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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할머니가 살던 집에서 연 전시

이자원 개인전 'Linger'전

Text | Young-Eun Heo
Photos | Lee Jawon

집에 관한 전시가 많아진 요즘, 흥미를 끄는 전시 하나가 열렸다. 비어 있는 할머니 집에서 열린 이자원 작가의 개인전 'Linger'는 집에 남겨진 사물을 통해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할머니가 살아온 오랜 세월과 할머니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집과 사물들, 그리고 작가의 추억이 얽히고설킨 전시는 빈집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Detail View, Linger_#3(static), 2021 할머니 집에서 수집한 음향 기기, 가변 크기.




비어 있는 할머니 집에서 남겨진 사물들로 설치 작품을 선보인 이자원 작가의 개인전 는 부재와 잔재라는 개념을 집으로 표현했다. 사라진 대상을 찾고 기다리며, 그것이 남긴 허물과 껍질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조각과 설치 작업으로 선보여온 작가는 이런 자신의 작업 세계를 애도의 과정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 상태인 멜랑콜리와 연결 지어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주인 없이 남겨진 할머니 집과 공통점을 찾으면서 작업을 시작했다.



1960년대부터 한집에서 살아온 할머니는 예상치 못한 이유로 그 집을 떠났다. 그 때문에 집을 비롯한 그 안의 사물들은 덩그러니 남아 할머니를 기다렸다. 2년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을 깨뜨린 건 이자원 작가가 할머니 집에 들어와 작업을 하면서부터다. 작가는 작업을 위해 할머니 집을 자주 오갔으며, 때로는 그곳에서 숙식을 하기도 했다. 평소 부재의 대상을 찾고 기다리는 작가와 떠난 할머니를 기다리는 집과 사물들이 만나면서 독특한 장소 특정적 전시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 집에 남은 사물들과 본인을 통해

잠시 이곳을 떠나 있는 이를 찾고 기다린다.”

- 전시 서문 중 -




서울 삼청동에 자리한 할머니 집은 역사가 깊다. 1930년대에 지은 집으로 1층은 한옥, 2층은 일본식인 독특한 구조다. 할머니는 1960년대부터 이 집에서 살았다. 거의 한 세기 동안 이어져온 집의 존재는 2020년 할머니가 이 집을 떠나면서 명맥이 끊겼다. 모두 알다시피 집을 집으로 만드는 요소는 단순히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의 온기와 시간이 쌓이면서 남기는 흔적이다. 할머니가 떠난 이후 2년 동안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은, 집이지만 집이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Detail View, Linger_#4(static), 2021 할머니 집에서 수집한 침구, 가변크기.




그러면서 할머니 삶의 터전이었던 집은 한순간 역할이 바뀌었다. 아무도 살지 않았던 지난 2년 동안 이 집은 할머니는 물론 작가를 포함한 온 가족의 추억의 장소이자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이제 방문할 일은 거의 없지만, 가족들의 마음속에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장소였다. 그리고 이자원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할 때는 부재와 잔재를 고민하게 만드는 예술가의 작업장이 되었고, 전시 기간에는 다른 곳에서는 전혀 보지 못한 특별하고 멋진 갤러리가 되었다.




전시의 또 다른 주인공은 할머니가 사용했던 사물들이다. 우리가 매일 집에서 사용하는 사물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성향인지를 알려주는 증표다. 그리고 때로는 타인에게 우리를 기억하게 만드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자원 작가는 평소 할머니가 사용했던 가구와 물건, 수집했던 물건으로 빈집을 채웠다. 갑작스럽게 주인을 잃은 물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먼지가 뽀얗게 쌓이면서 할머니를 기다렸을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세계와 집에 남아 있는 물건들 사이에서 교집합을 찾아내고 방에다 하나둘씩 표현했다.





Detail View, Linger_#1(ooze), 2021. 할머니 집에서 수집한 각종 그릇과 용기, 가변 크기.




방을 가득 채운 그릇과 코끼리 조각, 문이 열린 장식장과 주파수가 잘못 맞춰진 음향 기기는 할머니가 살아간 세월을 고스란히 전달해 관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압도당한다. 평생 할머니가 사용한 사물들은 단순히 낡고 오래된 물건이 아니라 할머니의 평생이 담긴 물건들로 세월의 무게감까지 느껴진다. 한편 안방에 일렬로 늘어선 코끼리 조각은 강렬한 인상을 준다. 작가가 여러 번 배치를 수정한 이 작품은 매일 할머니를 지켜보던 코끼리들이 여전히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Linger_#5(drained), 2021. 할머니 집에서 수집한 마른 화분, 가변 크기.




일반적으로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은 외롭고 쓸쓸한 감정으로 표현한다. 할머니가 살던 집에서 할머니가 사용하던 물건을 전시한 역시 어떤 이들에게는 슬프고 아련하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손녀이자 작품을 만든 이자원 작가는 이번 전시가 그렇게 슬픈 전시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중요하듯이 비어 있는 집도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그 집의 의미와 느껴지는 감정이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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