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틀을 들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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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틀을 들인 집

위빙 아티스트 마리 아자르

Text | Anna Gye
Photography | Mineun Kim

프랑스 파리에서 아트 작업을 하는 마리 아자르 Marie Hazard의 집에는 유물이 된 베틀이 현재진행형으로 움직인다.







거대한 베틀이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네요.

원래는 지금 살고 있는 1층 방에 놓으려고 했는데, 너무 커서 들이기가 어려워 건물 6층 다락방에 공간을 만들었어요. 방 규모에 비해 베틀이 워낙 커서 앉을 데가 베틀 의자밖에 없어요. 그래서 여기 오면 무조건 작업을 하게 돼요. 문을 닫으면 창살 없는 감옥이죠.(웃음) 1층에는 스웨덴에서 온 2명의 룸메이트와 같이 살고 있어서 혼자 조용히 있고 싶거나 작업이 하고 싶을 때는 베틀 방으로 갑니다.



어떻게 이 거대한 물건을 곁에 두고 살게 되었나요?

고등학생 때부터 아트 스쿨에 진학하고 싶었어요. 스케치와 페인팅을 수없이 하면서 보다 입체적인 방식으로 그림을 그릴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우연히 위빙 weaving 작품(엮거나 짜서 만든 장식품)을 보게 되었죠. 커다란 베틀 대신 소형 기구를 이용해 만든 미니멀 공예품이었는데, 보자마자 전통적인 방식의 베틀 기술을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노동과 인내를 바탕으로 생산한 창작물의 높은 가치를 경험했죠. 물감 대신 텍스타일로 그림을 그리는 셈이죠. 그런데 프랑스 파리에서는 장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어요. 유일하게 런던 세인트 마틴 스쿨에 텍스타일 아트 과정이 있어서 런던에서 학위를 받고 다시 파리로 돌아왔습니다.



21세기에 굳이 이런 수고스러운 수공예 작업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1994년생이면 디지털 기계가 더 익숙한 세대일 텐데요.

디지털 세상이 될수록 우리에게는 휴머니즘이 필요해요. 위빙 작업은 가장 사람 냄새 나는 작업이에요. 시간이 흐를수록 오래 산 집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따뜻함이 더욱 강하게 전해져요. 학교를 졸업하고 셀린느의 텍스타일 디자이너가 될 기회가 있었지만, 결국 디자이너가 아닌 예술가로서 인간미가 느껴지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집 내부만 멋지게 꾸미려 하지만 사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때론 집 앞에 생긴 레스토랑일 수 있거든요.”




당신의 작업 노트에 이런 말이 있어요. “과거의 오래된 물건을 이용해 잊어버린 기억의 씨실과 날실로 오늘을 짓는다.” 작업으로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요?

베틀의 역사는 1만 년 정도 되었어요. 베틀을 이용해 무언가를 직조한다는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또는 잊고 있던 과거의 이야기를 다시 불러오는 것이죠. 제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책을 집필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이야기를 글이 아닌 실로 적는 것이고, 독해가 아닌 이미지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죠. 프랑스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 또한 글자의 의미보다 라틴어의 이미지를 차용하고자 함이에요. 실뿐만 아니라 종이, 플라스틱, 잡지 등 여러 가지 물질을 실과 함께 엮는데, 이런 방식을 통해 거미줄처럼 제가 포착한 어느 시대의 풍경을 직조해 보여줍니다. 과거와 현재의 모든 세상을 콜라주하는 일이죠.



작업의 영감이 되는 사진, 잡지, 종이, 천, 실 등 다양한 물건이 주로 바닥에 놓여 있네요. 허전한 벽을 채우기 위해, 또는 공간을 꾸미기 위해 아트 작품 하나쯤 실내에 걸어놓을 법도 한데 말이죠.

전 순수한 벽이 좋더라고요. 부모님 모두 건축가였는데, 방마다 다른 컬러로 벽을 칠하고 어떤 물건도 벽에 걸지 않았어요. 그 덕분에 각 공간이 매우 달라 보였죠. 건축물이 지닌 순수한 무드로 실내를 채우는 법을 가르쳐주신 거 같아요. 저도 그 영향을 받아 아무것도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이 좋아요. 작업을 위해 잘 보이는 곳에 일시적으로 메모를 붙여놓을 뿐 인테리어 장식품은 일절 없어요. 가능하면 깨끗이 정리해두고 모든 물건이 한눈에 보이도록 해놓죠.



방에도 소파와 침대, 옷장이 전부네요.

