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바스티유의 조용한 골목, 시테 드 라 로케트 7번지에 자리한 메종 데 이스투아르는 0세에서 7세 어린이를 위한 문학적 놀이 공간이다. 아이들은 책을 읽는 대신 그 속에 들어가보고, 책장을 넘기듯 이야기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사고의 근육을 단련한다. 부모 역시 이곳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독서가 지닌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된다.
Little VILLIV
육아는 한 가정에 크나큰 축복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 개인만이 아닌 가족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빌리브’ 매거진은 매월 1회에 걸쳐 아이와 함께 창의적이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발자취를 찾아 ‘아이와 함께하는 삶’의 더 나은 방향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Studio Palta
인공지능이 책을 읽어주고, 영상이 문장을 대신하는 시대에 우리는 왜 여전히 책이라는 느린 세계를 찾아야 할까. 프랑스 최대의 독립 아동문학 출판사 레콜 데 루아지르L’École des Loisirs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아이뿐 아니라 부모와 창작자 모두가 체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내놓았다. 파리 6구 샹틀리브르 서점(Librairie Chantelivre) 안에 첫 번째 문학 박물관을 연 데 이어, 지난 8월, 바스틸 11구(7 Cité de la Roquette, Paris 11e)에 약 700㎡(210평) 규모의 메종 데 이스투아르Maison des Histoires를 새롭게 오픈한 것이다.
메종 데 이스투아르는 0세에서 7세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 집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책 속으로 들어가 노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스칸디나비아의 문학 박물관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책이 단순한 읽을거리가 아니라 실물 크기의 무대와 모험의 배경이 되고 아이들은 책을 ‘읽는’ 대신 그 안에서 ‘살아본다’. 750㎡ 규모의 2층 건물, 7m 높이의 천장으로 이루어진 공간에는 12권의 대표 아동문학 속 세상을 그대로 재현한 인터랙티브 전시가 펼쳐진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책 ‘소리의 책(Le Livre des Bruits)’를 감각적 체험 코스를 통해 탐험하고, 조금 더 큰 아이들은 ‘더러운 개(Chien Pourri)’의 엉뚱하고 유쾌한 세계 속에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역겨운 요리를 만들어보는 놀이를 즐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뚜뚜Toutous’에 나오는 다락방이 핼러윈을 맞아 정교하게 재현되어 있어 아이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 즐길 수 있다.

©Studio Palta

©Studio Palta

©Studio Palta

©Studio Palta

©Studio Palta
‘코르느비두유’Cornebidouille’의 부엌에서 마법 수프를 끓이고, ‘해적 개들(Pirate Dogs)’의 배에 올라 항해하며, ‘소리의 책(Le Livre des Bruits)’ 속에서는 “푸엣, 미야우, 브르르르”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활자가 다시 생명을 얻는다. 빛이 쏟아지는 유리 천장 아래에는 작은 카페가 있고, 아이들이 조용히 쉴 수 있는 색색의 오두막이 놓여 있다.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며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책을 함께 읽는다는 것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일이니까. 레콜 데 루아지르 개발 디렉터이자 메종 데 이스투아르 총괄 디렉터인 아가트 자콩Agathe Jacon은 이렇게 말한다. “이 특별한 놀이형 박물관을 탐험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문학과 이야기란 결코 고갈되지 않으며, 그것이야말로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하는 진정한 벗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공간 설계는 디자이너 로르 자퓔Laure Jaffuel과 무대미술가 발렌틴 드 코르Valentine de Cort가 맡았다. 이들은 책의 세계를 3차원으로 옮기기 위해 동화 작가들과 협업한다. 스케치와 무드보드를 작가에게 보여주고 그의 의견을 반영해 세부를 수정한 뒤 이탈리아 제작 팀과 함께 구현 가능성을 검토한다. 이 과정에서 삽화가는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무대 소품 디자이너는 3D 구조물을 만들어 책 속 세계를 현실로 완성한다. 벽에는 토미 웅거러, 마르크 부타방, 솔레다드 브라비의 그림이 숨 쉬고, 계단 아래에는 아이들의 비밀 은신처가 숨어 있다. 아이들은 책 속을 걷고, 만지고, 냄새 맡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주인공과 마주친다. 중심에는 소극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르 라콩퇴르 이스투아르les raconteurs d’histoires(이야기꾼 극단)가 연출하는 이야기 낭독극(lectures-spectacles)을 상연한다. 문학은 다시 인간의 목소리로 돌아오고, 책은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메종 데 이스투아르에서 책은 더 이상 납작한 종이가 아니다. 이야기가 입체가 되고, 독서는 놀이가 된다. 책은 다시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걸어 들어가는 공간이다. 인공지능이 문장을 읽어줄 수는 있지만 책의 냄새와 종이의 온기, 그리고 이야기의 숨결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임을 일깨워주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거의 완벽히 대체할 것이다. 책 내용을 요약하고, 인물의 감정을 분석하고, 줄거리까지 생성해내니까. 그렇다면 부모가 아이에게 전해야 할 독서는 무엇일까. AI는 사고를 대체하지만, 독서는 사고를 형성한다. 아이들이 영상으로 세상을 배우는 동안, 책은 아이들에게 사유의 틈을 선물한다. 독서는 생각의 속도를 늦추고, 즉각적 답변이 아닌 내면의 해석을 길러준다. 아이가 그림책 한 장을 넘기며 그림과 문장 사이의 여백을 상상할 때, 아이는 이미 깊은 사고를 배우고 있다. 영상이 완성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동안 책은 아이 마음속에서 그림을 다시 그리게 한다. 이 해석의 틈을 통해 아이의 뇌는 상상력과 언어력, 집중력, 공감 능력을 함께 성장시킨다. 아이가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배우는 것은 문장 그 자체가 아니라, 사유의 속도와 감정의 리듬이다. 그 느린 리듬 속에서 아이는 집중하고, 상상하고, 기다리는 법도 배운다.
“아이들이 영상으로 세상을 배우는 동안, 책은 아이들에게 사유의 틈을 선물한다.”
이에 메종 데 이스투아르는 이야기를 직접 경험하고 해석하는 훈련장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이 책 속 공간을 실제로 걸으며 이야기의 구조를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고, 무대 공연을 통해 언어의 리듬과 감정의 뉘앙스를 몸으로 익힌다. 즉 이곳은 단순히 책을 보는 곳이 아니라 책의 세계를 재구성하는 능력을 기르는 곳이다. 책은 여전히 느리고, 불편하며, 여백이 많다. 바로 그 느림과 불균형이 인간의 사고를 길러준다. 책 한 장을 넘기기 위해 손을 움직이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잠시 멈추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세상을 따라잡지 않고 스스로 해석하려 애쓴다. AI가 모든 지식을 품을 수 있을지라도 ‘한 문장씩 사유를 따라가는 경험’은 어떤 기술로도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Text | Anna Gye
Photos | La Maison des histoires
2615
1007
SNS 상 일본인들의 집에 대한 코멘트
231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 김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