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정돈을 하면 집이 깨끗해지고 마음마저 깨끗해지는 것 같지만 세상은 여전히 형편없이 굴러간다. ‘설레지 않아서’ 왕창 내다 버린 저 가구와 집기들은 다 어디로 갈까? 수만 개의 정크 메일이 쌓인 인터넷 사용자의 계정은 얼마나 거대한 디지털 쓰레기를 자동 생성하고 있을까? 지극히 상업화된 미니멀리즘의 치부를 진단하고, 삶의 태도와 사상으로써 미니멀리즘의 단초를 찾아가는 책 두 권을 소개한다.
교토 료안지에 있는 돌의 정원 / ⓒKyle Chayka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SNS 검색창에 치면 흰색 가구 일색의 인테리어 사진, 무채색 옷으로 멋을 낸 패션, 기하학적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추상화 작품이 나온다. 특히 최소한의 가구를 들인 비어 있는 공간이 상당히 많이 보이는데 이런 이미지들은 사실 미니멀리즘의 극히 일부분이다. 미니멀리즘이 상업화되면서 기존 사조가 단순히 옷장을 정리하고 짐을 버리는 데에만 치중된 게 사실이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슬로건으로 유명한 일본 정리 전문가 곤도 마리에가 2011년에 쓴 <정리의 힘>이 일본과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조슈아 필즈 밀번과 라이언 니커디머스는 유튜브와 넷플릭스에서 미니멀리스트로 사는 법을 설파하며 대중의 이목을 샀다.
미니멀리즘은 ‘순수한 감각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돈, 취향, 마케팅이라는 겹겹의 막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지닌 사상이다. 이에 미국 평론가이자 작가인 카일 차이카Kyle Chayka는 신간 <단순한 열망: 미니멀리즘 탐구>를 통해 “우리의 침실은 깨끗해졌을지 몰라도 세상은 여전히 형편없다”고 선언하며 더 깊이 있고, 정직하며, 덜 자기중심적인 미니멀리즘을 찾아 맨해튼 한복판에서부터 텍사스의 사막, 교토의 뒷골목을 누벼온 이야기를 전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기 계발에 초점을 맞춘 오늘날의 미니멀리즘은 오히려 자본의 논리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단순해 보이는 물건을 구매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느끼는 또 하나의 계급 의존적 방식이 되었다. 단순한 삶처럼 보이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
“단순한 삶처럼 보이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
그는 이런 일침을 가하며 몇 가지 사례를 들었는데 유명 해외 뮤지션 부부의 집이 그렇다. 그들의 드넓은 집은 거의 비어 있으며 몇 가지 초호화 가구만 들여놓았다. 비어 있는 공간은 최고급 사물만 이 안에 들일 수 있다는 권위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우는 행위가 정반대로 사치를 부리는 행위가 된 것이다. 반면 카일 차이카가 긍정한 미니멀리스트의 집은 예술가 도널드 저드의 집이다. 그곳에는 예술이 침대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벽에는 무질서한 형태를 띤 체임벌린의 작품이 걸려 있는데, 금속 일부가 텅 빈 공간을 향해 튀어나와 있는 그의 집에서 저드는 예술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편안하게 생활했다.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에 집중하기 위해 삶과 예술의 연속적 흐름을 만들어놓는 것이 뮤지션 부부의 집보다 더 미니멀한 행위다.
Donald Judd, 15 un______titled works in concrete, 1980-84 / ⓒ2019 Judd Foundation / Artists Rights Society, New York.
다시 말하면 ‘미니멀리즘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것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삶의 방식’이다. 타인의 기준에 따라 올바른 것을 소비하자는 것도, 잘못된 것을 전부 내다 버리는 것도 아닌 그대로의 사물에 몰입하기 위한 태도다. 즉 미니멀리스트인 스티브 잡스의 미려한 디지털 기기 뒤에는 ‘엄청난 양의 전기를 소비하는 데이터 센터, 노동자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중국의 공장들, 주석을 캐느라 황폐해진 진흙 구덩이 광산’이 있으며 ‘음식 메뉴를 고를 때나 자동차를 주문할 때, 금속과 실리콘과 벽돌로 마감한 방을 빌리면서 미니멀리스트가 된 기분’ 뒤에는 ‘맥시멀한’ 시스템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카일 차이카가 흥미롭게 바라보는 미니멀리즘 실천가들은 예상될 법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투쟁하고 자주 엉망이 되고 걱정에 빠져들며 단순한 해법을 제시하기보다는 ‘어떻게 현대사회를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새롭고 실존적인 질문 앞에 서는 사람들이다. 책에는 예술가 아그네스 마틴과 도널드 저드, 새로운 감각의 지평을 연 음악가 존 케이지와 이스트먼, 에릭 사티, 그늘의 미학을 예찬한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철학자 구키 슈조 등의 삶과 세계가 등장한다. 마치 미니멀리즘이라는 광대한 박물관 안에 관람자들의 흥미를 돋우는 메시지를 섹션별로 큐레이션한 것 같다. 그곳은 하얗고 권위적인 화이트 큐브이기보다 그리다 만 캔버스, 지폐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갑, 쓰다 만 생활용품이 나뒹구는 조금은 황량한 무대가 아닐는지. 하지만 그 전시에서 빠져나갈 때쯤 ‘정답이 모호한 상태가 두려워 피하지 않는’ 미니멀리스트의 태도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될 것이다.