베틀, 실, 천 외에 크게 필요한 물건이나 가구가 없어요. 넓은 공간도 필요하지 않고요. 제가 원하는 공간은 저와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가 많은 곳이에요. 바람과 햇살이 드나들고, 사람이 편히 오가며, 매일 창을 통해 낯선 풍경을 볼 수 있고, 현관 밖을 나서면 예측 불허의 사건이 생기는 접점이 다채로운 곳. 저에게는 생각을 담아두거나 때론 펼칠 수 있는 유연한 집이 필요해요. 사람들은 집 내부만 멋지게 꾸미려 하지만 사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때론 집 앞에 생긴 레스토랑일 수 있거든요. 안팎을 함께 살펴야 해요. 이 공간을 선택할 때 제 방도 중요했지만 동네도 관건이었어요. 미술관과 갤러리가 많아 늘 영감이 넘치는 파리 10구 지역에 살고 싶었죠.










파리지앵이 선호하는 오스만 스타일 건물에 살고 있어요. 7층 규모에 철제 발코니와 다락방이 있는 전형적인 클래식한 외관의 석조 건축물이죠.

오스만 스타일 건축물의 최대 장점은 커다란 창문과 발코니가 있다는 점이에요. 집 외부와 내부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멋진 통로가 있는 거죠. 그래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어떤 컬러 벽보다, 아름다운 작품으로 꾸민 벽보다 멋지죠. 늘 창을 열어두고 가급적이면 좀 비우고 살아요. 어느 집이든 공간에 어떤 물건을 놓는 순간부터 공간의 역할이 제한되죠. 역할이 결정되지 않은 잠재된 상태가 가장 매력적이에요.



오스만 스타일 건물에 살려면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오스만 남작의 도시 정비 프로젝트는 1853년부터 1870년까지 이루어졌어요. 즉 대부분의 건물이 100년 이상 되었다는 소리죠. 청회색 아연 지붕과 베이지색 벽으로 이루어진 유사한 형태의 건물이 줄을 서듯 이어져 있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내부는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에요. 게다가 보수를 하고 싶어도 법적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어서 힘든 점도 많고요. 엘리베이터 시설이 없는 곳도 있어요. 그래도 불편함 이상의 낭만이 있습니다. 많은 파리지앵들이 이를 ‘아름다운 고통’이라고 말해요. 이곳에 산 이후 단 하루도 심심한 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만큼 부지런해졌고요.(웃음)








한국에서 창밖 풍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파트예요. 한국인 60%가 시멘트로 지은 고층 아파트에 살죠. 한국에서 아파트는 가장 인기 있는 주거 형태이면서 동시에 가장 미움받는 주거 형태예요.

사실 오스만 스타일 건축물도 알고 보면 과거 시대의 아파트라 볼 수 있어요. 다른 점은 한국의 아파트처럼 외부에서 집 안 삶의 표정을 한 치도 읽을 수 없도록 폐쇄적이지 않다는 것이죠. 이곳의 집들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건물마다 개조와 복원을 통해 개성적인 스타일을 하고 있어요. 또 동네마다 풍경이 다르기에 건물 자체의 분위기도 달라 보여요. 파리에는 20지구마다 건축물, 거리, 가게, 관광 명소, 주민들이 혼재되면서 만들어내는 특유의 색채가 있죠. 에펠탑을 사이에 둔 7구역과 16구역은 전혀 다른 동네예요. 한국의 아파트 또한 서로의 창문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동네마다 다른 풍경을 만들 수 있다면 매력적인 주거 시설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공공 시설을 늘리고 동네 풍경을 바꾸는 일은 아파트 건설사가 아닌 국가와 주민이 해야 하는 일이겠지만요.



한국에서는 큰 평수의 집을 선호하는데 이곳은 어떤가요?
파리 시내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집 내부보다 집 밖의 생활이 더욱 즐겁기 때문에 좁은 집에 사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아요. 어떤 건축물에 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낭만과 여유가 머무는 장소에 살기를 원하는 것이죠.




“다른 점은 한국의 아파트처럼 외부에서 집 안 삶의 표정을 한 치도 읽을 수 없도록 폐쇄적이지 않다는 것이죠. (중략) 한국의 아파트 또한 서로의 창문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동네마다 다른 풍경을 만들 수 있다면 매력적인 주거 시설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구보다 활발하게 소셜 미디어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디지털 환경이 아날로그적인 당신의 작업에 끼치는 영향은 없나요?

물론 아트 작품은 직접 눈으로 감상해야 합니다. 소셜 미디어는 저의 작업을 표면적으로 전할 뿐 작품의 분위기는 전달할 수 없어요. 촉감, 질감, 색감뿐 아니라 작업에 깃든 시간과 노력 등은 눈으로 직접 작품을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죠. 디지털을 어떻게 활용하고 인식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벽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집 안의 열린 창문과 같아요.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또 하나의 통로죠. 소셜 미디어 덕분에 오프라인 위주의 경험 중심에서 관심 위주의 관계로 달라졌고, 공간 또한 개인과 공공 영역을 구분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거리적 제약 없이 컬렉터나 다른 아티스트와 대화할 수 있고 다양한 일을 도모할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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