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LIV

PEOPLE|라이프스타일, 홈데코, 큐레이션

일상의 와인을 큐레이션 하다

와인 편집숍 위키드와이프 대표 이영지

Text | Bora Kang
Photography | Siyoung Song

이영지는 질문을 잘한다. 집에서 와인 클래스를 열면 어떨까? 와인숍에는 꼭 와인이 많아야 할까? 테이스팅 노트는 왜 재미가 없을까? 프라이빗 와인 클래스 ‘소셜와인클럽’부터 일상 와인 편집숍 ‘위키드와이프’까지, 기자 출신다운 발 빠른 기획력으로 대답을 넘어 해답까지 착착 내놓고 있는 그에게 와인과 공간에 대한 물음표를 던졌다.








위키드와이프라는 가게 이름이 재미있어요.

2013년에 회사를 그만둘 궁리를 한 적이 있어요. 직접 만든 복숭아 잼을 플리마켓에서 팔면 어떨까 싶었죠. 그때부터 매일 집에서 잼을 졸여 남편에게 시식을 강요했는데, 스스로 악처가 된 기분이더라고요. 남편이 평소 단 음식을 전혀 못 먹거든요. (웃음) 악처를 영어로 찾아보니 ‘Wicked Wife’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나와서 장난삼아 브랜드 이름으로 정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한때 집에서 프라이빗 와인 클래스 ‘소셜 와인 클럽’을 운영하기도 했어요. 퇴사 후 부엌살림을 SNS에 공유하며 라이프스타일 블로거로 주목받던 시기였죠.

신문사 기자로 일하던 어느 날 문득 퇴사를 결심했어요.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개인 블로그에 와인 수업 공지를 띄웠는데 두 타임의 수업이 30분 만에 마감되더군요. 그걸 보면서 퇴사 후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깨달았어요. 따로 사무실을 얻을까도 생각했지만 처음부터 일을 벌이자니 좀 부담스러워서 그냥 집에서 해보기로 했어요. 2년 동안 꾸준히 진행하다 보니 어느덧 고정 게스트가 생길 정도로 입소문이 났고요.



어쩌다 와인숍까지 차리게 됐나요?

처음부터 와인숍을 운영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이 공간은 본래 와인 수업을 위한 스튜디오로 쓸 계획이었죠. 그런데 수업 후 와인을 구입하고 싶어 하는 수강생이 많아서, 고민 끝에 제가 직접 선별한 10여 가지 와인을 작게나마 판매해보기로 한 거예요. 그간 소규모 와인숍을 자주 이용해왔지만 주인이 직접 와인을 골라서 판매한다는 느낌을 주는 곳은 만나보지 못했거든요.




“소비자가 한 번에 구입하는 와인은 많아야 두세 병을 넘기지 않아요. 그런데 수만 개의 와인 셀렉션을 갖춘 대형 와인숍이 굳이 필요할까요?”




와인숍 치고 공간이 작은데 이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요?

소비자가 한 번에 구입하는 와인은 많아야 두세 병을 넘기지 않아요. 그런데 수만 개의 와인 셀렉션을 갖춘 대형 와인숍이 굳이 필요할까요? 저는 오히려 다른 와인숍이 필요 이상으로 크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일상 와인 편집숍’은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와인 수업에 보람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SNS에 와인 사진 올리기를 망설이던 시기가 있었어요. 일하면서 알게 된 이들 중에 잘 사는 사람이 굉장히 많은데, 그들이 제 포스트를 볼 생각을 하니 기가 죽는 거예요. 100만 원짜리 와인을 마시는 사람의 눈에 7만 원짜리 와인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랬던 저를 자유롭게 만들어준 게 ‘일상 와인’이라는 단어예요. 제 주변에는 실용적인 와인 애호가가 많은데, 그들이 마시는 와인은 보통 5~7만 원대예요. 저 또한 8만 원이 넘는 와인을 ‘일상적으로’ 마시지는 않고요. 싸구려 와인과 고가 와인 사이에 자리한,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 맛도 보장되는 ‘일상 와인’이야말로 우리의 관심사라는 걸 깨달았죠. 그런 와인만 까다롭게 선별해 소개하는 와인숍이 서울에 없다는 것도요.




©이영지






‘갈비찜 레드’ ‘볶음밥 화이트’ ‘비빔밥 로제’처럼 한식과 와인의 페어링을 친근한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어요. 특별히 한식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요?

한식을 고추장, 간장 등 소스에 따라 구분하고 그에 맞는 와인 군집을 찾아내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고추장이 들어간 돌솥비빔밥을 먹을 때는 프랑스 론 지역의 단단한 로제가, 생선찜처럼 삼삼한 요리를 먹을 때는 쥐라 지역의 자연스러운 내추럴 와인이 떠오르는 식이었죠. 그 과정에서 한식과 와인의 마리아주에 대한 확신이 섰어요.



와인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아요.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는 테이스팅 노트를 좋아하지 않아요. ‘미네랄’ ‘탄닌’ ‘산도’ 같은 표현은 사실 양조자들이 쓰는 말이에요. 재미도 없고 이해하기도 어렵죠. ‘산도가 높다’는 말 대신 ‘피크닉 분위기를 돋워주는 명랑하고 경쾌한 신맛’이라는 표현을 쓰면 소비자들도 쉽게 맛을 짐작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전 와인을 구입한 손님들에게 제가 직접 작성한 와인 카드를 드려요. 와인에 대한 간단한 정보부터 맛에 대한 설명, 곁들여 먹으면 좋은 음식까지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쉬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확신하건대 지구상에 이런 와인 카드는 없습니다. (웃음)




“공간 한쪽에 페어링 바를 마련하면 어떨까 싶어요. 일상에서 편하게 접할 수 있는 한식과 와인의 마리아주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요.”




가게에 추가하고 싶은 공간이 있나요?

곧 가게를 이전할 예정인데, 공간 한쪽에 페어링 바를 마련하면 어떨까 싶어요. 일상에서 편하게 접할 수 있는 한식과 와인의 마리아주를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요.



해외로 진출할 계획도 있나요?

물론이에요. 지금은 신사동에 자리한 작은 가게에 불과하지만 해외로도 충분히 진출 가능한 모델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라면 ‘쏨땀 와인’ ‘똠양꿍 와인’ 같은 페어링도 만들어볼 수 있겠죠. 아시아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선별해주는 위키드와이프 뉴욕점이 있어도 멋질 테고요. 전 100호점까지도 가능하다고 봐요.




RELATED POSTS

PREVIOUS

나와 오브제와의 관계, 그 친밀감이 편안한 곳
라이팅 디자이너 마이클 아나스타시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