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CULTURE|라이프스타일, 노마드, 힙스터

가장 완벽한 집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명연

Text | Myungyeon Kim
Photography | Hyoungjong Lee

네 개의 바퀴 위에 올라선 집, 캠핑카. 최소한의 기능을 갖춘 이 집 덕분에 겁 많은 나와 남편은 용기 내어 모험에 나설 수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짜릿한 시간을 함께한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첫 번째 캠핑카는 봉고차처럼 생긴 소형 캠퍼밴이었다. 작아서 주차가 편했다. 둘이 타고 다니기에 크게 불편하진 않았지만, 잘 때 에어컨을 켤 수 있고 샤워실 겸 화장실이 딸린 대형 캠퍼밴을 볼 때면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두 번째 캠핑카는 대형 캠퍼밴으로 빌렸다. 고요한 바깥세상과 달리 차 내부에는 에어컨 소리가 윙윙 울려 퍼져 잠에 방해가 되었다. 차체가 커졌으니 캠핑장 이용료와 주유비 등 모든 대가도 두 배로 치러야 했다.샤워실은 그레이 워터(오수)를 배출하는 호스 연결 부속품에 문제가 생겨 한 번밖에 못 썼다. 샤워기 수압도 약했다. 화장실은 카세트를 비워내는 게 더 귀찮아 주로 공용 시설을 이용했다. 세 번째 캠핑카는 완전히 다른 기준으로 골랐다. 오직 즐겁고 안전한 모험에만 비중을 두었다. 세 종류의 차량으로 각각 한 달 정도 생활해본 결과, 또다시 호주 로드트립을 가면 망설임 없이 세 번째와 같은 캠핑카를 빌리겠다.



“새삼스럽지만, 집은 그런 공간이었다. 바깥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가장 안전한 곳.”



우리가 계획한 모험은 호주 대륙을 가로질러 오지를 달리는 것이었다. 막상 그 시작점에 도착하니 두려웠다. 글로 읽은 것보다 훨씬 더 외딴곳이었기 때문이다.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며 사람도 차도 그 흔한 소조차도 보지 못했다. GPS에는 가느다란 선 한 개만 있을 뿐 다른 어떤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길을 한없이 달리며 이 텅 빈 땅에서 고립되는 것은 아닌지, 이 길에 끝은 있을지 불안감이 정점에 달했을 때, 나와 남편은 말했다. “괜찮아. 그래도 최소한 문 걸어 잠그고 잘 데는 있잖아.” 그 안에는 며칠은 버틸 수 있는 물과 먹을 것도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집은 그런 공간이었다. 바깥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가장 안전한 곳. 너무 당연했지만, 진짜 집에서의 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끊임없이 안전을 우려하며 첨단 장치를 동원해 내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먼 나라 오지에 오니 ‘성냥갑만 한 공간’에 안도하며 의지하게 되었다.








‘상자’는 이렇게 우리의 모든 여정을 지켜주고 몸과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 안에서 우린 가장 순수하고 완벽한 집을 경험했다.




무거운 큰 상자를 얹어 놓은 것처럼 생긴 오프로드용 사륜구동 캠퍼(4WD camper). 튼튼한 네 바퀴는 집채를 허리에 이고도 울퉁불퉁한 길을 거침없이 달렸고, 화물차에 쓰이는 두툼한 판 스프링들이 바퀴를 지탱했다. ‘상자’는 잠을 위한 공간이었다. 내부에는 아주 작은 싱크대, 아이스박스 모양을 한 냉장고, 소파와 테이블이 있다. 침대는 무거운 서랍처럼 되어 싱크대와 소파 위로 꺼내어 펼치게 해놓았다. 모든 마감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튼튼했다. 길을 달릴수록 흙먼지가 새어들어 내벽은 붉게 얼룩지고 바닥은 수시로 쓸어내야 했다.

안락함은 없었지만, 집을 단 채로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잠자는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생활은 차 밖에서 이루어졌다. 음식 조리대는 차체 외부에 달려있고, 그 위로는 햇빛을 겨우 가려줄 작은 어닝도 있다. 나무 근처는 거실 겸 서재였다. 그늘을 따라다니며 의자 놓고 앉아 책을 읽거나 일을 하고, 햇빛을 따라서는 빨래와 그릇을 말렸다. 새들이 울면 그 소리를 듣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느끼고,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빛을 느끼는 것도 일과였다. 오지로 갈수록 자연은 ‘지금 무엇을 할 때인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듯했다.

길이 거칠어질수록 캠핑장에서 만나는 이웃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넓은 들판에서 둘이서만 밤을 보낸 날도 있다. 어떤 날은 야생동물이 이웃이 되어 주었다.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은 한 캠핑장에서 캥거루 두 마리가 세탁실과 화장실로 가는 길목을 지키며 낮의 이웃이 되고, 해 질 녘이면 왈라비 다섯 마리가 찾아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우리를 지켜보곤 했다. 또 매일 아침 차로 날아와서 해 질 때까지 차 유리창이며 사이드미러를 연신 쪼아대던 새 한 마리도 있었다.







동물들의 공간에 우리가 잠시 세든 기분으로 닷새를 보냈다. 원래 이틀 머물 계획으로 찾아간 곳이었기에 먹을 것도 부족했다. 몇 끼를 우유에 시리얼로 배를 채우고, 휴대폰 신호도 잡히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충분히 행복했고 위험하지도 않았다. 이런 즉흥성은 우리가 택한 모험의 일부였다. 언제든 이동 가능한 집이 있었기에 한국으로 돌아올 날짜만 지킬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어디서 며칠을 보내든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집이 있는 한 어디든 최악’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실망하거나 두려운 적은 있었지만, 상자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이렇게도 한 번 살아봤다라는 경험만 남았고, 새로운 곳을 찾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상자는 이렇게 우리의 모든 여정을 지켜주고 몸과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 안에서 우린 가장 순수하고 완벽한 집을 경험했다.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명연의 호주 로드 트립>

① 집은 일상의 베이스캠프

② 가장 완벽한 집 (현재 글)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명연의 아이슬란드 로드 트립>

① 아이슬란드라는 집에 초대된 손님

② 풍경 수집을 위해 떠난 아이슬란드 로드 트립




RELATED POSTS

PREVIOUS

집이란 어떤 마음가짐
더 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