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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네트워킹, 다양성, 프리미엄

유치원부터 시작하는 유럽의 젠더 교육

젠더뉴트럴 교육

이제 유럽의 교실에서는 ‘그’와 ‘그녀’를 넘어선다. 아이들은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난 언어로 자신을 소개하고, 스스로 ‘그들’ 또는 원하는 대명사를 선택해 자신의 정체성을 말한다. 젠더뉴트럴 교육은 새로운 규범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과 포용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하는 방식이다. 교사와 부모는 아이가 아니라 아이에게 주어진 세계를 바꿀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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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한 가정에 크나큰 축복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 개인만이 아닌 가족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빌리브매거진은 매월 1회에 걸쳐 아이와 함께 창의적이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발자취를 찾아아이와 함께하는 삶의 더 나은 방향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나를 그, 그녀 말고 그들이라 불러줘.” 프랑스의 한 유치원 교실, 네 살짜리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지금 유럽의 교육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교실 한쪽에는나의 이름과 대명사를 적은 알록달록한 종이들이 걸려 있고, 선생님은 새 친구가 오면 이렇게 묻는다. “어떤 이름과 대명사로 불리고 싶어?” 아이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부르길 원하는지에 대해 존중하며 장난감, 색깔, 활동을 성별로 구분하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한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소개하고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대한 편견 없는 태도를 기르는 교육, 이것이 바로 젠더뉴트럴 교육(gender-neutral education)’이다. 오늘날의 아이들은 훨씬 복잡하고 다채로운 세계에서 자란다. 한부모가족, 동성 부부 가족, 입양 가정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생겼고 전통적인 '엄마-아빠-아이'의 구도가 더 이상 유일하지 않다. 어떤 아이는 2명의 엄마, 어떤 아이는 아빠만 한 명 있고, 또 어떤 아이는 조부모와 함께 산다. 형태보다 관계의 질이 가족 구성을 이루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유럽은 젠더 중립, 평등을 넘어 성별도 인종도 환경도 아닌개인이라는 고유한 존재를 중심에 둔 교육으로 진보하는 중이다.


이런 움직임이 시작된 곳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에갈리아Egalia’ 유치원이었다. 이들은 핀란드어에서 차용한 중성 대명사hen’을 일상적으로 사용했다. ‘신데렐라잠자는 숲속의 공주같은 전통적인 동화 대신, 아기 악어를 입양한 기린 부부의 이야기처럼 가족과 정체성의 다양성을 담은 책이 책장을 채웠다. 안타깝게도 지역 아동 수 감소로 문을 닫았지만 이 유치원의 실험적 시도는 전 세계 교육계에 큰 영향을 끼쳤고, 북유럽 국가 모두가 젠더 중립 교육을 의무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독일은 일부 주에서 유치원 단계부터 젠더 민감성 교육을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2018년부터 초·중등 교육과정 전반에 LGBT 포함 교육을 도입했다. 여러 유럽 국가에서 학교 문서에는 중립적 언어를 사용하며 교복이나 화장실은편안함존엄을 기준으로 한다.


최근 프랑스 교육부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감정 표현, 권리 존중, 가족 다양성까지 포함한 교육 체계 감정·관계·성생활 교육프로그램(EVA-RS) 2025년부터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2001년부터 젠더 교육을 의무화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그 범위와 내용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올해 구체적으로 방식과 의도를 정하고 만 4세 유치원생부터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는 점은 매우 의미가 깊다.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성과 관계, 감정 표현에 얽힌 고정관념을 벗어나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이후 초·중등 과정에서 그 감각을 더 넓고 깊게 확장해간다. 13세에는 생물학적 성, 젠더, 성적 지향의 차이를 인식하고 16세에는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훈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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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만 4세 유아기부터 젠더뉴트럴 교육이 필요할까? 데이터로 해석하자면 전 세계 15개국을 대상으로 한글로벌 초기 청소년 연구에 관한 언급이 필요하다. 이 연구는 성 고정관념이 유년기부터 아이들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억압한다는 과학적 근거를 보여줬다. 사회가 부여한 성 역할은 자신감 결여와 함께 우울증, 자살 충동, 약물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만 4세 시기의 교사, 부모, 형제 등은 롤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유념해야 할 점은 성은 생물학적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각자의 감정과 경험을 이끌고 어떤 표현 언어로 확장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을 이해하는 일은 나와 너,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일과 같다는 측면에서 이를 무시할 수 없다. 물론아직 너무 이르다’, ‘아이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만 4세 아이에게 성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유럽 사회 내에서도 뜨겁다. 이탈리아 교육부는 2025 3, 학교 현장에서 사용하는 언어적 표현에서 다시 젠더를 확실히 구분하라고 전했다. 문법적 명확성을 이유로 들었지만, 많은 이들은 이를 보수 정부의 정치적 결정으로 받아들인다. 젠더 중립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빠르게 문화와 정치의 경계에 걸리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에갈리키Egaliki’ 교육 플랫폼을 운영하는 젠더 컨설턴트 아나벨 파시야스는 만 4세보다 더 어린 나이부터 젠더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가 강조하는 것은 학교가 아닌 집, 교사가 아닌 부모가 먼저 이끄는 것이다. “뇌 발달 측면에서 유아기는 사회적 자극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기입니다. , 장난감, 말투, 칭찬까지 젠더 관점에서 점검해야 해요. ‘슈퍼히어로 옷은 남자애 옷이라는 무심한 설정이 아이에게나는 안 되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요. 다섯 살, 여섯 살 때부터내가 이런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는 아이가 여전히 많다는 사실은 정말 슬픈 일이죠. 아이보다 아이를 둘러싼 세계를 먼저 바꾸는 것이 제대로 된 젠더 교육입니다.”



세상을 젠더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의외로 많은 곳에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기대와 규범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녀는 에갈리키 웹사이트를 통해 부모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아이가 고른 옷과 장난감에 성별을 덧씌우지 않는 것부터 시작이다. 핑크 셔츠나 공룡 장난감은 누구나 좋아할 수 있다. ‘예쁘다대신재미있다’, ‘창의적이다같은 말로 감탄을 표현해보자. 책 속 주인공이 늘 남자일 때는 아이에게왜 그럴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도 중요하다. 역할극과 미술 활동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중요한 훈련이 된다. 그녀는 말한다. “공주는 왜 항상 구조되어야 하지?” “남자만 의사가 될 수 있나?” “이 인형은 왜 여자아이 것이어야 하지?” 세상을 젠더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의외로 많은 곳에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기대와 규범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장난감 색깔, 동화 속 남녀 역할, 교실에서의 발언 기회 등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일상 곳곳에 젠더의 프레임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젠더뉴트럴 교육은 아이를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아이가 어떤 존재로도 자랄 수 있는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벽을 하나씩 걷어내는 일에 가깝다. 결코 누군가를 바꾼다기보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정치나 문화의 경계에서 종종 도전을 받기도 하지만, 분명한 건 세상이 더 다양해진 만큼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언어도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누구나 자신일 수 있는 세계, 아이들이 그런 사회에서 자란다면 세상은 조금 더 너그럽고 단단해질 것이다.



Text | Anna G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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