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본 21세기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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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다양성,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집으로 본 21세기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전시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

공간에 사람을 맞추는 게 일반적인 현대사회에서 사람에게 공간을 맞추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은 그 시도를 소개하고 동시대 한국 건축과 주거 문화를 살펴본다. 2000년대 이후에 나타난 다양한 형태의 집은 ‘진짜 나의 집’을 찾는 이들에게 영감이 될 것이다.




Photos : Mihyun Son



사회 변화는 곧 집의 변화로 이어진다. 특히 지금처럼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천차만별인 시대에는 원하는 집의 형태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해진 공간에 삶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 일찍이 그 흐름에 반항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들은 건축가에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집을 지어달라고 의뢰했다. 그렇게 탄생한 집 중에는 건축적 의미가 커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이의 집이 미적으로 아름답고 살기에도 편안한 집이었으면 좋겠지만, 실상 서민이 집을 짓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도시에 산다면 높은 땅값과 넉넉하지 않은 땅 등 여러 가지 현실에 부딪혀 집을 짓는다는 건 거의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2000년대 이후 사람들의 높아진 요구만큼 창의력을 발휘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건축가가 등장함으로써 전보다 쉽게 나만의 집을 갖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2024년 현재, 모든 이가 자신이 원하는 집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목표만 뚜렷하다면 꿈꾸던 집에서 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2025 2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MMCA) 과천관에서 열리는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은 천편일률적인 집의 형태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집을 지은 사람들과 그들의 꿈을 실현해준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부터 젊은 건축가까지, 30()의 건축가들이 지은 58채의 주택을 소개한다. 이 집들은 2000년대 이후에 지은 것으로, 지난 20년간 한국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고 미래의 주거 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승효상, 수백당, 1999-2000 / Photos : 무라이 오사무



서승모, R 아뜰리에 한옥, 2004 / Photos : 한경호



조병수, 카메라타 음악 스튜디오.갤러리.주택, 2003 / Photos : 김종오



에이오에이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망원 단단집, 2019 / Photos : 진효숙



조민석, 대전대학교 혜화 레지덴셜 칼리지 생활관 하모니홀, 2018 / Photos : 신경섭



전시는 58채의 집을 개인과 사회, 시간과 장소라는 큰 기준 안에서 6개의 주제로 분류했다. 첫 번째 주제인선언하는 집은 공간의 경험을 극대화하고 심미적 측면에 맞춘 집을 다룬다. 대표적 예로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수백당 12개의 방에 목적을 두지 않아 거주자의 의도에 따라 공간을 마음껏 바꿔 쓸 수 있는 집이다. 승효상 건축가는 안방, 서재, 거실과 같이 목적에 따라 방의 이름이 정해지고 그에 맞춰 공간을 사용하는 형태를 바꿔보고자 과감하게 실험에 나섰다. 유연함을 표현하기 위해 흰색으로 칠한 외관은 미술관처럼 보여 종종 오해를 샀다고 한다. 이처럼선언하는 집섹션에서 소개하는 집들은 건축가의 실험이 돋보인다.


그러나 건축가의 이상과 딱 맞는 건축주를 찾기란 쉽지 않기에 어떤 건축가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한 집을 직접 짓고 자신이 그 집에서 산다. 서승모 건축가의 ‘R 아틀리에 한옥이 대표적 예다. 집 구조는 가족 형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전통적 가족 구조가 해체되고 반려라는 개념이 가족으로 흡수되면서 집의 모습도 변화했다. ‘가족을 재정의하는 집섹션에서는 새로운 가족 형태로 인해 나타난 집들을 소개하는데, 단순히 1인 가구나 동식물과 함께 사는 가구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부부 역할에 대항하거나 핵가족이 다시 모여 새로운 가족 구성을 이룬 집도 있다. 건축가의 설계도뿐 아니라 건축주의 정보가 담긴 자료로 함께 전시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한편 아예 새로운 사회적 공동체를 추구하는 집도 있다. 단독주택 안에 회합의 장소가 있는카메라타 음악 스튜디오·갤러리·주택’,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는살구나무 윗집 & 아랫집등이다. ‘관계를 맺는 집섹션에서 소개하는 집들은 개인 공간이 아닌 공동체의 공간으로 바라본 집으로, 새롭게 등장한 개념인 덕분에 2010년대 이후의 젊은 건축가들이 이러한 형태의 집을 많이 지었다. 이 섹션에는 협동조합을 조직해 공동으로 집을 지은만리동 예술인 협동조합 공공주택’, ‘오시리가름 협동조합주택도 포함된다.


도시에서 내 집을 갖기 힘들어지자 2010년 이후부터 상대적으로 땅값이 저렴한 농촌으로 내려가거나, 오래된 집을 개조해 사는 사람이 늘어났다. ‘펼쳐진 집섹션에서는 농촌에 지은 현대식 집을 소개하는데, 이런 집들은 일명전원주택이라고 부르던 집과는 의미와 형태가 다르다. 다 똑같이 생긴 전원주택과 달리 거주자의 생활과 성격, 삶의 방식이 묻어나도록 설계하고, 외부와 내부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과 여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했다. 누군가가 지방으로 떠났다면 다른 누군가는 여전히 도시에 남아 자기만의 집을 짓는다. ‘작은 집과 고친 집섹션은 도시의 한정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집을 소개한다. 버려진 자투리 땅에 집을 짓고, 구도심의 오래된 양옥집을 현대적으로 개조해 또 다른 쓰임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 섹션에서 소개하는 집들은 지속 가능한 건축과 간략하고 축소된 삶을 지향하는 태도가 중요해진 오늘날,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잠시 머무는 집은 한국의 숙박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섹션이다. 일상에서 벗어난 장소에서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어느 순간 숙박 시설은 일상과 여가의 중간 지대에 위치하게 되었다. 오래된 가옥을 개조해 친숙하게 느껴지거나 집과 같은 편안한 공간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스테이는 전문 건축가가 설계에 참여하면서 더 깊은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이 섹션은 스테이와 주말 주택을 통해 생의 주기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른 주거의 시간성을 논의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번 전시는 건축가의

능력으로 어떤 삶이든

집에 담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주거 문화를 살펴보는 이번 전시는 집을 사적 공간이 아닌 사회문화적 맥락으로 보고 이를 반영하는 공간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건축가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집을 선별해 집을 아티스트의 미학적 이상이 실현되는 곳으로도 설명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묵묵하게 잘 살아가는 58채의 집은 삶의 방식에 맞춰 집을 짓는다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며, 건축가의 능력으로 어떤 삶이든 집에 담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전시는 삶에 관한 중요한 메시지를 제시한다. 삶의 방식에 맞춘 집을 짓는다는 건 곧 삶의 능동적인 태도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일이며, 이는 미학적 가치까지 실현하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Text | Young-Eun Heo

Photos | 국립현대미술관(MMC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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