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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도시, 커뮤니티

가족의 이야기로 반죽한 작품

팔레스타인 아티스트 베라 타마리

Text | Eunah Kim
Photography | Claire Duhamel

팔레스타인의 두 번째 이야기다. 현지 거주 중인 여성 아티스트가 다양한 설치 작품과 세라믹 조각으로 선보이는 콘셉츄얼 아트의 주제는 결국 조국, 고향, 가족 그리고 집이다.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이자 큐레이터, 교육자 베라 타마리 Vera Tamari는 1945년 영국 위임 통치령이던 팔레스타인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이스라엘 점령 아래 팔레스타인 땅에서 활동하는 세라믹 아티스트로서 그는 고국의 땅과 가장 가까운 재료인 진흙으로 작업한다. 남성 위주의 1970~1980년대 아트 신을 리드한 흔치 않은 여성 아티스트로 1975년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 내 최초로 세라믹 스튜디오를 설립한 이래 여전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집’하면 떠오르는 단어로 ‘온기와 배려 그리고 대화’를 꼽는다.











“다양한 색깔과 패턴과 생기가 있는 집이 좋아요. 모든 사물에는 사람, 장소, 시간에 대한 고유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으니까요.”




현재 살고 계신 알비레 Al-Bireh라는 도시는 라말라와 바로 붙어 있어 도심의 생활권을 공유하는 바쁜 동네죠. 이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사셨다고 들었어요.

우리 가족이 알비레에 이른바 ‘패밀리홈’을 꾸린 건 1940년이었어요. 제 유년 시절 기억의 전부인 패밀리홈은 당시 새로 지어진 현대식 가옥이었고, 알비레는 작고 조용한, 올리브 나무가 많은 그런 마을이었어요. 왜 알비레였는지 아버지께 따로 여쭤본 적은 없지만, 아버지가 (멀지 않은) 예루살렘에서 사업을 하고 계셨기에 일터랑 가까운 곳에 집을 두고 싶으셨던 거로 생각합니다. 자파(텔아비브 남쪽 항구 도시) 출신의 어머니에게는 꽤 먼 곳이었을 테지만 말이죠.



패밀리홈’에서 지금 타마리 씨의 집으로 이사 온 계기가 있나요?

이곳은 원래 살던 가족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에요. 크지 않은 도시 알비레의 끝과 끝 정도 거리라고 볼 수 있는데요, 저에게는 익숙한 동네죠. 제가 늘 그려오던 집을 짓기 위해 디자인에만 2년을 들였어요. 다 짓고 입주하는 데까지 총 3년이 걸렸고요. 지난 2003년에 이사 왔으니 17년째 살고 있네요.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주변에 건물이 3~4개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정말 많은 건물이 들어섰고 여전히 새로운 건물들이 올라오고 있지만, 보시다시피 노을이 지는 뷰는 참 아름다워요.



집 안에 개성 넘치는 가구가 참 많아요. 하나도 같은 가구가 없고요.

대다수 가구가 이전 집에서 가져온 것이에요. 발코니에 있는 의자까지 모두 다요. 같은 용도의 가구를 중복해서 사지 않기 위해 가져온 것인데, 새로운 공간에도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어요. 저는 이론적으로는 미니멀리즘 집을 좋아하지만, 3시간 정도 미니멀한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수 있어도 그런 곳에서 살라고 하면 손사래를 칠 것 같아요. (웃음) 다양한 색깔과 패턴과 생기가 있는 집이 좋아요. 모든 사물에는 사람, 장소, 시간에 대한 고유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으니까요.








집을 디자인할 때, 어떤 분위기이길 원했나요? 거실 중앙에 3단의 계단을 둬서 높낮이가 다른 바닥을 둔 구조도 흥미로운데요.

다양한 층위로 지루하지 않은 재미를 주는 거죠. 또한 무엇보다 충분한 자연광이 들어오는 것이 중요했기에 거실에서건 부엌에서건 어디에서라도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구조를 그렸어요. 여름이면 아예 바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요. 친구나 손님이 오면 늘 야외 정원에서 커피나 티, 아이스크림, 맥주 등을 마시곤 하죠.



대문 옆에 보통 문패가 있을 자리에 ‘자파까지 46km’라고 쓰여있는 타일을 보았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비르제잇 대학교 Birzeit University에서 20년 넘게 교수로 있다가 퇴임할 때 동료와 교직원들에게 받은 선물이에요. 상징적인 일종의 표식인데 ‘예루살렘’이 원조예요.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예루살렘까지 몇 km 떨어져 있다’하는 식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이 느끼는 예루살렘에 대한 중요성을 드러내는 오래된 타일 아트 형식이죠. 동료 아티스트인 칼레드 후라니 Khaled Hourani는 이를 활용해 원래 자기 땅에서 쫓겨나야 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생각해, 예루살렘 말고도 (누군가의 고향인) 헤브론, 베들레헴, 가자, 라말라 등에서 현재 그 사람이 사는 곳까지의 거리를 적은 타일 아트 프로젝트를 했어요. 저의 대문에 내건 작품도 그와 협업해 저의 부모님의 고향인 (지금은 이스라엘 땅이 된) 자파에서 지금 저의 알비레 집까지의 거리를 적은 아트워크고요.



