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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머무는 집

세라믹 아티스트 에마 프라데르

Text | Anna Gye
Photography | Mineun Kim










생활과 작업 공간이 공존하는 이곳에 어떻게 살게 되었나요?

7년 전 구입했는데 구조가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커다란 테이블을 놓을 수 있는 야외 중정이 등장하고 양쪽으로 건물이 나누어지죠. 왼쪽은 집, 오른쪽은 아틀리에로 사용하기에 안성맞춤이었어요. 건물 후면은 전기 가마와 건조대를 두기에 적당했고요. 본래 건물 그대로 살 수 있는 집을 찾고 있었는데, 바로 이곳이다 싶었죠. 유일하게 공사한 곳은 중정이 내려다보이는 2층 부부 방과 아이 방 창문을 통유리창으로 바꾼 거예요. 작업하면서 수시로 아이를 확인하고 눈빛을 교환하기 위해서였죠.



이곳의 삶 또한 건축물의 생김새를 따라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친 벽돌 벽, 자유분방하게 자란 식물, 손 때 묻은 가구 등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눈으로 읽히는 것 같네요.

저기, 벽 틈새를 보세요. 무엇이 보이나요? 어떤 이들은 추하고 지저분한 것을 떠올리겠지만 저는 물과 바람이 만든 자리로 보여요. 시간이 만든 자연스러운 흔적, 즉 세월이죠. 저는 세월이 드러나는 사람, 건축, 물건이 바로 진실이자 아름다움이라 생각해요. 벽에 난 틈도, 벗겨진 페인트도, 잡초처럼 야생적으로 자란 나뭇가지도, 주름 가득한 제 얼굴도. 자연의 질서를 거부하지 않는 날것은 살아 있는 것이에요. 낡을수록 숙성의 향기가 진해지죠. 무르익어가는 것이 주는 평온함이랄까. 특유의 분위기가 나요. 물론 세월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똑바로 바라본다는 것은 힘든 일이죠. 뭔가 고쳐야 할 것 같고, 다듬어야 할 것 같죠. 하지만 아름다움을 더욱 깊이 있게 느끼고자 한다면 추하고 지저분한 것까지 내버려두고 함께 바라봐야 해요. 고통, 아픔, 슬픔, 더러움 등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부정적인 것까지 받아들여야 그 이상의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아름다움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거든요.



공간 또한 미니멀보다 러프한 스타일이 더욱 아름답다는 뜻인가요?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에 더 낫다고 말할 순 없어요. 눈으로 보이는 미학 정도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아도 좋아요. 하지만 저는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을 전해주는 공간과 물건을 선호해요. 거칠고 야성적인 날것은 사소하지만 빈번한 방법과 방식으로 감정을 전하거든요. 바닥 틈 사이에 낀 이끼, 깨진 그릇 사이로 흐르는 빗줄기, 그릇에 비치는 달빛 등 눈이 닿는 곳마다 미처 예측하지 못한 장면이 펼쳐지죠.







“세월 입어 낡고 바랜 것은 없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움과 친근한 모습으로 여기고 오래 보존해야 하는 것이죠.”




어딘가 좀 투박하고 일그러진 형태인 당신의 작품 또한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못생겼죠?(웃음) 어색한 이 모양새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저 또한 시간이 좀 필요했어요. 도자는 여러 예술 행위 가운데 예상과 결과가 가장 크게 차이 나는 분야 중 하나죠. 공들여 만들었다고 해도 가마에 들어가는 순간 변형되어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죠. 어느 단계에서는 농부의 마음처럼 하늘에 맡겨야 하는 순간이 와요. 처음 도자기를 시작했을 때는 그런 결과에 대한 실망감이 컸어요. 왜 그런지 이유를 찾는 데 급급했죠. 그러다 몇 년간 꾸준히 작업하면서 실망감을 다스리고, 계산했던 아름다움이 진짜 아름다움인지 돌이켜보기 시작했죠. 자연 또한 불완전한 것이니 그대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아름다움은 각자의 안목에 따라, 간절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저의 작품 세계는 불완전함을 추구하는 쪽으로 전환되었고, 최대한 자연과 닮은 도자기를 만들려고 해요.



마흔 살에 세계 여행을 한 후 의사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세라믹 아티스트가 되었어요. 인생 스토리가 마치 소설 같네요. 왜 의사를 그만두게 되었나요?

저의 꿈은 자유로운 여성이 되는 거였어요.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 17살 때까지 발레를 했는데, 의사가 되면 많은 나라에서 더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실제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어요. 그러나 고통에 신음하고 죽음의 문턱에 놓인 사람들을 천연덕스럽게 대하는 일이 무척 힘들었어요. 더욱 괴로운 일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었죠. 마흔쯤 되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마음은 물론 몸의 상처조차 쉽게 아물지 않더군요. 의사는 환자의 목숨을 살리는 일보다 그들의 삶을 돌보는 일을 잘해내야 하는데, 저는 그렇지 못했죠. 제 마음의 그릇이 이미 부서진 것 같았어요. 나이 마흔. 뭔가 인생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어요. 아이와 함께 그리스에서 시작해 유럽, 중앙아시아, 중국, 일본 등을 여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도자기의 역사를 배웠어요. 특히 일본에 오래 머물면서 도자기를 배우고, 소박하고 투박한 것에서 아름다움과 평온을 찾는 ‘와비사비’ 정신에 빠졌죠.



와비사비 정신에 대한 설명을 보태자면요?

