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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다양성, 로컬

만화가의 상상력으로 재탄생하는 지역 99곳

지역의 사생활 99

Text | Young-eun Heo
Photos | Ppiyackppiyackbooks

현재 미디어는 지방 도시를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관광지로 소개한다. 하지만 삐약삐약북스의 단편 만화 프로젝트 ‘지역의 사생활 99’는 그 지역이 누군가에게는 어릴 적 추억이 서린 고향이자 현재 일상을 영위하는 삶의 터전이라고 말한다. 지역의 역사, 명소, 특징을 만화적 상상으로 재구성한 단편 만화는 지역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을 전달한다.









수도권을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던 터라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많은 이들이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20살이 넘어서야 알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지인 대부분이 지방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대학교 진학이나 직장 등의 이유로 서울에 와서 터를 잡고 산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제야 한국 지리 시간에 들었던 지역들이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린 곳이거나 삶의 터전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느꼈던 생소함이 국내 여행을 할 때 종종 고개를 든다. 나에게는 일상을 떠난 특별한 장소인 곳이 현지인에게는 단순한 일상의 공간이라는 걸 깨달을 때마다 그곳이 더욱 낯설어진다.



우리나라 각 지역의 이야기를 만화적 상상으로 풀어내는 ‘지역의 사생활 99 프로젝트를 처음 봤을 때도 동일한 감정을 느꼈다. ‘지역의 사생활 99’는 9명의 만화가가 지역 9(시즌 3에서는 10)을 주제로 그린 만화를 묶어 하나의 시리즈로 출간하는 단편 만화 프로젝트다. 2020년에 시작해 2022년까지 세 번의 시즌을 거치며 총 28(시즌 1, 2 9)의 만화책을 출간했다.










시즌 1 2는 비수도권 탐방기를 목표로 서울과 경기 지역을 제외한 지역을 다뤘다. 그중에는 부산과 대구처럼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도시도 있고, 강릉과 경주처럼 여행지로 부상한 지역도 있다. 또 양산(경남), 옥천(충북), 정읍(전북) 등 이름만 들어본 적 있는 지역도 포함됐다. 2022년에 출간한 시즌 3는 로컬 만화 프로젝트로 성격을 넓혀 인천과 포천 등 수도권 지역을 포함했으며, 조선 시대를 주제로 한 특별편도 냈다.



‘지역의 사생활 99’를 이루는 단편 만화의 장르와 소재는 매우 다양하다. 덕분에 우리나라 전국 팔도가 SF, 판타지, 로맨스, 코미디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흥미로운 장소가 됐다. 한편 삶의 밝음과 어둠까지 다루는 만화의 이야기는 사회문제와 인생의 의미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지역의 현재를 다룬 만화책 자체가 없다는 걸 알았어요.




‘지역의 사생활 99’를 기획한 삐약삐약북스는 전북 군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독립 만화 출판사다. 삐약삐약북스를 운영하는 2명의 만화가(불키드, 불친)는 수도권에서의 빡빡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충북 단양을 거쳐 전북 군산으로 이사했다.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창작자가 굳이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작업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군산에 독립 서점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두 만화가는 기대를 안고 그곳을 방문했다. “독립 서점은 지역사회의 인문학적 허브 역할을 하기 때문에 로컬 문화에 관심이 많아요. 로컬에 관한 책만 따로 모아 코너를 만들 정도로요. 그런데 군산에 관한 만화책은 없더라고요. 더 찾아보니 지역의 현재를 다룬 만화책 자체가 없다는 걸 알았어요.



지역에 관한 만화책을 만들자는 것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는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만화가를 섭외하고 만화 제작을 부탁하면서 구체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 최대한 지역적 연고가 있는 작가를 섭외하고자 하지만 필수 조건은 아니다. 작가가 애정이 깊은 지역을 다뤄도 된다. 실제로 한 작가는 엄마의 고향을 주제로 삼았고, 또 어떤 작가는 할머니 집이 있던 지역을 주제로 삼았다. 추억과 애정이 서린 만화에는 각 지역의 특색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지역의 사생활 99’에 참여한 만화가들은 상상력을 발휘해 만화 곳곳에 지역의 특징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그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사투리가 등장하고, 지역 특산물이 주인공 이름이 되기도 한다. 타지인에게 제일 유익한 정보는 만화에 등장하는 지역의 관광 명소와 맛집을 정리한 마지막 페이지다. 현지인만 아는 장소도 있어 여행 가이드북 대신 들고 다녀도 손색없을 정도다.



‘지역의 사생활 99’는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를 다룬다. 그래서 만화에는 주목받지 못하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지역민은 언젠가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운명처럼 정해져 있고, 사람이 많은 수도권을 위해 희생하거나 갑작스러운 재개발을 견뎌야 한다.








소외된 존재를 다룬다는 것의 특징은 ‘지역의 사생활 99’의 콘텐츠에도 영향을 미친다. 각 만화책은 지역 내 응급실 위치와 배리어프리 장소에 관한 정보를 필수로 제공한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정보는 ‘지역의 사생활 99’가 중심이 아닌, 그 옆의 존재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알려준다.



삐약삐약북스는 ‘지역의 사생활 99’가 지역에 관한 깊은 고민을 던지는 만화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프로젝트 이름처럼 99곳의 지역을 무사히 조망할 수 있기를 꿈꾼다. 우리는 로컬 문화와 지역 상생을 외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지만 지역 불균형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지역의 사생활 99’ 프로젝트의 마지막 만화책이 출간될 때쯤, 지금보다 더 많은 지역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주요한 삶의 터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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