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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도시, 재생, 호텔

굿바이, 힐튼호텔

힐튼서울 자서전

1983년 완공 이후 남산 자락을 지키며 많은 국제 행사를 치르고 수많은 국내외 여행객을 맞이했던 힐튼서울이 영업 부진과 재개발 계획으로 2022년 문을 닫았다. 역사적, 문화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닌 호텔과 뜻깊은 작별 인사를 나누기 위해 같은 남산 아래에서 이웃으로 지냈던 피크닉이 ‘힐튼서울 자서전’이라는 전시를 열었다.




사진 제공 : GQ Korea



호텔은 어떤 곳인가? 여행객에겐 잠자리와 휴식, 식사 등을 제공하는 곳이면서 누군가에게는 결혼식 같은 인생에서 중요한 행사를 치르는 곳이기도 하다. 힐튼서울처럼 한 도시 또는 나라를 대표하는 호텔은 여러 국제 행사가 열리면서 그 나라의 문화와 격식을 선보이는 역사적인 공간도 된다. 호텔은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곳이다. 호텔이 제공하는 환대에는 남다른 미감의 인테리어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설계 및 디자인한 호텔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력 포인트가 되어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고, 호텔 내 레스토랑과 카페는 미식의 즐거움을 전파하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역할도 한다. 이처럼 호텔은 단순히 잠자는 곳을 넘어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현재 문을 닫은 힐튼서울은 서울의 대표적 호텔로 이와 같은 역할을 꾸준히 수행해왔다. 힐튼서울이 이러한 위치에 서게 된 이유에는 설립부터 역사, 사회적 맥락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도시로 도약하려던 서울은 이를 뒷받침해줄 호텔이 필요했고, 대우그룹과 힐튼 인터내셔널이 협력하여 이를 위한 힐튼서울을 세웠다. 이후 힐튼서울은 1985 IMF·세계은행 연차총회,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등 여러 국제 행사의 회의와 연회가 열리는 역사적인 공간이 되었다. 한편 힐튼서울은 당대 최고 호텔답게 서구적 식문화를 국내에 도입하는 역할도 했다. 레스토랑 일폰테, 오랑제리, 시즌즈는 정통 이탈리아, 프랑스 음식을 국내에 소개하고 식문화를 전파하는 계기가 되었다. 덕분에 힐튼서울 내 레스토랑은 조부모부터 손주까지 온 가족이 함께 특별한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특별했던 힐튼서울은 경영 부진과 재개발 계획으로 2022년 영업 중지가 결정되었고, 올해 5월부터 본격적인 철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전시힐튼서울 자서전은 천장과 벽이 부서지고 폐자재가 쌓인 현재 힐튼서울의 모습을 보여준다. 국내 사진가와 작가들이 사진과 영상으로 남긴 지금의 모습에서는 화려하고 영광스러웠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 기억 속 호텔은 언제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고급스러운 건축과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전시 작품 속 호텔은 폐건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간극이 낯선 것은 물론, 약간 슬프기까지 하다.




사라짐, 서지우



사라짐, 정지현



기억과 기록 1977-2022, 노송희



기억과 기록 1977-2022, 백윤석





전시장 2층에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힐튼서울의 모습을 기록물로 볼 수 있다. 건축적 토대가 미흡했던 1980년대, 건축적 풍요로움을 꿈꿨던 김종성 건축가가 설계에 참여하면서 힐튼서울은 상징적인 건축이 되었다. 미스 반데어로어에게 사사한 김종성 건축가는 꿈꾸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자재부터 가구까지 세밀하게 신경 썼다. 김종성 건축가의 인터뷰 영상과 진열장에 쓰여 있는 건축가의 말은 힐튼서울이 단순한 호텔이 아닌, 한 건축가의 비전을 실행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였음을 알려준다. “우리 사회에 너그럽고 풍요로운 공간을 만들어 여러 사람이 그곳을 누리고 느끼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는 김종성 건축가의 말은 호텔이라는 공간의 공동체적 가치를 보여준다.


전시는 호텔의 개인적인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호텔에서 투숙객은 매우 중요한 존재이지만, 실은 잠깐 머물다 가는 사람이다. 호텔에서 진짜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뒤에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리어와 직원이다. 전시는 이들을 잊지 않았다. 2층 전시장 끝 지점에서 힐튼서울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인터뷰 영상이 재생된다. 누군가에게 호텔은 일상에서 벗어난, 그래서 특별한 공간이었다면, 이들에게 호텔은 매일매일의 일상이 펼쳐지는 곳이었고 그만큼 애정이 깃든 곳이었다.


전시 마지막에는 힐튼서울의 크리스마스 자선 열차가 달린다. 힐튼서울은 연말마다 그랜드 아트리움에 미니어처 알프스 마을을 꾸미고, 그곳을 달리는 자선 열차를 운영했다. 후원사 로고를 달고 운행하는 열차를 보기 위해 매해 많은 사람이 방문했으며 특히 아이들이 매우 좋아했다. 이 열차는 2022년에 멈췄는데 이번 전시 기간에 다시 운행하며 관람객의 추억을 자극한다. 전시장 한편에는 벽면에 힐튼서울에서의 기억을 적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는데, 여기서 사람들의 기억을 하나씩 읽다 보면 지난 40년 동안 힐튼서울이 정말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과 잊지 못할 시간을 선사한 곳임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 너그럽고 풍요로운 공간을 만들어 여러 사람이 그곳을 누리고 느끼게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힐튼서울 자서전은 건축의 지속성에 대해서도 다룬다. 전시 준비 과정에서 여섯 차례 포럼을 열어 힐튼서울을 비롯한 1세대 현대건축물의 보존과 재생 방식을 검토하고 기록 과정과 방법을 논의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건축 생애가 점차 짧아지고 있는 현실은 지금의 문제와 미래의 불안을 바라보게 한다. 이 관점으로 호텔에만 초점을 맞춰도 마찬가지다. 관광산업이 발달할수록 매해 새로운 관광지에 새로운 콘셉트의 호텔이 세워져 우리를 즐겁게 하지만, 반대로 오래된 호텔은 그것을 기억하고 추억할 방법조차 없이 사라진다. 어쩌면 전시까지 연 힐튼서울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수많은 이방인의 발길이 머물던 호텔은 여행과 추억이라는 감성적인 공간이자, 동시에 가치가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상업 공간이기도 하다. ‘힐튼서울 자서전은 호텔을 잘 떠나보내는 방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호텔이라는 공간이 지닌 정반대 속성을 깨닫게 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Text | Young-eun Heo

Photos | pik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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