추지 마오

작가 태재

Text | Teje
Photos | Jungmin Son

산과 들에 부는 바람을 산들바람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도 이름을 지을 수 있을까. 작가 태재는 이런 물음을 던지며 동네를 산책한다. 누군가의 얼굴로 그 사람을 기억하는 것처럼 그는 창문의 모양으로 지나온 집들을 기억한다. 8년간 열 번 이사를 하며 지나온 집에서 그가 만났던 크고 튼튼한 바람, 네모난 바람, 여유로운 바람에 대한 이야기를 보내왔다.


이사를 자주 다녀야 했던 이유

내 나이 서른셋, 지난주에 벌써 열 번째 이사를 마쳤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왔던 나이가 스물여섯이었으니 8년 동안 열 번 이사한 것이다. 누군가 왜 그렇게 이사를 많이 했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 누구나 방황하는 시기가 있잖아요. , 이제 곧 낙엽이 지겠죠" 하고 쓸쓸한 가을 남자처럼 말하고 싶다. 실은 대학생 때도 방학, 누수, 여행 등을 이유로 자주 방을 옮겨야 했고 심지어는 군대에서도 줄곧 내무실이 바뀌었다. 이리저리 옮겨 다녔기 때문인지 나에게 이사란 어떤 엄두를 내야 하는 무거운 과정이 아니다. 조금은 번거롭지만 새로운 바람을 쐴 기회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20대 때는 1년도 못 살고 옮겨 다니던 이사가 30대로 접어들면서 1년 반 주기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이사는 정말 부득이했는데, 같이 살던 친구가 결혼을 앞두고 신혼집에 들어가는 바람에 살던 집이 해체된 까닭이었다. 또 이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과 또 혼자 살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삿짐을 옮기는 내내 자꾸 한숨이 나왔지만, 이사 자체가 나에게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니니 새집 창문을 열고 숨을 골라본다. 이번에 이사 온 집의 창문은 내가 열어본 그 어떤 창문보다 크고 튼튼하다. 크고 튼튼한 창문으로는 크고 튼튼한 바람이 불어온다. 나는 그 바람에서 큰 숨을 고르고 튼튼한 숨을 고른다.




내가 생활하는 1.5룸은 여유롭지 않지만 창문만큼은 내가 지금껏 머무른 어떤 집보다 여유롭다.”




여러 모양의 집, 여러 모양의 창문

서울에서 처음 구한 집은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아담한 원룸이었다. 화장실에만 작은 창문이 있고 방에는 창문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집에서 3개월쯤 살다가 작은아버지의 지원으로 복층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재수한다고 서울로 올라온 사촌 동생 덕분이었다. 복층답게 창이 세로로 길게 나 있었는데, 북향이었던 그 창문에는 성에가 많이 끼었다. 1년 뒤 동생의 재수가 끝나자 그 집은 깔끔하게 정리되었고 나는 구축 투룸으로 이사했다. 언덕배기에 있던 오래된 투룸에는 나름 베란다도 있었는데, 흐릿한 베란다 창문 너머로 건너편 집 마당의 해바라기가 보였다. 화분에서도 해바라기를 키울 수 있다는 사실과 환경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후로도 계속 이사를 다녔고 새로운 창문을 만났다. 싱크대 위 작은 창문으로 사람 얼굴이 휙휙 지나가던 1층 골목집, 너무 춥고 너무 더워서 차라리 창문이 없었으면 했던 옥탑방도 있었다. 주택가 2층에 살았을 때는 창밖으로 눈이 소복이 덮인 겨울의 골목길을 보며 차가운 따뜻함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다양한 동네에서 다양한 창문을 여닫으며 나는 투명한 풍경과 네모난 바람을 즐기게 되었다.




이사, 바람의 모양에 이름을 붙이는 일

이번에 이사 온 집은 2020년에 완공한 신축 빌라, 동네는 언젠가 한 번은 살아보고 싶었던 효창동이다. 효창동은 걸출한 나무가 많고 조용한 언덕도 있어서 늘 여유로워 보였다. 물론 내가 생활하는 곳은 고작 1.5룸이라 그리 여유롭지 않지만 창문만큼은 내가 지금껏 머무른 어떤 집보다 여유롭다. 거실이라 부를 수 있는 공간의 한쪽 면 전체가 창문으로 되어 있다. 이사 오고 나서 지난 일주일 동안 이 창문을 통해 나는 가을의 흰 구름을 보았고 한밤중의 귀뚜라미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 창문을 통해 내가 내린 커피의 향과 내가 들은 음악의 운을 흘려보냈다.



산과 들에 부는 바람을 산들바람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도 이름을 지을 수 있을까. 창바람? 문바람? 네모바람? 이런저런 물음표를 띄우며 동네를 걷는 요즘이다. 고개를 들어 다른 창문들을 구경한다. 색 바랜 포스터가 붙어 있는 집, 알록달록 화분들이 줄지어 있는 집, 햇볕에 산뜻해진 빨래가 걸려 있는 집. 이곳이 나의 마지막 동네는 아니겠지만 나는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정이 들 준비를 한다. 어떤 빵집의 빵 냄새가 좋은지, 어떤 편의점의 점원이 친절한지, 집으로 가는 지름길은 어디인지를 알아가며 어느 골목길 모퉁이의 헌옷수거함을 눈에 담는다. 언젠가 떠날 일이 생기겠지만 그 언젠가를 모르기 때문에 그저 하루하루를 채워갈 것이다. 새집의 크고 튼튼한 창문, 그 방충망 사이로 들어오는 촘촘한 바람처럼 말이다. 바람아, 멈추지 마오.




태재 | 에세이스트. 아담하고 씩씩한 글을 쓴다. 2014년에 처음 책을 만든 후 [스무스] [책방이 싫어질 때]를 포함해 지금까지 매년 한 권씩 책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2018년부터 열었던 글쓰기 수업 '에세이 스탠드'에서 800여 명의 수강생을 만나며 보고 느낀 것을 다듬어 책[Say Say Essay]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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