주로 ‘미완성의 아름다움’이란 의미로 통용됩니다. 와비사비 공간 또한 때로는 유행이 지나거나 오래되어 볼품없어 보이지만 그 자체의 분위기로 충분히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장소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흠’이 되는 것이 와비사비의 세계에서는 ‘미’가 되는 셈이죠. 세월을 입어 낡고 바랜 것은 없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움과 친근한 모습으로 여기고 오래 보존해야 하는 것이죠. 일본의 여러 도시에서 살았기에 지금의 제 공간 또한 와비사비 정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겠지만 제 삶과 공간을 관통하는 것은 그냥 ‘자연’이에요.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만족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는 삶.







다시 여행을 떠났을 때 이야기로 돌아갈게요. 당시 마흔이란 나이가 끼친 영향이 있었을까요? 한국에서는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하여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 하거든요.

인생 후반부로 들어섰다는 위기감이 있었죠. 하지만 마흔을 지난 지금도 그 불안은 여전해요. 아직 저는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불혹의 나이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아요.(웃음) 전 세계를 여행하며 제가 터득한 것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불행과 앞으로 그만큼의 시간을 더 살 수 있다는 행운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에요. 세월을 극복하지 말고 순응하며 사는 일 말이죠. 아마 마흔 이후에도 저는 어떻게 하면 세월의 나이만큼 마음이 성숙해질까 고민하고, 절망하고, 후회하고, 우울해할 거예요. 매일 거울을 보며 굵어지는 주름을 발견할 것이고, 몸 또한 흙 덩어리를 옮기기에도 벅찰 정도로 약해지겠죠. 하지만 그 세월을 이겨내고 일부러 젊고 강한 척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제 삶이 소설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자연스럽게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거든요. 적어도 마흔의 나이라면 세월의 결과로 찾아오는 알력과 갈등, 열정과 포기 사이의 균형점을 찾고 온전히 내 인생에 집중할 줄 알아야죠.



세라믹 아티스트로서 가장 행복한 점은 무엇인가요?

늘 흙을 만질 수 있다는 것. 잠이 오지 않을 때, 육아와 집안일에 지쳐 있을 때 흙을 한 움큼 떼어 주물럭거리고 있으면 누군가가 등을 토닥거려주는 기분이 들어요. 햇빛, 바람, 식물 등이 있는 중정에 앉아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중정은 자연이 가르쳐주는 불완전함의 미학을 충분히 확인하게 해주는 곳이에요. 식물을 살피다가 어떤 놀라운 형태를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오른쪽의 작업실로 들어가 물레를 돌리죠.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철학책을 읽어요. 최근 유튜브에서 철학자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해석해주는 콘퍼런스를 보고 있어요. ‘참된 행복과 자유에 대한 연구’ 대목인데, 아침에 눈을 뜨고 살아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행복을 찾는 여행이 시작된다는 것이 핵심이죠. 스피노자는 자연은 늘 한결같고 규칙이 있다고 말하며, 감정도 자연의 법칙처럼 그것이 발생하는 일정한 원인이 있기 때문에 기하학적 관찰이 가능하다고 믿었어요. 그런 감정의 관계를 이해하면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는데, 자연에서 답을 찾고자 했던 그의 의도를 조금 알 것 같아요. 저 또한 마음이 불안하거나 동요가 생기면 중정으로 나가요. 빗소리나 바람 소리,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에 한참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죠.








중정에서 작업도 하나요?

날씨가 좋으면 아예 테이블을 중정으로 옮겨 작업을 하고, 비가 오면 창문으로 중정을 바라봐요. 빗물 떨어지는 소리를 참 좋아해요. 빗물은 갈라진 벽 틈 사이로 흐르며 이끼와 야생화를 남기고 사라지죠.



1층은 거실로, 2층은 부부 방과 아이 방으로 쓰는 집 안에도 작품이 가득하네요. 손때 묻은 빈티지 가구, 미니멀한 조명, 아날로그 음향 기기가 공간과 잘 어울려요.

집에는 저와 남편의 취향이 섞여 있죠. 남편이 조명 회사 DCW 에디션스 DCW Editions 공동 창립자인데 조명은 그곳 디자이너의 작품이에요. 또 거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LP 음반, 음향 기기, 앤티크 오르골은 음악광인 남편의 개인 수집품이고요. 빈티지 가구는 여행길에서 구입한 것도 있고, 대부분 파리 시내 벼룩시장에서 남편과 함께 고른 것이에요.



남편과 취향과 공간을 공유하는 방법이 있다면요?

다행히 남편과 저는 많은 부분에서 닮았어요. 어떤 사항에 대해 이견이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요. 그러나 저는 작업실조차 나의 공간이기보다 우리의 공간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살아요. 타인을 염두에 두고 생활하는 것은 일종의 규칙과 훈련이 필요하죠. 칼을 건넬 때 칼집 방향으로 건네는 일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원래 프랑스 남부 출신이라 들었어요. 현재 파리에 살고 있어서 행복한 점과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좋은 점은 어느 장소를 가더라도 느낄 것이 많다는 것. 문화 행사가 끊이지 않아요. 저는 아이와 함께 자연사 박물관과 퐁피두 아트 센터를 자주 갑니다. 안타까운 점은 프랑스 남부에 비해 빛이 약하고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점이에요.



다른 도시에 살고 싶지는 않나요?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어요. 아마 여행을 많이 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해요. 여행을 하면 할수록 내 생각과 마음의 토양인 프랑스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다른 나라에 아틀리에는 만들고 싶어요. 서울이나 이집트 같은 곳에 아틀리에를 만든다면 공간의 생김새뿐 아니라 만지는 흙, 더불어 사는 사람, 빛과 계절 모두 이곳과 다를 테니 제 작업 또한 자연스럽게 달라지지 않을까요?



본인에게 집은 어떤 장소인가요?

자연을 가장 가까이에서 맞이하는 곳이자 제 손으로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빚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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