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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도시, 로컬, 프리미엄

그곳의 도시인 70%가 보유한 별장, 다차

러시안 여름 별장 다차

Text | Hey. P
Photos | FUEL Publishing

당신에게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집은 어떤 모습인가.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던 할아버지 댁의 슬레이트 가옥, 또는 5층짜리 아담한 주공 아파트일 수도 있겠다. 우크라이나와의 긴 내전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러시아에도 여느 민족이 그러하듯 유년의 기억과 함께하는 전통 가옥이 있다. 소비에트 시절부터 오랜 세월 사랑받아 온 주거 양식 다차가 대표적. 이는 오늘날까지 러시아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조명하는 건축물로 존재감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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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의 70%가 보유하고 있는 별장, 다차dacha. 소비에트 시대 이후 러시아에는 도심에서 떨어진 시골에 또 하나의 집과 텃밭을 두고 한 번씩 휴식차 방문하는 문화가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소비에트가 붕괴되고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도시 거주자들이 자급자족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러시아에서는 다차의 사용이 가속화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다차는 러시아 상류층과 중산층 사이에 여름휴가지로 큰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에는 다수의 러시아인이 보유한 또 하나의 집이 되었다. “다차는 단순히 집의 한 형태가 아니라 러시아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위키피디아는 이렇게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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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에 마련한 별장이라고 하니 언뜻 수영장이나 사우나 시설을 갖춘 근사한 공간을 떠올리게 되지만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 모스크바 근교에 있는 다차는 대부분 잘 관리된 타운 하우스나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화려한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쓰러져가는 농막, 폐가라고 볼 만큼 허름하고 노후한 가옥도 많다. 구소련 시절, 무료 할당지에서 자급자족할 곡식을 가꿔야 했던 러시아인의 삶의 터전, 혁명과 전쟁, 공산주의 붕괴 속에서 살아남은 흔적이라 하겠다. 런던 기반의 출판사 푸옐Fuel이 최근 출간한 <다차The Dacha>(Dacha: The Soviet Country Cottage, by Fyodor Savintev and Anna Benn, FUEL Publishing, 2023)는 낯설고 베일에 싸인 러시아인의 쉼터이자 삶의 집약체인 다차에 대해 자세히 다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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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차는 웅장한 황실 별장부터 작은 창고까지 다양한 건축물을 설명하는 데 사용한다. <다차>에서 밝히듯, 다차의 미학은 그 스펙트럼이 꽤 방대하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낡은 목조건물, 강렬한 노란색 또는 분홍색 페인트로 채색한 오두막, 외관에 배와 갈매기 문양을 새기거나 4~5층까지 올린 복고풍 코티지 등 크기와 디자인이 다양하다. 복잡한 나무 조각, 레이스를 걸친 듯 정교하게 빚은 나무 장식, 화려한 색상의 페인트칠 같은 장식 요소가 특징이다. 이 고풍스러운 다차들이 러시아의 광활한 자연, 흰 설원 위에 옹기종기 모여 군락을 이룬 풍경은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답다.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 깊숙이 자리한, 일종의 휴가지 성격을 띠는 다차를 아낀 예술가도 많다. <닥터 지바고>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등은 다차에 머물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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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차는 단순한 건축양식이 아니라 러시아 문화와 역사 속에 깊이 뿌리 내린 삶의 방식이다. <다차> 저자 안나 벤Anna Benn의 말처럼 다차는 격변의 시대를 거치며 스스로 삶을 일구고 개척해온 러시아인의 삶의 결과물이다. 혁명과 전쟁, 공산주의 붕괴 속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삶의 필수적 요소가 된 셈이다. 자급자족하는 삶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이 그 이유다. 일반적으로 농업 또는 레저 목적으로 이용한 시골 별장 다차에서 러시아인들은 야채와 과일, 허브를 재배하며 끊임없이 휴일의 대부분을 농업에 투자했다.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연을 가꾸고 그 속에서 수확의 기쁨을 누리며 끊임없이 일하고 가꾸는 삶. 다차는 우두커니 머물고 쉬는 공간이 아닌 끊임없이 움직이고 뭔가를 부지런히 가꿔야만 하는 곳이다.




80%의 일과 20%의 낭만. 일은 없고 그렇다고 놀지도 않는 그 중간의 삶이 다차에 있다.




다차는 처음부터 완벽한 집이 아니다. 시골 부지 한쪽에 땅을 구입한 러시아인들은 미완의 부지에 수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자신의 별장을 완성시킨다. MPR 뉴스의 한 기사에 실린, 1992년에 다차를 지은 타티야나 베레스트네바Tatyana Berestneva의 수기는 많은 것을 함축한다. “밀과 귀리밭으로 둘러싸인 작은 집 앞에 트럭에 가구를 싣고 왔던 기억이 난다. 힘이 없어 곧 쓰러질 것 같은 다차는 처음에는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종일 분주히 숲속을 걸으며 숲을 탐험했고, 저녁에는 등유 램프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보드게임을 하곤 했다.” 그 낡고 허름했던 다차가 이제는 온실 하우스를 갖추고 토마토와 베리류를 재배하는 근사한 휴가지로 변모했다. MPR 뉴스는 말한다. “다차는 도시 생활자를 위한 러시아의 ‘여름 치료제’다. 모든 세대의 러시아인은 어린 시절 여름을 다차에서 보낸다. 다차에서는 항상 해야 할 일이 산재해 있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도시 거주자들이 갈망하는 실존적 신체 활동을 하도록 이끈다. 80%의 일과 20%의 낭만. 일은 없고 그렇다고 놀지도 않는 그 중간의 삶이 다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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