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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라이프스타일, 친환경

비트라의 인테리어 100년

<홈 스토리즈Home Stories>

Text | Nari Park
Photography Vitra Design Museum

아돌프 로스, 핀 율, 세실 비튼, 앤디 워홀. 한 시대를 풍미한 건축가와 아티스트들이 만들어낸 ‘인테리어’에 관한 20가지 결정적 장면이 한자리에 모였다. 2020년에서 1920년까지, ‘라이프스타일’을 키워드로 떠나는 100년간의 시간 여행이다.







”우리는 집을 통해 삶을 표현한다. 일상과 건강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모은 형태를 집이라 부른다.”



세계 디자인 산업과 대중문화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 비트라Vitra는 집에 대한 철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리고 지난 한 세기, 전 세계 라이프스타일의 발자취를 집대성한 전시를 올 상반기 메인 전시로 준비했다. 스위스 국경도시 바젤 외곽에 자리한 비트라 인터내셔널 뮤지엄에서 열리는 <홈 스토리즈Home Stories>는 지난 100년간 인테리어와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이끈 상징적인 20가지 순간을 추렸다. 단순히 유명 디자인 가구로 꾸민 번듯한 인테리어 공간을 소개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건축 및 제품 디자인은 물론 미술, 영화, 무대 디자인 등 당대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미친 다양한 매체를 소개하는 데 집중했다. 인테리어가 사회, 정치, 도시와 기술 전방위와 유기적으로 호흡해왔음을 보여주는 통찰력이 돋보이는 자리라 하겠다.

전시는 지금 우리가 딛고 선 현실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라 그 대안으로 떠오른 ‘마이크로 하우징micro housing’을 소개하는 것부터가 신선하다. 2017년 건축 스튜디오 엘리Elii가 제작해 화제를 모은 마드리드의 10평짜리 아파트 ‘요히겐 포케토Yojigen Poketto’가 대표적이다. ‘미래의 젊은 가구를 위한 아파트를 실용적으로 디자인하는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평면적이기 쉬운 일반적인 아파트 구조에서 탈피, 3차원으로 공간을 입체 구성해 실용성을 높인다. 입구, 거실, 식당, 주방의 높이는 동일하나 침실과 욕실은 높게 설치해 공간에 리듬감을 준 것이 주효했다.




건축 스튜디오 엘리Elii가 디자인한 마드리드의 10평짜리 아파트, 요히겐 포케토






전시는 비슷한 시기인 2014년 건축가 아르노 브란틀후버Arno Brandlhuber가 베를린 근교에 세운 ‘안티빌라Antivilla’도 언급한다. 노출 콘크리트 텍스타일을 활용해 공간을 효율적으로 최적화하기 위한 전략을 제공하고, 편안함이야말로 미래의 대안이라 제시한다. 최근 사회적인 키워드로 떠오른 ‘공유 경제’를 라이프스타일에 접목한 집도 소개한다. 주민들이 수십 년간 무분별한 개발을 일삼던 정부에 맞선 끝에 이룬 런던 리버풀의 ‘공동체 토지 신탁(Granby Four Streets Community Housing)’이 그것. 단순히 집의 소유자로서가 아니라, 그 지역의 환경과 경제까지 디자인하는 데 힘을 모을 수 있다는 사례는 집을 대하는 목적과 가치가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건축가 아르노 브란틀후버가 베를린 근교에 세운 안티빌라




최근의 인테리어가 기능과 경제성까지 고려하는 실용주의에 집중한다면 1960~1980년대는 인테리어 디자인 본연에서 가치를 찾던 시대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한 듯한 두 번째 전시 공간에서 오늘날 우리가 ‘소유하고 싶은’ 모든 디자인의 원류를 만날 수 있다. 가구의 본질적인 의미, 디자인과 패턴, 이 모든 것을 해석하는 데에서 ‘멤피스 디자인’은 가장 적절한 예다.

멤피스 디자인의 열정적인 컬렉터로 꼽히는 칼 라거펠트는 1980년대 초반 몬테카를로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를 ‘포스트모던 멤피스 쇼룸’으로 연출했다. 몬드리안의 그림을 재현한 듯 화려한 컬러 배열이 특징으로, 마치 사각 링 같은 칼 라거펠트의 좌식 거실은 수십 년 전의 공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현대적이다. 1960년대에 운영한 앤디 워홀의 뉴욕 실버 팩토리는 어떠한가. 사무 공간과 주거 공간, 다이닝 등이 결합된 흑백사진 속 작업실은 오늘날의 공유 오피스를 연상케 한다. 앤디 워홀의 이 집은 초기 로프트 리빙의 유형으로 꼽히며 오늘날 많은 아트 레지던시 공간의 초석이 되었다.

비트라는 과거의 역사적 인테리어 장면을 담담하게 비추며 과거와 현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일관되게 시사한다. 비슷한 시기에 IKEA가 출현하며 야기한 여러 가지 이슈, 이를테면 ‘대를 물려 사용하지 않고 짧게 쓰고 버리는 가구의 문제점(short-lived)’, ‘리사이클링’ 같은 이슈 또한 함께 고민하길 유도한다. 이 전시에 대한 <도무스> 매거진의 최근 리뷰는 꽤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른 시대의 다른 공간들을 소개하는 듯하지만 관통하는 본질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싶어 하는가?’ 비트라의 이번 전시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결국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의 집의 방향성을 이야기한다. 교훈적이거나 설명적이지 않다.” - <도무스> 매거진 최신호 -




전시는 전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과 러시아 정치인 니키타 흐루쇼프 사이에 일어난 논쟁 ‘키친 디베이트Kitchen Debate’ 또한 비중 있게 다룬다. 1959년 모스코바에서 열린 무역 박람회에서 주방 가전제품을 두고 여성의 가사와 노동, 즉 주부의 삶의 품질을 개선하는 방법에 대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공방을 낳은 대표적인 일화를 야기한 사진을 통해 인테리어가 성평등과 정치적 발현의 개체로도 사용되었음을 시사한다. 브라질을 대표하는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Lina Bo Bardi의 집 역시 흥미롭다. 상파울루 자신의 집에서 포착된 그녀는 왼손에 시집을 한 권 들고 물끄러미 창 너머를 응시한다. 전면을 통유리로 마감한 창가에 기대어 우거진 숲을 바라보는 뒷모습은, 그때도 지금도 ‘자연과 함께 사는 삶’이야말로 궁극의 럭셔리라는 시대의 바람을 담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 바우하우스 1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서 수많은 기념 전시가 열렸다. <뉴욕 타임스>는 스페셜 특집을 통해 ‘우리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치는 25개의 룸’을 소개했고, 세계적인 아트북 출판사 파이돈은 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인테리어 전성시대. 그 흐름 속에서 이번 비트라의 전시는 ‘인테리어가 한 시대를 어떻게 지배하고 문화를 형성해왔느냐’에 집중한다. 당대 라이프스타일은 현재와 어떤 연결 고리를 갖는지, 또 다른 100년 뒤의 집은 어떤 모습일지. 우리는 회자될 수 있는 삶을 그려가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소박하고 평범한 당신의 집이 훗날 역사가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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