Eames House interior, 1952 / ⓒEames Office LLC
또 다른 신간인 주한나 작가의 <아무튼, 정리>는 정리에 관한 가볍지만 묵직한 시선을 다룬 에세이다. 주한나는 카일 차이카가 말한 ‘삶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방법으로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작가는 데이터 과학자로 성인이 된 후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았다. ADHD가 있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주의력이 부족하고 과다 활동, 충동성이 나타나기 때문에 주변 정리 정돈에 어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그가 정리에 관한 에세이를 썼다는 사실만으로 이 책을 펴보게 만든다. 그는 영국에서 데이터 과학자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외국인 노동자로 살면서 힘겹게 얻은 정리의 기술에 대해 얘기한다.
작가는 런던의 비싼 집세 탓에 좁은 집에서 남편, 아이와 함께 살며 생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정돈을 시작했다. 또 남편도 ADHD를 진단받았기에 둘은 정리 정돈을 해야 한다는 필사적인 생각은 없을지라도 누군가 한 명이 청소를 시작하면 왠지 ‘청소 빚’을 지는 것 같은 불편함 때문에 나머지 한 사람도 같이 청소하는 습관이 생겼다. 또한 서로의 방은 마치 ‘미친 과학자의 실험실’처럼 존중하고 건드리지 않는 편이다. 이처럼 작가는 개인적인 정리에 대한 얘기를 이어가면서 직장에서 겪는 정리 해고 문제, 여성에게 더 가혹한 집 정리에 관한 잣대, 효율성과 자기 계발만 강요하는 시대적 상황 등을 짚고 넘어간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작가가 데이터 과학자라는 직업인으로서 바라본 정리라는 행위다. 그는 읽지 않은 메일이 쌓인 수만 개의 메일함, 그가 만든 모니터링, 트래킹, 채팅 메시지 등에서 “일상에서 최대한 음식 쓰레기와 포장 쓰레기를 줄이려고 하지만 그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정도의 디지털 쓰레기를 매일같이 만들어낸다”며 현실을 직시한다. 현실의 쓰레기는 어떻게든 처리되지만 디지털 쓰레기는 차곡차곡 쌓였다가 불특정 다수의 정보가 필요한 기업들에 팔린다. 수백 수천만의 인터넷 사용자들의 흔적을 먹고 자란 검색 모델은 당신이 누구인지는 관심 없지만, 당신이 어떤 물건을 찾는지는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4분 33초’가 처음으로 연주된 우드스톡의 매버릭 콘서트홀 근처 숲 / ⓒKyle Chayka
마지막으로 작가가 엔트로피 개념으로 정리를 설명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엔트로피는 에너지의 쓸모를 나타내는 양이다. 즉 어떤 상황이 복잡해지면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우주는 점점 더 무질서한 상태가 되는 ‘음의 엔트로피’를 먹고 산다. 작가는 딜런 토머스의 ‘저 좋은 밤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시를 통해 아버지에게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지 말고 그 앞에서 분노하고 반항하라’는 시인의 목소리를 인용한다. 우리 모두 ‘무’의 상태로 돌아가지만 티끌 같은 ‘나’라는 존재가 책상을 정리하는 일은 절대 사소하지 않은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무질서로 내달리는 세계에서 개인의 행동이 사뭇 무의미하게 보이더라도 그 앞에서 분노하고 반항하고 실천하는 일. 실존주의적 작가의 맺음말은 정리하는 것 그 배후의 세계가 얼마나 깊고 어두운지, 그런데도 엔트로피에 쓸려가지 않으려고 의지를 불태우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느끼게 한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메시지를 듣고 이제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미니멀리즘과 정리에 대한 깊은 사유가 시작된 것일지 모른다. 카일 차이카의 말처럼 애초에 모든 것이 올바르고 통일된 전체로서 조화롭기를 바라는 열망은 편협함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 두 권의 신간을 통해 미니멀리즘의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을 탐색해보는 건 어떨까. 너무 많은 광고와 잡음 속에서 우리의 존재를 소비자로만 여기며 예의 주시하는 존재로부터 멀어질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머릿속의 소음을 줄이면 삶과 사회에서 내는 긴급하고 중요한 사이렌이 더 잘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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