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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도시, 노마드, 다양성

내 집을 갖는 과정, 500에 20짜리 집

이수민

Text | Kakyung Baek
Photos provided by Soomin Yi

많은 사람들이 ‘내 집’을 갖기 전 거치는 단계가 있다. 서울에 집을 사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빌릴 때도 있지만, 그 전에 남의 집을 임대해 사는 과정이 있다. 집값으로 재단되는 것은 공간뿐일까? 이수민은 주거 세입자로서 반지하, 단독주택, 옥탑방을 보러 다니며 떠오른 단상을 글과 그림으로 엮었다.





“주거 세입자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보증금을 들고 이사 갈 곳을 알아보러 다니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른 이의 사는 공간으로 불쑥 들어가게 됩니다. 때로는 500에 20에, 때로는 1000에 45에, 때로는 6000에 적절하다고 평가된 삶과 공간에 드나드는 괴상한 경험을 반복하며 사람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 저자 이수민 -




많은 사람들이 ‘내 집’을 갖기 전 거치는 단계가 있다. 월세나 전세 형태로 집을 빌리는 시기이다. 물론 서울에 집을 사기 위해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빌릴 때도 있지만, 그 전에 남의 집을 임대해 사는 과정이 있다. 시시때때로 새로운 집을 구하고 이사하는 일련의 단계만큼 지난한 일이 있을까? 부동산 앱부터 온라인 카페, 부동산 등을 뒤지는 것도 곤욕스럽지만 내가 가진 예산이 턱없이 적어 보일 때 더 맥이 빠진다. 집이 좀 괜찮다 싶으면 보증금이나 전세금은 또 얼마나 비싼지. 편안하고 아늑한 집을 선택하지 못하고 돈에 의해 집을 선택당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 다음의 짧은 서문은 유난히 더 큰 울림을 준다.

“선물로 받은 화분이 있다. 어딘가 둘 자리가 필요하다. 어딘가에서는 무사히 잘 자라겠지만, 어딘가에서는 점점 시들어만 갈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기저기 옮겨지며 살고 있다. 그 와중에 마주친 여러 사람들과 집들. 때때로 아니 그보다는 꽤 자주 우리의 삶은 그것이 머무는 자리만도 못한 것 같다.” 최근 이수민이 펴낸 책 <집만도 못한>의 도입부에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은 서울에서 주거 세입자로 살던 저자가 새로 이사할 집을 고르는 과정에서 돈에 의해 재단된 공간을 드나들며 떠오른 생각을 그림과 함께 엮은 것이다. 핸드북 사이즈로 작은 이 책은 그림책처럼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집에 대해 던지는 질문만큼은 어떤 책보다도 묵직하다.

목차를 보면 총 10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깨끗한 지하’, ‘납작한 옥탑’, ‘그냥 살아도 되는 집’, ‘잠깐만 살 집’, ‘딱 맞는 집’ 등 저자가 여러 집을 드나들며 가졌던 소회를 요약한 것만 같다. 하지만 제목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 ‘깨끗한 지하’ 편에서는 싱크대도 벽 마감도 현관도 새것처럼 잘 정비된 지하 방이 등장한다. 저자는 지금껏 이렇게 제대로 갖춰진 집은 구경도 해본 적 없었다고 말하지만 창문 하나 없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지하에서 누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짐작할 수 없었다면서 끝을 맺는다. ‘그냥 살아도 되는 집’ 역시 반전이 도사리고 있다.








이번 집은 고가도로 옆이고 진입로가 가파르긴 해도 통째로 사용할 수 있는 단독주택이다. 방도 넓고 부엌도 2개나 있는 그 집에는 현재 사람이 살고 있었다. 번듯한 외형과 달리 내부는 누수로 벽지가 다 떨어진 상태였다. 저자는 부동산 중개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옥상 방수를 요구했으나 ‘이 정도면 그냥 살아도 되지 않느냐’는 강요를 빙자한 질문만 되돌아왔다고. 그 집에 살고 있던 노부부는 그저 노인들만 살아서 집이 더럽다며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살 만한 집을 구하는 세입자에게 집을 팔려는 생각만 하는 누군가는 그저 실속 차리는 말만 건네는 상황. 부동산 중개업자나 집주인의 소개보다 차라리 돈이 그 집의 가치를 솔직히 드러낸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듯 각 편마다 꼭꼭 숨겨진 집의 치명적인 단점을 찾아내다 보면 집에 대한 동시대의 씁쓸한 진실까지 마주하게 된다.

<집만도 못한>의 10가지 이야기는 각각 12개의 그림으로 전개된다. 저자는 채색 없이 검은 펜으로 집 내부, 진입로, 집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정교하게 기록했다. 화장실, 벽, 마감재 등 집 내부 요소를 꼼꼼히 살피는 세입자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집만도 못한>에 실린 그림은 최근 제주 강정마을에 있는 갤러리 스페이스 산호에서 <우리는 매일 이사를 했습니다>라는 전시로 소개되기도 했다. 강정마을은 해군기지가 준공되고 난 뒤 ‘도시건설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오래된 가게가 헐리고 새 도로와 건물이 들어선 곳이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변해가고 있는 강정마을에서 이수민 작가의 그림은 밀려나고 사라지는 장소와 사람에 대해 세심한 시선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 책의 가장 마지막 에피소드는 딸과 함께 임대 아파트로 이사 갈 예정인 아주머니에 관한 이야기다. 모녀가 사는 집은 나름대로 제 역할을 하는 칸들이 알뜰하게 나뉘어 있는 공간이다. 저자는 아주머니와의 대화 끝에서 ‘몇 번째일지 모를 아주머니의 이사가 부디 평온한 것이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내 소유의 집’도 중요하지만 이 책의 저자처럼 타인의 삶이 어디에서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시선이 존재해야 정말로 살 만한 집이 더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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