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소음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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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다양성, 큐레이션, 테크놀로지

일상의 소음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

Life of the ASMR

Text | Young-eun Heo
Photos | Design Museum London

생활 속 무심한 소음이 인기 콘텐츠로 소비되는, 바야흐로 ‘일상 소음’의 시대다. 먹방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던 ASMR 장르가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며 생활 속 자연스러운 순간을 담아내는 콘텐츠로 저변화되었다. 커피를 내리고 과일과 채소를 씻는 등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담은 ‘ASMR Diary’의 조회 수가 유튜브에서 천만 뷰에 이를 만큼 폭발적이다. 런던 디자인 뮤지엄은 전시를 통해 생활 속 날것의 소리가 위안과 즐거움을 주는 현상을 분석한다.





Neumann KU 100 Dummy Head. With Binaural Stereo Microphone (1992) Ed Reeve for the Design Museum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성냥개비 하나를 꺼내 ‘쓱’ 긋는다. 화르륵 순식간에 타오르는 불을 초 심지에 옮기자 ‘타닥타닥’ 심지 타 들어가는 소리가 이어진다. 슬리퍼를 끌며 공간을 배회하는 발소리, 찻잔에 물 따르는 소리, 심지어 청소기와 드라이어 작동음까지, 평범한 일과에서 파생되는 소음을 엮은 ‘ASMR Diary’는 유튜브에서 수백만 뷰의 조회 수를 기록하는 인기 콘텐츠다. 유튜브에 개설된 ASMR 전문 채널만 약 30만 개, 관련 콘텐츠는 1,000만 건을 넘는다.





Meridians Meet, Interactive Commission Space by Julie Rose Bower, Ed Reeve for the Design Museum




자율(Autonomous), 감각(Sensory), 쾌감(Meridian), 반응(Response). 네 단어의 앞 글자를 딴 ASMR은 오감을 자극하는 소리를 뜻한다. 2010년 제니퍼 앨런Jennifer Allen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ASMR 그룹’ 토론방을 개설하며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이후 ASMR은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는 소리를 힐링의 수단으로 소비하는 현상을 말하는 상징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다. 특히 팬데믹을 겪으며 심리적 안정감을 유도하는 일상 소음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해소하는 치유와 명상의 매개체로 소비되었다. 최근에는 ‘먹방’이나 ‘생활 소음’을 소개하는 데에서 나아가 보다 창의적인 영역으로 확장 중이다. 크리에이터가 설정한 상황극 내 소리를 채집하는 ‘롤플레잉 ASMR. 유튜버 하쁠리와 개그우먼 강유미가 ASMR을 활용한 콩트 영상을 선보이는 것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헤어 디자이너, 입시 학원 원장 등 다양한 인물의 일상을 연기하는 동안 캐릭터의 직업과 라이프스타일에 어울리는 소리가 극대화된다. 머리카락 자르는 가위질 소리, 칠판에 판서하는 소리, 외투를 걸치거나 의자에 앉을 때 나는 소리 등 ‘사사로운’ 소리가 특수 녹음 장치를 통해 채집된다.




현대인의 삶이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보다 아날로그적인 것으로 회귀하며 시각이 아닌 청각에 집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 쿼스토디오Qstodio ASMR에 열광하는 이유에 관한 흥미로운 분석을 들려준다. 이는 현대인의 삶이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보다 아날로그적인 것으로 회귀하며 시각이 아닌 청각에 집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4년 전까지만 해도 ASMR 콘텐츠가 미국에서 일곱 번째로 인기 있는 유튜브 장르였다면 현재는 그에 비해 350%나 증가할 만큼 수요가 폭발적이다. ASMR이 대중적인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이를 제작하는 이들을 ‘ASMRtist(ASMR+artist)’라 부른다. 대표적인 인물이 인스타그램 120만 팔로워를 보유한 영국의 에이미 클레어Amy Claire. 유튜브 채널 ‘Caring Whispers ASMR’을 통해 그녀는 시력 테스트 전문가, 의사, 동화 속 요정, 마법사 등으로 분해 각 인물이 파생하는 소리를 구현한다. “개인마다 자신에게 심리적인 안정감과 위안을 주는 특정 소리가 있다. 여러 가지 사운드를 들으며 사람들은 그 소리가 어떤 행위를 통해 파생되느냐보다는 단지 소리 자체에 집중하며 힐링한다.





ASMR Arena, Ed Reeve for the Design Museum



Meridians Meet, Interactive Commission Space by Julie Rose Bower, Ed Reeve for the Design Museum




현재 런던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Watch: Life of the ASMRtists]는 일상의 소음이 오늘날 도시인에게 힐링으로 다가오는 이유를 분석한 이머시브 전시다. 다양한 ASMR을 체험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체험형 부스로 구성했다. 초기 ‘ASMRtist’로 알려진 미국 화가 밥 로스Bob Ross의 영상을 소개하며, 물감을 섞거나 붓으로 채색하는 등 ‘그림을 그리는 행위’ 전반에서 파생되는 소리를 다룬다.



연구자이자 디자이너인 마크 티시어Marc Teyssier가 개발한 ‘인공 피부’를 관객이 직접 꼬집고 누르고 만져보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행위 과정에서 들리는 신체의 반응 소리는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헤드셋을 끼고 자신이 속삭이는 소리를 직접 들어볼 수도 있다. “세상은 점점 더 시끄러워지고 메시지는 범람한다. 소음으로 가득한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더 고요하고 차분해지는 방법을 찾는 이들이 스스로 집중할 수 있는 특정 소리에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시를 기획한 디자인 뮤지엄 측의 설명이다.





Tobias Bradford, that feeling__immeasureable thirst (2021) Ed Reeve for the Design Museum




ASMR 콘텐츠는 결국 공간과 라이프스타일을 소리로 소비하고자 하는 개인의 심리를 자극한다. 커피를 내려 마실 때도 물줄기가 떨어지는 소리를 음미한다거나 세수하고 양치질하는 소리마저 하루를 마감하는 평온한 BGM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반문한다. ‘나의 일상은 어떠한 소음으로 함축될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이른 저녁 분주한 채칼 소리, 밤공기를 가르며 터벅터벅 걷는 발자국 소리와 한숨 소리 같은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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