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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다양성, 로컬, 프리미엄

북유럽 외딴섬이 도전장을 낸 위스키 증류소

페어 아일스 디스틸러리

Text | Jehoun Gim
Photos | Jehoun Gim

위스키가 최근 ‘혼술’의 유행에 따라 하나의 트렌드이자 대중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증류소에서 나온 각기 다른 캐릭터를 제안한다는 점, 그리고 하이볼 같은 칵테일로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젊은 세대를 사로잡고 있다. 유서 깊은 증류소에서 생산한 위스키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남들과는 다르게 특별한 개성을 추구하는 애호가를 타깃으로 독특한 캐릭터를 살린 신생 증류소가 떠오르고 있다.








최근 그 어떤 주류보다도 극적인 성장세를 보인 위스키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각지에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위스키는 와인과 비교했을 때 제작 조건이 까다로워 생산 지역이 한정적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위스키 시장은 스코틀랜드와 미국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사이에서 일본이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며 위스키 강자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후적 강점을 활용해 최근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속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의 국가에서 신생 증류소 설립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페어 아일스 디스틸러리Faer Isles Distillery는 이러한 증류소 중 하나로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페로 제도Faroe Islands에서 위스키 제작에 한창이다.








아이슬란드와 스코틀랜드 사이 중간 지점, 황량한 대양 한가운데 위치한 페로 제도는 18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덴마크령 제도다. 삼성 갤럭시 노트 8 광고 촬영지였다는 것 외에 한국과는 큰 인연이 없는 곳으로, 덴마크령이라고는 하지만 독립된 정치 기관 아래 덴마크어와 구분되는 페로어를 사용하며 사실상 하나의 독립 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아직 관광 개발이 거의 안 된,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유니크한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 빙하 섬의 가파른 경사를 따라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도로 위에서 수십 마리의 양들이 자동차를 가로막고 유유히 지나는 모습은 페로 제도에서 흔히 보는 일상이다. 관광객이 찾을 만한 흔한 프랜차이즈 카페는 이곳에서 찾아볼 수 없다.




천혜의 자연을 가진 이들은 별다른 꾸밈 없이도 본질과 삶의 방식을 담담히 전하고자 .”




인구수가 5만 명 남짓으로 소규모인 이곳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산업은 어업이다. 이런 곳에 2018년 페어 아일스 디스틸러리가 설립되었다. 페로 제도의 기후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힌트를 얻어 주류 산업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위스키 성지인 영국 스코틀랜드와 페로 제도 사이의 거리가 서울과 교토 사이의 거리보다 짧은 만큼 두 지역은 해양성기후라는 유사성이 있다. 페어 아일스 디스틸러리를 설립한 이들은 스코틀랜드에서 직접 위스키 교육을 받고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위스키 제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기온, 습도, 기압 측면에서 페로 제도가 스코틀랜드보다 위스키 제작에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더해 국제 주류 시장에서 이들에게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아이덴티티는 천연 재료와 숙성 방식이다. 페로 제도의 토착 해조류와 식물을 여러 주류에 시험한 끝에 페어 아일스 디스틸러리는 그들만의 고유한 레시피를 완성해가고 있다. 또 한국의 과메기와 유사하게 양고기를 해풍에 자연 건조시키는 전통 방식인 ‘스케르피키외트Skerpikjøt’를 위스키 숙성 과정에 적용하고자 한다. 이는 매년 2%씩 오크통 안의 위스키를 증발시키는 과정에서 페로 제도 특유의 짭짤한 해풍으로 위스키에 독특한 캐릭터를 입혀주게 될 것이다.








스코틀랜드 위스키에 흔히 사용하는 피트peat라 불리는 이탄 또한 보리를 건조시키는 과정에서 사용하는데, 이들은 피트 또한 기존에 없는 페어 아일스 디스틸러리만의 향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피트를 연료로 사용해 불을 지피는 과정에서 페로 제도에서 채취한 미역을 넣고 함께 태우면, 피트의 훈연 향에 태운 미역 향이 더해져 바다 내음이 함께 느껴지는 독자적인 피트 향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러한 가운데 이들의 첫 위스키의 숙성 시작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행사가 지난 1월에 개최됐다. 페로 제도 총리를 비롯한 정계 인사부터 평범한 주민까지 다양한 이들이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이 자리에서는 페어 아일스 디스틸러리가 페로 제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상 국제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첫 시도이면서도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존의 어업 중심 산업 구조에서 벗어난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데니얼 호이델 대표가 말하는 비전과 철학은 거창하면서도 현실적이다. 페어 아일스 디스틸러리가 스코틀랜드나 켄터키의 위스키 증류소 못지않은 명성을 얻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서도, 이들이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은 현학적으로 꾸며낸 스토리텔링이나 마케팅보다는 자연의 축복이 내린 최상의 재료로 페로 제도의 특별한 아이덴티티를 한 병 한 병에 담는 것이다. 이들은 그것이 기존의 유서 깊은 증류소들 사이에서 페어 아일스 디스틸러리가 돋보일 수 있는 방식이라고 믿고 20, 30년 후까지 치열하게 최상의 위스키 맛에 대해 연구하고자 한다.



상업화된 도시 분위기와는 정반대인 고요한 페로 제도에서 페어 아일스 디스틸러리는 최근 고도로 상업화된 국제 위스키 시장에 뛰어든 셈이지만,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천혜의 자연을 가진 이들은 별다른 꾸밈 없이도 그저 그들의 본질과 삶의 방식을 세계인의 혀끝에 담담히 전하고자 하는 언더독이다. 이는 2026년 출시 예정인 첫 위스키를 기점으로 나아갈 이들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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