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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로컬, 오가닉, 재생

시간의 음식을 내주는 발효 음식 전문 식당

리틀 덕 더 피클러리

Text | Nari Park
Photos | Little Duck The Picklery, James Bannister

사회적 거리두기의 장기화로 집밥이 일상화되고, 면역력 강화를 위해 건강 음식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리틀 덕 더 피클러리는 시간의 힘을 빌려 완성한 홈메이드 장을 이용한 음식을 선보이고, 매달 1회 요리 수업까지 진행하며 지난해부터 런던에 일고 있는 발효 음식 트렌드를 주도한다. 음식의 기본인 소스와 장을 직접 만들며 삶의 기본에 집중하는 변화된 라이프스타일이 있다.



지난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토스트’와 함께 다양한 피클 담그는 수업을 진행한 리틀 덕 더 피클러리. / Originally shot for TOAST Magazine by photographer James Bannister



“김치는 올해 세계적인 주류 음식이 될 것이다. 유산균이 가득한 음식들은 이미 국경을 건너왔다.” 페이스북이 2020년의 주요 트렌드로 김치를 꼽은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바야흐로 발효 음식 전성시대다. 그리고 제철 식자재를 활용해 건강한 유익균을 생성하는 ‘기다림의 식문화’는 다문화 도시 런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오토렝기Ottolenghi 헤드 셰프 출신인 라마엘 스컬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스컬리Scully’는 올리브 오일에 재운 파 피클을 활용한 에이지 비프 요리를 선보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쇼디치에 위치한 ‘피크트 프레드Picked Fred’는 채소로 만든 다양한 피클을 선보인다. 버섯 피클에 재운 돼지고기, 꿀에 재운 무, 적양파 피클에 곁들인 그릴 문어까지 맛의 신세계를 펼쳐 보인다. “사람들은 집에서 창의적이기를 원하며, 버리거나 낭비하는 삶을 원치 않아요. 피클은 그런 삶의 철학을 실행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죠.” 셰프 스티브 모리시Steve Morrish의 이야기는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곧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함을 이야기한다.



(c) Kristin Perers



(c) Kristin Perers



2018년 아티스트들이 밀집해 있는 동부 달스턴에 문을 연 리틀 덕 더 피클러리Little Duck The Picklery는 발효 음식을 메인 재료로 하는 대표적인 레스토랑이다. 런던 요식업의 각축장인 소호에 오리 수프를 시그너처로 내세운 ‘덕수프Ducksoup’, ‘로덕Rawduck’ 2개의 레스토랑을 성공적으로 론칭한 음식 전문가 클레어 라틴Clare Lattin과 스타 셰프 톰 힐Tom Hill이 의기투합해 문을 연 세 번째 식당으로 화제를 모았다.
서너 테이블이 자리한 아담한 실내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오픈 테이블에는 발효 음식 전문가가 담근 수제 피클이 한가득 진열되어 있다. 다양한 발효 음식을 만드는 2시간 분량의 워크숍도 매달 1회 진행하는데, 런던 전역에서 많은 참여자가 모일 만큼 인기가 높다. 식당이라기보다는 발효 전문 연구실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이 같은 전문성에서 기인한다. 비록 코로나19 여파로 한 달 넘게 휴업 중이지만 최근 들어 포장 음식 서비스를 시작하고, 온라인으로 수제 피클과 발효 음식을 판매하며 발효 음식 문화를 꾸준히 이끌고 있다.
리틀 덕 더 피클러리의 성공 요인은 다양한 음식을 받아들이는 젊은 세대의 변화한 식습관에 기인한다. 식자재 본연의 영양소와 풍미를 바탕으로 오랜 기다림 끝에 완성한 발효 음식은 젊은 세대에게 낯설고 거부감이 드는 대신 유쾌한 도전이자 모험으로 인식된다. 이들은 식초, 치즈, 콤부차는 물론 ‘데이콘daikon’이라 부르는 길쭉한 무로 담근 김치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세 끼의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은 식초나 간장을 이용한 요리의 기본양념도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후식으로는 홈메이드 콤부차에 배를 곁들여 제공하거나, 직접 만든 피클을 사이드 메뉴로 낸다. 블랙티에 유익균을 넣은 발효 음료 ‘콤부차’, 양배추를 절인 독일식 김치 ‘사우어크라우트’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발효 식품 음식점이니만큼 한국의 김치도 빠지면 섭섭하다.





(위 사진 모두) 지난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토스트’와 함께 다양한 피클 담그는 수업을 진행한 리틀 덕 더 피클러리. / Originally shot for TOAST Magazine by photographer James Bannister



‘발효 전문 식당’의 명성은 음료 메뉴를 통해 더욱 신뢰를 높인다. 와인을 포함한 모든 음료 메뉴를 가게에서 제조하는데, 다양한 맛의 콤부차를 활요한 칵테일 메뉴가 대표적이다. 생강의 일종인 카다멈과 장미잎으로 만든 음료부터 시큼한 맛이 식욕을 자극하는 루밥 콤부차, 서양배와 셀러리를 루밥 스파클링 시럽에 곁들인 독특한 메뉴까지 다양하다. 핏빛 컬러가 압도적인 ‘블러디 메리Bloody Mary’에 김치를 더한 칵테일은 런던 다이닝 신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발효 음식을 알리는 것은 건강 때문만이 아니다. 리틀 덕 더 피클러리의 철학은 결국 어떻게 살고자 하는 삶의 태도, 방향성에 닿아 있다. “발효 음식을 만드는 건 음식 쓰레기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채소 줄기, 잎 등 40%가 넘는 쓰레기가 가정에서 배출되죠. 검은색 케일 줄기나 컬리플라워잎도 모두 발효 음식의 재료가 됩니다. 다이내믹하고 복잡한 맛을 지닌 음식을,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곁들여 먹는 행위는 결국 삶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최근 영국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토스트Toast와 진행한 김치 워크숍에서 리틀 덕 더 피클러리 셰프 톰 힐이 한 말이다.



“발효 음식은 놀라운 맛의 변화를 창조해냅니다. 몇 가지 재료만으로도 맛을 디자인할 수 있어요. 발효 식품을 만드는 것은 세상의 다양한 감각 속에서 나만의 신비로운 취향을 만드는 것과 같아요.”
- 클레어 라틴, 리틀 덕 더 피클러리 대표 / 매거진 'The Curious Pear'와의 인터뷰 중 -



날것의 재료를 산성화해 유산균을 배양한 음식인 발효 식품은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건강을 생각하는 이들 사이에서 더욱 러브콜을 얻고 있다. <더 퍼멘테이션 어소시에이션>의 분석에 따르면 사우어크라우트는 러시아에서만 79%, 콤부차와 나토는 일본에서만 10.1% 판매율이 증가했다. 사우어크라우트를 생산하는 대표 브랜드 클리블랜드 키친Cleveland Kitchen 대표 드루 앤더슨Drew Anderson에 따르면 “발효 식품이 몸의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알려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판매량이 높다”고 설명한다.
“잊힌 것의 재발견, 그러니까 집밥과 동네 소비 시대가 다시 열릴 것이라 예측한다”는 황희영 오픈서베이 대표의 말은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의 삶과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도 있다. 다시 집밥의 시대, 익숙하게 구매해 먹던 ‘가장 기본적인 먹거리’인 장과 조미료를 직접 만드는 아날로그 시대와 마주하고 있다. 나만의 유일무이한 것을 지향하는 취향의 다양성은 인테리어를 넘어 어느새 우리의 식탁 위를 조용히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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