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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노마드, 다양성, 프리미엄

다시 떠나는 여행의 의미

팬데믹 이후의 여행

Text | Angelina Gieun Lee

팬데믹 기간 동안 통제되었던 여행을, 그 경험으로 인해 팬데믹 이후에도 온라인이나 가상 체험이 상당 부분 대체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실제 밖으로 떠나는 여행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편한 집을 벗어나 멀리 떠나려는 이유는 무엇이고, 앞으로 여행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까. 팬데믹 이후 여행이 다시 급증함에 따라 왜 지금 다시 여행을 떠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변화할지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전에 없던 전염병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집에 머물렀다. 그러다 보니 다른 어떤 활동보다 여행을 제일 먼저, 그리고 오랫동안 멀리해왔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United Nations World Tourism Organization)에 따르면 2021년 해외 여행객 수는 코로나19 발생 이전 대비 10억 명 감소하고 이로 인해 총수익이 1조 달러 감소했으며 여행, 관광 및 관련 업계가 다른 업계 대비 타격을 크게 입었다.



그런데 엔데믹으로 전환되는 요즈음 다시 여행지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유엔세계관광기구 통계에 따르면 2023 1분기 해외 여행객 수는 86% 증가했고, 이러한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비록 전염병 확산 이전 대비 80% 수준에 불과하지만 꽤나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여행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는 이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동과 여행의 제약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왜 집을 떠나고, 왜 여행을 떠나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과감한 시도를 하거나 혹은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인 ‘stepping out of the comfort zone(안전지대에서 벗어나다)’이라는 표현이 있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탈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사람의 사고와 시선은 주변 환경에 의해 전적으로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사람이 사고 및 인지를 하는 데 시각 정보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일상생활을 지속하다 보면 주변 환경과 상황에 동화되다 못해 함몰되어 정해진 틀 안에서 생각하고 사물을 바라보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내 주변 환경과 상황이 세상의 전부인 듯 착각하며 살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낯설고 새로운 장소에서는 평소 보고 듣지 못했던 것을 접하게 된다. 내가 당연히 여기던 일을 여행지에서는 새롭게 받아들이고, 반대로 현지에서 당연시되는 일이 내게는 낯설다 못해 문화 충격으로 다가오는 순간을 수시로 마주한다. 또한 주변의 시각 요소에 변화가 일어나면 사고와 시각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뒤를 잇는다. 내가 몸담고 있던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평소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틀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지난 3년간 전 세계가 전염병의 공포에 시달린 탓에 앞으로 여행하는 방식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비자카드에서 발행하는 디지털 매거진 <비자 내비게이트Visa Navigate>는 팬데믹으로 인해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상황을 꼬집는다. 언제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미미하게나마 남아 있어 미리 계획을 세워 예약하기보다 여행 가능한 시기에 임박해 준비해서 이동하고, 호캉스 등 호텔이나 숙박 업소에 머무르며 휴가를 즐기는 행태가 이전보다 더 확산되며, 원거리 이동 못지않게 근거리 이동을 선호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여행과 이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대안으로 선택한 근거리 이동 및 국내 여행을 통해 전염병 확산 이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여행 방식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지속 가능성과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 제고도 여행 방식의 변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전부터 제기되어왔지만 유엔환경계획(UN Environment Program)에서 발행한 다수의 보고서에서 항공을 비롯한 원거리 이동이 지구온난화 유발 요인의 5%를 차지하며, 지속 가능하지 못한 여행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따라서 이전과 같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더라도 여행하는 방식은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Euromonitor International의 보고서(2021 5월 발간)가 전망했다.








다른 한편으로 관광객이 지나치게 몰려 발생하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잇따른 유적지 훼손을 비롯한 각종 사고와 여행객의 소란 및 소음으로 인해 현지 주민의 사생활이 침해받고 빈번하게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것이다. 이에 무분별한 여행객의 유입과 부작용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가 보도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 사례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주목한다.



암스테르담은 유흥업과 대마초에 대한 접근성이 용이하다 보니 비교적 관대하고 개방적인 도시 이미지를 얻은 덕에 젊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은 도시였다. 그러나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도시 전체가 몸살을 앓는 데다 여행 및 관광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역성장(degrowth)’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여행객을 더 끌어들이는 대신 타 지역으로 분산시키거나 방문자 수를 줄이기 위한 시도를 하기 시작한 것.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암스테르담 시의회는 올해 상반기 ‘스테이 어웨이Stay Away’ 캠페인을 승인했다. 이를 통해 “소란스러운 밤을 보내려 암스테르담에 오지 말라”라는 반직관적인 메시지로 밤새 유흥을 즐기다 못해 지역사회에 피해를 입히는 젊은 여행객들에게 직설적으로 경고한다.








여행과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기를 겪으며 거의 모든 영역에서 초기화에 가까운 경험을 하다 보니 우리는 다양한 선택지에 눈을 돌리고 탐색할 가능성에 대해 더디게나마 자각했다. 그러나 정작 대안을 찾자니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막막할 수 있다. 프랑스 작가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Xavier de Maistre <내 방 여행하는 법>에서 영감을 얻어보면 어떨까. 그는 책에서 1794년 당시 가택 연금형을 받고 한 달 남짓 집에 머무르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집 안 곳곳을 여행하듯 관찰하며 그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발걸음을 옮겨 여러 곳으로 시선을 두며, 여행이란 새로운 장소에서 낯선 것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고 역설했다. 오히려 눈에 익은 사물을 접하더라도 새로운 시각과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진정한 여행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과 여행의 제약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왜 집을 떠나고, 왜 여행을 떠나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 집만큼 편안하고 아늑한 장소는 드물다. 그러나 한 번쯤 익숙한 장소와 주변 환경에서 잠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그리고 개개인의 가치관과 취향이 다른 만큼 여행하는 방식도 다양하게 시도해볼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먼 곳으로 떠나든, 가까운 곳으로 바람을 쐬러 나가든, 집에서 편안하게 머물기를 선택하든 말이다. 단순히 휴식을 취하고 기분 전환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평소 사물을 바라보던 방식 외에도 다른 방식과 대안이 있음을 알게 됨으로써 내 삶을 더 풍성하게 꾸려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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