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CULTURE|라이프스타일, 커뮤니티, 힙스터

창고가 놀이터로 변한 사연

남자의 동굴, 케렌시아

‘자기만의 방’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커지면서 집 밖 어딘가에 나만의 공간을 꾸리는 것이 일종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아내들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리는 한편, 다락방이나 지하실을 오디오 룸이나 게임 룸으로 개조한 남편들의 사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각 개인에게 독립된 사무 공간을 제공하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나만의 아지트로 활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본 콘텐츠는 201910“VILLIV” 매거진에 실린나만의 은신처를 찾는다면’ 기사를 활용했습니다.




Flaherty's Shed



독일어로놀이(spiel)’공간(raum)’를 합친 슈필라움spielraum’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뜻한다. 여기서 공간은물리적 공간은 물론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한다. 독일에 슈필라움이 있다면 호주 남자들에게는창고(sheds)’가 있다. 이들에게 창고는 집도 일터도 아닌 제3의 공간이자 성인 남자의 공인된 놀이터다.


영국 사진작가 재스퍼 화이트Jasper White가 기록한 창고 시리즈(SHEDS)는 집에 딸린 창고를 오락실처럼 개조하는 호주 남자들의 독특한 문화를 조명한다. 이 프로젝트는 새해를 하루 앞둔 어느 날, 재스퍼 화이트가 호주에 사는 여동생 집에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늦은 저녁 술 한잔 할 생각에 밖으로 나온 그는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아 실망했다. 그러다 가까스로 찾은 술집에서 주민들과의 대화 중 동네 사람 대부분이 술집이 아닌 자신의 창고에서 파티를 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다. 빅토리아 서부에 있는 이 작은 마을의 남자들에게는 다들 자기만의 은신처가 있었다.




Gerry's Shed


Graem's Shed


Matt's Shed


Morry's Shed


Bill's Shed



알고 보니 창고는 호주 전역에 퍼져 있는 문화였다. 재스퍼 화이트는 이것을 카메라에 담기로 했다. 처음에는 여동생 친구와 가족,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촬영지를 물색했다. 작은 마을이다 보니 소문이 빨리 퍼졌고, 촬영은 수월하게 진행됐다. 한 사람이 창고를 내주고 나서 자신이 아는 다른 사람의 창고를 추천해주는 식이었다. 창고 주인들은 그에게 꼭 봐야 할 창고를 앞다퉈 추천해주기도 했다. 요컨대 그가 만난 사람들은 촬영에 매우 협조적이었다.



호주 남자들은 창고 문화 기록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그들은 이사할 때조차 집보다 창고를 먼저 봅니다.”



호주 남자들은 집 안에 두기 어려운 물건을 창고로 옮겨 자기만의 동굴을 만들고, 서로의 동굴을 드나들며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맥주를 마시고, 스포츠를 논하고, 새 차를 자랑하며 남자다운 우정을 쌓는다. 창고를 꾸미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거대한 당구대를 설치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맥주 냉장고에 바 체어까지 갖춘 애주가도 있다. 본래 차, 장비, 부품 등을 보관하는 장소였던 창고가 소유주의 취향과 삶을 반영한 슈필라움으로 거듭난 사례다.



Text | Bora Kang

Photos | Jasper 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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