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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라이프스타일, 힙스터

과연 독서는 섹시한가

텍스트힙

지난 6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희귀한 풍경이 펼쳐졌다. 행사가 열린 주말에 인파가 몰려 행사장 안팎이 인산인해를 이룬 것이다. 주최 측에 따르면 총 15만 명이 다녀갔으며 그중 20~30대가 전체 입장객의 73%를 차지했다. 이례적인 현상의 원인으로 최근 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텍스트힙 문화가 대두되었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SeMA)노지훈



텍스트힙은 말 그대로 문자를 의미하는텍스트text’와 멋지다는 표현인hip’을 합쳐진 용어로, 독서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인식과 그로부터 파생된 문화를 뜻한다. 이 유행을 주도하는 건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Z세대다. 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문화를 알려면 틱톡의 해시태그를 보면 되는데, 자기가 읽은 책을 소개하고 좋은 책을 추천하는 내용의 쇼츠를 뜻하는 해시태그 #booktok은 틱톡 내에서만 수십만 건에 이른다. 인스타그램에서는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이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피드가 608만 건이다.


자극적인 짧은 영상 콘텐츠에 익숙한 Z세대가 긴 집중력을 요하는 독서에 빠지게 된 데는 소셜 미디어와 셀러브리티의 영향이 크다. 그 예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모델 카이아 거버. 1990년대 슈퍼모델인 신디 크로퍼드의 딸로, 엄마처럼 모델 활동을 하는 카이아 거버가 독서 클럽을 만들고 자기가 읽은 책의 내용을 공유하거나 작가와 함께 책을 읽고 그에 대해 논하는 콘텐츠를 올리면서 더 많은 Z세대가 독서에 흥미를 느끼고 멋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아이돌, 배우, 가수 등 Z세대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이 독서하는 모습을 미디어와 소셜 미디어에 노출하면서 그들이 읽은 책을 따라서 읽는 Z세대가 늘어났다.








L_Odyssée Belle



Clay Banks



독서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그와 관련된 새로운 문화도 탄생했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가 책 인증샷이다.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에 자기가 읽은 책의 표지나 인상 깊은 구절이 담긴 페이지를 촬영해서 올린 피드가 많이 올라온다. Z세대가 새롭게 유행시킨 문화는 좋아하는 구절을 따라서 필기하고 외우는 필사다. 젊은 독자들은 단순히 책을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한다. 필사는 그 마음을 대변하는 행동이다. 그러다 보니 필사와 관련된 제품, 즉 필사 노트와 필기구, 문진 등의 인기가 높아지고 필사에 관한 책이 따로 출간될 정도다. 필사 문화는 시의 유행도 초래했다. 문장이 길고 문단 전체를 따라 써야 하는 소설이나 에세이와 달리 상대적으로 호흡이 짧고 감성적인 시는 쉽게 필사할 수 있어 많은 사람이 시를 읽고 필사한다. 실제로 텍스트힙이 유행하면서 시집 매출이 상승했다. 시집을 구매한 사람 중 26.5% 20, 20.2% 30대였다는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Z세대의 적극적인 독서 문화에 출판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자기 계발서, 소설 및 문학, , 회고록, 에세이, 심지어 로맨스까지 Z세대가 선호하는 책의 장르가 넓은 편이라 전반적으로 판매량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 이에 출판업계는 Z세대의 관심을 끌 만한 이벤트를 기획해 그들의 관심이 식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에 대한 내용을 작가에게 직접 들을 수 있는 북 토크를 대형 서점이 아닌 작은 독립 서점에서 열어 독자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려 하고, 책 출간 기념 팝업스토어를 열어 작가의 팬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호기심을 이끄는 표지 디자인과 구매욕을 일으키는 굿즈 제작은 이젠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었다.



텍스트힙은 공간과

인테리어에도 영향을

미쳤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인증샷은

텍스트힙 문화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

이는 곧 텍스트힙이

이미지로써 책을

소비한다는 걸 의미한다.



어떤 책을 읽었는가 하는 것만큼어디서책을 읽었는지가 중요해지면서 Z세대는 독서를 감성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미감이 뛰어난 Z세대에게 포착된 곳은 도서관이다. 지금의 도서관은 복합 문화 공간으로 책 대여 외에도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곳이다. 그래서 지자체와 공공 기관은 오래전부터 공공 도서관을 건축적으로 아름답게 만드는 시도를 해왔는데 그 노력의 결과가 이제야 드러나게 된 것이다. 창밖으로 폭포와 연못이 보이는 청운문학도서관, 고요한 서재의 매력이 느껴지는 손기정문화도서관, 눈 내리는 날에 더 예쁘다고 소문난 인왕산 숲속쉼터, 예술 서적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등 인테리어는 물론 경치까지 뛰어난 도서관은 Z세대가 일부러 찾아갈 정도로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이 외에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북 카페, 술을 마시며 독서가 가능한 북 바book bar도 텍스트힙 문화로 주목받는 공간이다. 예전부터 존재하던 공간이지만 차이점을 찾자면, 지금의 북 카페와 북 바는 혼자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독서를 디지털 디톡스로 여기는 Z세대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찌들어 있다. 그에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본 Z세대가 자극적인 디지털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찾은 방법이 독서인 것이다. 어쩌면 Z세대가 독서를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의 부정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바꾸려는 자기 개발적 행동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텍스트힙은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전 세계의 Z세대가 겪고 있는 문화다. 올해 초 영국의 <가디언> Z세대의 독서 문화와 그로 인한 책 판매량 증가를 보도했다. 이에 해외에서는 자기 집 서재를 사진 찍어서 소셜 미디어에 올리고 #bookshelf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것은 서재에 꽂힌 책 목록으로 서재 주인의 성격과 특징을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얻었다.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잡지 <브루터스Brutus>도 올해 1월호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서재를 소개하는 콘텐츠를 기획함으로써 현재 텍스트힙 유행이 결코 일시적이지 않음을 보여줬다. 한편 이미지 소비 중심의 문화라는 점에서 텍스트힙을 과시적인 행위로 보는 비판적 시선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6명이 1년 동안 책 한 권도 안 읽는다는 충격적인 통계 결과를 보면, 텍스트힙은 책이 어려운 세대에게 독서의 매력을 전파할 좋은 기회로 생각된다. 모든 사회현상에는 명암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를 좋은 기회로 삼을 방법을 고민하고 찾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Text | Young-eun H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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