사실 교단에 서기 전 타마리 씨는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였죠. 동료들과 조직한 ‘뉴 비전’이라는 소규모 그룹은 작품 활동에 이스라엘에서 수입된 재료를 보이콧한 것으로 알아요. 대신 팔레스타인 땅에서 난 커피나 헤나, 클레이(점토) 같은 것을 사용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제 작업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재료 자체였다기보다 제가 작품의 주제를 추억과 가족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면서부터였어요.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즉 저희 팔레스타인인들이 ‘대재앙의 날’이라 부르는 나크바(nakba) 이전에 찍었던 가족사진을 벽걸이형 점토 작품으로 나타낸 가족 초상화 시리즈가 그렇고요. 저희 할머니의 손 자수에서 영감을 받아 자수 패턴을 전시한, 헬라나의 커튼(Helaneh’s curtain)도 있죠.




Home(2017), © Vera Tamari




“집은 곧 가정(upbringing)이에요. 삶의 틀을 만들고, 개인의 캐릭터와 관심사 그리고 관계를 형성해주는 시작점이죠.”




시대별 타마리 씨의 작품은 아무래도 군사 점령 하의 사회와 뗄 수 없을 것 같아요.

여러 그루의 올리브 나무를 빚은 뒤 새로운 나무들에 컬러풀한 채색을 한 작품 ‘나무 이야기(Tale of a Tree)’가 있어요. 올리브는 제게 있어 저항과 뿌리, 풍요를 뜻합니다.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계단을 나타낸 ‘Home’ 또한 오래도록 이어지는 잔인하고 부정의 한 점령 아래서도 저항과 견고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나타내고 싶었고요.



이런 호방한 성격 역시 자라온 환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은데, 성장기 경험한 집은 어떤 곳이었나요?

가정환경 자체가 매우 개방적이고 진보적이었던 것은 분명해요. 부모님은 여자 자매들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주셨죠. 1960년대 여자가 대학에 가는 것은 흔치 않았지만, 부모님은 전혀 망설임 없이 저를 진학시켜 주셨어요. 제가 세라믹 아트를 하겠다고 재료를 사러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때 함께 간 이도 아버지였죠. 소위 ‘돈 되는’ 아트를 하기를 기대하며 지원을 해주신 게 아니라 순수히 저의 예술적 감각을 응원해주신 부모님이었어요.



타마리 씨에게 ‘집’하면 떠오르는 구체적인 그림은 어떤 것이에요?

가족이 모여있는 거실이요. 아마 저의 10대 시절일 거예요. 아버지는 일을 마치시고는 늘 뭔가 소포 같은 걸 갖고 돌아오셨어요. 어머니에게 줄 선물이라던가, 음식이라던가, 집에 데커레이션 할 소품 같은 것을요. 집에 돌아오시면 가족들과 일일이 포옹을 하고 당시에는 TV가 없었으니까 다 같이 앉아서 독서를 하거나 음악 감상을 했어요. 집에 레코드판도 참 많았거든요. 함께 음악을 듣고, 발코니에 나가서 하늘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그런 풍경이요. 지금 제가 앉아있는 이 부엌의 오렌지색 의자가 옛날 집 발코니에 있던 거예요. 제가 천갈이만 여러 번 해서 아직도 사용하고 있죠.









레바논, 이탈리아, 영국 등지에서 학업을 이어오셨어요. 개인적으로 어떤 도시가 가장 잘 맞던가요?

저는 제가 공부했던 이탈리아 피렌체, 영국 옥스퍼드가 딱 좋았어요. 남동생이 사는 교토도 좋았고요. 너무 크지 않은 딱 그 정도의 도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해외의 도시에서 경험한 집들은 어땠어요?

베이루트 등지에서 공부할 때는 학생용 기숙사나 임시 아파트에 살았기에 딱히 내 집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늘 내 가족이 있는 ‘패밀리홈’에 돌아가고 싶었죠. 그곳에 가면 온기(warmth), 배려(attention), 대화(conversation)가 있을 것을 알았으니까요.



타마리 씨에게 집이란 가족하고 뗄 수 없는 대상 같아요. 집이란 어떤 곳이어야 하는 공간인가요?

집은 곧 가정(upbringing)이에요. 삶의 틀을 만들고, 개인의 캐릭터와 관심사 그리고 관계를 형성해주는 시작점이죠. 자아의 연장선, 또 다른 나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런 개개인이 가족으로서 함께 자라나는 곳입니다. 가족과 집을 분리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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